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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Oct 22. 2023

이웃이 가까운 삶


첫 번째 집은 타운하우스 단지 안에 있었다. 나도 아이들도 처음 살아보는 이층 집이라 좋았다. 특히 가장 좋았던 점은 1학년 25명 중에 9명이나 같은 단지에 산다는 것이었다. 나는 늘 아파트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이웃 간에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겨우 얼굴을 익히고 지내면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였다. 심지어 제주에 오기 직전에는 팬데믹 상황에서 이웃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누군가와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단지 안 거의 대부분의 집에 유안이의 같은 학교 친구, 형, 누나들이 한 명씩은 있는 셈이었다. 


유안이와 지안이는 낯가림이 있고, 어른을 어려워하며, 친구를 사귀는데 시간이 필요한 성향인데, 유안이가 집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아들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 주말에는 집집마다 메뉴를 물어보고 마음에 드는 집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어릴 적부터 입이 짧아서 늘 밥 먹이느라 힘들었는데, 이모 밥 너무 맛있다며 한 그릇 더 달라고 했다며, 밥 차려주는 맛이 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 아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넉살이 좋았던가.


단지 내에는 광장도 있고, 넓은 길도 있어서, 아이들이 모여서 놀기 좋았다. 다 같이 놀기도 하고, 팀을 나누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놀이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규칙도 생겼다. 매일 많은 아이들이 같이 놀다 보니 부딪침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점점 아이들끼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유안이는 일 년 동안 여러 명의 친구, 형, 누나, 동생, 이모, 삼촌 등 수많은 관계 안에서 즐거워하고, 갈등도 겪으며 많은 경험을 통해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나는 살아가는데 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유안이가 정말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유안이에게 이곳에서의 시간이 유년시절의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 동시에,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 큰 바탕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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