숨은 K-Pop 명곡 II, 백일흔여덟

사랑가, 인순이 : 14집 My Turn - 2001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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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블랙뮤직의 역사,
인순이


K-Pop의 수많은 아티스트들은 마치 영화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과 사고를 겪어온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텐데, 화려하게만 느껴졌던 그들의 삶 속에 숨겨진 어둡고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면, 지금 누리고 있는 그들의 스포트라이트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로또'와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다.


사람이 겪어왔던 고난과 힘듦의 정도를 수치화할 수는 없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견해를 듬뿍 담아 생각해 보면 아마 K-Pop 역사 속 빠질 수 없는 레전드 여자 아티스트이자,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 모두를 드라마틱하게 경험하며 성장한 '인순이'의 음악 인생 이야기를 빼놓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K-블랙뮤직의 역사, 인순이


인순이(본명 김인순)는 1957년생으로, 어려운 가정형편과 차별 속에서 성장했다. 많은 매체에서 이미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긴 했지만 아직 유교의 각박했던 문화가 깊이 사회의 곳곳에 남아있었던 그 옛날, 혼혈이라는 외모로 인해 큰 아픔과 소외를 겪었었고, 또한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훗날 그녀는 인터뷰에서 가수가 꿈이었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목표였기에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고, 이는 어쩌면 자기의 운명 같다는 말로 회고하기도 했다.


인순이는 전설적인 제작자/매니저이자 우리에게는 김완선의 이모로도 잘 알려진, 故 한백희에 의해 발탁되어 김재희, 이영숙 등과 함께 1978년 걸그룹 희자매로 데뷔하게 되는데, 당시 미군 부대에서 노래를 하던 한재희는 공연과 퍼포먼스 중심의 독특하고 새로운 그룹을 만들고 싶어 했고 혼혈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인순이를 수소문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어쩌면 지금의 아이돌 시스템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희자매의 데뷔를 준비했는데 1978년 앨범 데뷔곡 없이 팝송과 기존의 히트곡들만으로 성공리에 콘서트를 개최한 일화는 유명하다.


1978년 7월 데뷔 앨범 "아리랑 내 님아"를 발표하고, 같은 해 12월 당시 가장 인기와 명성이 높았던 음악프로듀서 안치행이 이끄는 안타기획과 함께 만든 "실버들"이 추가된 1집 재발매 앨범을 내게 되는데, TBC 방송국 가요차트에서 장기간 1위를 하며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기 시작하며 인기를 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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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가 활동한 희자매 1집~3집 앨범 표지들


1979년 2집과 3집을 연달아 내며 승승장구하던 그들은, 만삭이 되어 잠시 그룹을 돌보지 못하던 일부 시기 안타기획과 손을 잡게 된 2명의 멤버와 김인순을 두고 분쟁이 시작되어 갈라지게 되는데, 노래 실력과 퍼포먼스가 뛰어나던 인순이는 기존 매니저인 한백희와 함께 솔로로 나서게 되고, 나머지 두 멤버 이영숙과 김재희는 작곡가 안치행이 운영하는 기획사 안타프로덕션에 남아 활동하게 된다.


인순이가 빠진 희자매는 성주리를 영입하여, 안타프로덕션에서 희자매 4집 "그 사람 바보"를 발표하며 그룹의 명성을 이어가고 5집부터는 김효선이 새로운 멤버로 들어와 1980년 5집 앨범부터 1985년 그룹이 해체할 때까지 정규멤버로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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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가 빠진 희자매 4집~8집의 앨범 표지


솔로로 나선 인순이는 1980년 함중아가 프로듀싱한 "인연"을 타이틀로 솔로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는데, 1983년 발표한 '밤이면 밤마다'가 크게 히트하면서 1984년 KBS 7대 가수상 수상 등 대중 여성 솔로 가수로 확실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인순이는 자신의 백댄서 팀 ‘인순이와 리듬터치’를 운영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이주노, 김완선 등이 거쳐간 K-Pop 역사 내 매우 중요한 전문 댄스팀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찾아온 그녀의 슬럼프는 자신의 조카인 김완선에 집중하게 된 매니저 한백희와의 결별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때 그녀가 들은 '너(인순이)는 지는 해, 그 아이(김완선)는 뜨는 해'라는 말은 그녀의 인생을 바꿨던 상처로 알려져 있다.


