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을 바꿨습니다

100일 글쓰기 4일 차

by 뵤뵤

민망하다. 본의 아니게 발음 챌린지가 돼버렸나.


"뵤뵤리나요."

"네? 다시 한번만."

"뵤. 뵤. 리. 나요."

"아, 보보? 리나? 뵤보?"

"아... 아니, 뵤. 뵤.입니다."


북토크의 마지막은 대부분 저자의 사인회로 마무리된다. 설렘을 안고 책에 사인을 받으려는 찰나,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기왕이면 실명보다는 필명으로 받으면 멋지겠다고 생각했다. 욕심이었을까.


뒤에 길게 줄 선 사람들을 두고 나만 시간을 끄는 것 같은 미안함에 얼른 마무리 짓고 싶어졌다. 네 글자인 필명을 두 글자인 "뵤뵤"로 간추려 말해본다. 나름 신경 써서 지은 필명이건만 조급함이 낳은 '그까짓 거 머, 대충'과 '뭣이 중헌데'스러운 태도가 쿨한 생략을 불러왔다. 속내는 전혀 쿨하지 않고 찜찜했지만.


'괜찮아요. 작가님만 잘못 들으신 게 아니랍니다. 다른 분들도 그러셨어요.'


물음표가 연달아 붙을 만큼 귀에 한 번에 감기지 않는 필명을 오차 없이 쓰느라 고생한 작가님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듣기 관문을 무사 통과하느라 애쓰셨습니다.


지을 때는 몰랐다. 유일무이한 필명을 찾다 보니 유일무이하게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 탄생했음을. 사람들에게 말로 꺼냈을 때야 깨달았으니까. 발음하기도, 알아듣기도 어려운 이름이구나. 게다가 낯은 왜 이리 간지럽고 쑥스러운 것인지. 활자로만 보던 필명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오스스 닭살이 돋았다. 왠지 '뵤뵤리나'에 이어 '마드모아젤'이라 불러야 할 것 같고, '봉주르, 메르씨 보꾸'하고 인사해야 할 것 같은 엘레강스함이 나와는 영 이질적이었다.


그렇게 한 번 꽂혀버린 어감의 생경함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북극곰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북극곰을 집요하게 의식하는 사람처럼.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애초에 여성스럽고 예쁜 필명을 원해서 지은 게 아니었다. 우선 흔하지 않아야 했고 한번 보면 잊힐 수 없도록 인상적이길 바랐다. 거기다 의미상 추구미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남들에게 보이는 글을 써보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내 글이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지 몰랐으니까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했다. 서정적이고 몽글몽글한, 섬세한 감성을 톡톡 일깨우는 글이 한때의 추구미였지만, 십 개월동안 글을 써보니 잘 모르겠다. 그때는 '뵤뵤리나'가 최선이었고, 지금은 아닌 것 같다.


https://brunch.co.kr/@byobyolina/9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정작 중요한 질문에 해답은 찾아보지 않고 그렇게 '뵤뵤리나'가 되었다. 남들 앞에서 큰 소리로 자신 있게 필명을 소개하지 못했던 이유는 어쩌면 발음상의 어려움이나 어감의 낯섦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진지한 고민을 더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필명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쓴다" 집중하려는 지금과 보기 좋게 시기가 맞아떨어졌으니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짧게

-보기 쉽게

-읽기 쉽게


그간 뵤뵤리나에 정이라도 들은 건지 180도 새로운 이름으로 환골탈태하는 성실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꼬리를 자르고 단출하게 바꿨을 뿐이다.



(구) 뵤뵤리나 -> (현) 뵤뵤



두 글자 덜어내니 뵤뵤가 지닌 본래 뜻에 가까워진 것 같아 마음에 든다. 필명으로 결정할 당시에 품었던 초심에 미련이라도 남았는지 '뵤뵤'는 그대로 안고 가기로 했다.



초심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은 구하지 못했다. 앞으로 계속 글을 쓰면서 탐구해 나가야 할 것 같다. 다만 어떤 글을 쓰고 싶은 지는 알겠다.


'뵤뵤리나'였던 나는 글로써 활동 반경을 서서히 넓히고 싶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뵤뵤'가 된 나는 둥글게 원을 그리며에 방점을 찍어본다.


둥글게 끌어안아 마음을 맴도는 글.

당신의 눈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맞장구치고 웃거나 손을 잡고 같이 울어줄 수 없으니 글로써 공감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글로 위로받아 울고 웃었으니 그런 뭉클함을 건넬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이로써 가벼워졌다. 새가 둥근 원을 그리며 하늘을 유영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상상만으로 평온해진다. 소망이 있다면 간소해진 필명만큼 나도 키보드 위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