한 인터뷰에서 인순이는 '그녀(한백희)가 없었다면 데뷔도 할 수 없었을 거고 마지막 말이 없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거다'라면서 당시엔 상처였지만 결과적으로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된 동기부여의 말로 한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한백희와 헤어진 이후로 인순이에게는 또 다른 긴 슬럼프가 찾아오게 되는데 이때부터 TV 활동이나 가수로서 화려한 무대는 거의 오르질 못하고 주로 야간 업소 혹은 복음성가 계열 등의 공연을 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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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1집~10집 표지 앨범들


인생노래, 이별연습


개인적으로 그녀의 노래 중에 최애의 곡을 뽑자면 1989년에 그녀의 9집에 수록된 '이별 연습'이라는 곡인데, 이 노래는 K-pop을 대표하는 레전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김형석의 작사/작곡한 웰메이드 발라드 곡으로 그의 K-Pop 최초의 작곡 데뷔곡이기도 하다.


https://brunch.co.kr/@bynue/193


이 노래는 발표 당시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서서히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알려지게 되었고 이제는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로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었던 교통사고 이후, 1994년 4월 삶을 다시 바라보며 코미디언 이주일 씨 아들의 지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되고, 잠시 육아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박진영과의 만남,
재기의 터닝 포인트


1996년 인순이는 그녀의 가수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맡게 된다.


그녀는 박진영의 권유로 이전 그녀의 노래와는 완전히 다른 소울/펑크가 느껴지는 댄스곡 '또'가 수록된 11집 The Queen Of Soul를 발표하게 되는데, 이 앨범은 모든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방송 차트 상위권에 드는 인기를 얻게 된다.


그녀는 박진영의 섬세한 디렉션 때문에 '또'를 “수천 번” 부른 수준으로 녹음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는데, 이 앨범은 박진영의 영원의 스승인 김형석이 5곡, 박진영이 3곡을 작사, 혹은 작사/작곡으로 참여하면서 프로듀싱을 담당했다.


왜 박진영의 만남과 그녀의 노래 '또'가 중요하냐면, 단순 히트곡이 아니라, “인순이는 과거형 가수가 아니다”를 증명한 곡이기 때문인데, 이 노래를 통해 댄스 퍼포먼스를 다시 전면에 세움으로써 세대 고정관념을 깨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그녀의 커리어가 “실력파 선배”에서 “지금도 새로움을 만드는 현역”으로 바뀌는 분기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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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11집~18집 앨범 표지들


The Queen Of Soul(1996) 이후 그녀는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 데서(1997), Future & Memories(1998), My Turn(2001) 등을 발표하는데, 특히 My Turn은 그녀의 앨범에서도 유의미한 판매량을 보인 앨범으로 알려져 있다.


조 PD와의 만남
'친구여'


2004년, 그녀의 정규 앨범은 아니지만, 그녀의 진면목을 보여준 조PD 정규 5집 수록곡 '친구여' 피처링 참여가 K-Pop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인순이의 제2의 전성기를 열기 시작하는데, 인순이 자신도 자신의 인생곡/모멘텀 중 하나로 ‘친구여’를 직접 꼽기도 한다.


왜 이 피처링이 또 한 번의 그녀의 모멘텀이 되었냐면, 래퍼 조PD와의 협업은 세대·장르 교차점이었고, 후배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인순이에게 얼마나 잘 맞는지 보여준 K-Pop 내에서도 대표 사례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후 인순이는 그녀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은 카니발의 리메이크곡인 '거위의 꿈'을 발표하여 크게 히트하게 되는데, 이는 인순이의 삶의 서사와 겹치면서 ‘희망·재기·위로’의 상징곡이 된다.


또한 2009년 17집에 수록된 '아버지'는 2010년 라디오 방송 횟수 1위 등으로 주목을 받으며, 댄스/소울 디바를 넘어 가족·세대 감성의 국민가수로 그 이미지가 확장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녀는 최근까지 신효범, 이은미, 장혜진과 함께한 골든 걸스 활동을 포함해 다양한 싱글 앨범들을 발표하며 식지 않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우리 모두에게 펼쳐 보이고 있으며, 그 미래가 아직도 궁금해지는 변하지 않는 레전드 가수임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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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발표된 인순이 14집 My Turn의 앨범 표지


잔잔한 기다림을 노래한,
숨은 명곡 '사랑가'


오늘 소개할 백일흔여덟번째 숨은 명곡은 2001년 발표한 인순이의 14번째 정규 앨범 My Turn에 수록된 '사랑가'라는 노래로 본 숨은 명곡에서도 이미 소개했었던 강승원이 작사/작곡을 담당했고 브라운아이드소울, 박효신, 이문세, 이은미 등과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 홍성규가 편곡했다.


편안하고 감미로운 String 오케스트레이션의 전주가 시작되고, 사랑하나에 목매던 그녀의 모습이 보일 듯 말 듯 서서히 희미하고 아련하게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는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과 함께 잔잔히 퍼지는 인순이의 노래가 지치고 힘든 어깨를 타고 귓가로 스멀스멀 파고든다.


오늘 하루도 많이 힘들었나요
무엇을 갖고 무얼 버렸나요


기타 하나의 반주에도 뭐 하나 모자람이 없는 노래이지만, 어느덧 슬그머니 자리 잡은 현악과 베이스, 드럼, 기타의 합주에 아주 천천히 상처받고 움푹 패어있던 맘 속 한 군데 또 한 군데가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한다.


강승원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가사에 어찌 보면 투박하기까지 한 멜로디, 그리고 인순이가 흩어내는 절절함 들은 그저 나를 묵묵히 지켜봐 오던 오랜 친구처럼, 가족처럼 내 등과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난 잠시 잊고 살았던 변하지 않는 사랑의 존재에 잠시 안도하게 된다.


그래 그랬었지. 언제나 여기 함께 있었던 거야.


잊혀진 줄 알았나요
아직 여기 있어요


오늘은 참, 그녀가 보고 싶다.




사랑가

인순이 : 14집 My Turn - 2001


작사 : 강승원

작곡 : 강승원

편곡 : 홍성규

노래 : 인순이


오늘 하루도 많이 힘들었나요

무엇을 갖고 무얼 버렸나요


처음시작했던 때가 너무 멀리 있어요

사랑과 꿈과 자유로움 어디 있나요


오늘따라 당신 지쳐 보여요

믿었던 일들은 그대로 인가요


세상은 변해도 나는 그냥 여기 있어요

변하지 않는 나의 사랑받아주세요


사랑 사랑 떠나간 줄 알았나요

잊혀진줄 알았나요 아직 여기 있어요


사랑 사랑 우리 알고 있잖아요

떠나지 않는 사랑과 자유로움 속에서


고왔던 꿈들은 너무 멀리 있어요

때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시간은 점점 더 빨리 흘러만 가구요

괜찮아요 사랑해요 언제까지나


사랑 사랑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전처럼 하면 돼요 항상 여기 있어요


사랑 사랑 이미 알고 있잖아요

떠나지 않는 사랑과 자유로움 속에서


사랑 사랑 떠나간 줄 알았나요

잊혀진줄 알았나요 아직 여기있어요


사랑 사랑 우리 알고 있잖아요

떠나지 않는 사랑과 자유로움 속에서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dEx6usfCO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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