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원숭이가 남긴 종이조각

by 서담

원준아,

수업 중이었어.
갑자기 ‘꽝’ 하고 문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지.
가슴이 철렁해서 현관으로 달려나갔어.
분명 소리를 낸 무언가가 있어야 했는데, 밖엔 아무도 없었어.
문 손잡이 모양도 그대로였지.


나는 한동안 복도를 서성이며 두리번거렸어.

다시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때, 발끝에 작은 종이조각이 걸렸어.
메모지도 아니고, 누가 일부러 찢어놓은 듯한 구겨진 종이.
펼쳐보니 삐뚤빼뚤한 글씨가 튀어나왔지.


“원숭이 다녀감. 아마 2달 뒤 다시 학원 다닐 것 같음요.”


원숭이. 원준이. 그래, 너구나.

순간 바로 알겠더라.


교실로 돌아가야 했는데,
머릿속은 이미 너와 네 엄마 얼굴로 가득해졌어.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일들이 스멀스멀 다시 떠올랐거든.


너를 처음 본 건 네가 열 살이었을 때였지.
바리깡으로 민 듯한 까까머리, 동그란 안경, 동그란 눈.
쑥스러워하면서도 혼자서 씩씩하게 학원 문을 열던 너.


너와는 수업으로 만났지만,
너의 엄마와 나는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친 적 없었어.
모든 대화는 카카오톡으로만 오고갔지.


엄마는 처음부터 원비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어.
아버지가 사업을 하니 국영수처럼 딱딱하게 공부시키고 싶지 않다며,
단지 네 창의력과 재능을 살려달라고 부탁하셨어.

나는 그 말이 너무 반가웠어.
아이 스스로 좋아하는 걸 알아가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으니까.


하지만 그 뒤에는 늘 같은 질문이 따라왔어.

“지금 뭐 배우나요?”
“제가 알고 있는 거랑 다른 것 같은데요?”

나는 그때마다 네가 만드는 것, 배운 것,

그리고 내가 설계해둔 커리큘럼을 길게 설명했지.


선생님으로서 내가 실수했다고 느꼈던 날이 있었어.

너는 그날 형과 너를 등장시키는 영상을 만들겠다며
신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
형을 ‘돼지새끼’, 너를 ‘원숭이새끼’라고 자막에 적어놓고는
혼자 킥킥거리며 파워포인트로 대본을 짜고,
핸드폰으로 더빙까지 하고.

너의 열정은 정말 대단했어.


다른 아이들이 웃어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오랜만에 오디오 파일을 옮겨달라고 내게 부탁하기도 했지.

나는 네가 너무 자랑스러웠어.

혼자 기획하고 만들고 더빙까지 해낸 너의 에너지.


그리고 너와 형의 관계를 아는 터라 그 자막이 귀엽고 웃겼어.

그래서, 네 첫 작품을 엄마에게 곧장 보냈어.
제목 그대로—“원숭이와 돼지새끼.”

엄마는 웃으며 잘 부탁한다고 하셨지.
나는 흐뭇했어.


그런데 다음날,
너는 교실 문을 열자마자 이렇게 말했지.

“아유, 선생님. 그걸 우리 엄마한테 보내시면 어떡해요.
저 엄청 혼났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저희를 원숭이랑 돼지새끼라고 알고 있다고 화도 내셨어요.”

순간 숨이 턱 막혔어.


근데 네 얼굴이 너무 장난스럽고 밝아서
나는 민망함을 숨기고 웃는 척했어.

그날 이후 나는 네 엄마와의 대화를 오래 곱씹었어.
며칠 뒤 조심스럽게 사과 문자를 보냈지만
엄마는 끝내 답을 하지 않으셨어.


시간이 지나면서 너는 점점 네 색깔이 진하게 드러났어.
흥이 나면 엉덩이를 씰룩대며 춤추고,
형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형들이 네 형을 모른다고 하면 “몰라요? 그 돼지새끼.” 하고 너만의 개그를 던졌지.

네가 있는 날엔 교실이 늘 웃음으로 가득했어.


나는 네 안에 있는 리더십, 창의력, 재치를 누구보다 잘 보고 있었어.

그리고 생각했지.
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려면,
규칙·절제·인내도 꼭 알려줘야 한다고.


그래서 네게 포토샵 자격증 과정을 권했어.
합격이 목적이 아니라
‘집중’과 ‘인내’라는 근육을 만드는 과정이었으니까.

엄마는 예상 외로 빠르게 시험을 접수했지.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어.
그 결정이 나에게 어떤 파도로 돌아올지를.


4개월 동안 우리는 매주 두 번씩 마주 앉아
기출 문제를 풀고, 반복 연습을 했어.

너는 지루해 죽을 것처럼 몸을 비틀다가도
어느 순간엔 또 괜찮게 집중했지.


힘들 때면 너는 귀여운 푸념을 하곤 했어.

“선생님, 그냥 엄마한테 말해요. 저는 바보라서 못 한다고요.”

나는 그때마다 웃어넘겼어.
너는 바보가 아니라, 충분히 해낼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이 모든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어.
시간도, 돈도, 여유도 있는 집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으니까.


시험 결과는 59점.
커트라인인 60점에서 딱 1점 모자랐지.

너는 속상해했고,
너의 아빠는 채점기관에 전화하려다가 참았다고 했어.


그리고 이틀 뒤—
드디어 너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어.

문자로만 대화하던 엄마 목소리를
그날 처음 들었어.


그리고 그 첫 문장은… 고함이었지.

“아니 그래서 포토샵에 여태까지 4개월을 쓰신 거예요?
코딩학원이라 코딩을 배우는 줄 알았는데 이게 뭡니까?”

엄마는 20여분 동안 큰 소리로 화를 냈어.

“엄마들은 돈보다 시간을 투자해요.
그걸 모르세요?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요.”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어.
몸 어디선가 떨림이 멈추지 않았고.

통화 말미에 엄마는 말했지.

“언젠가 직접 찾아가서 커리큘럼 다시 확인할게요.”


그래도 원준아,
나는 이 일을 ‘너의 실패’로 남기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다시 정식으로 문자를 드려
두 번째 시험은 반드시 합격시키겠다고 약속했어.


다시 수업을 시작했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너를 바라볼 수 없었어.
너를 보면 네 엄마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고
심장은 전화기 진동처럼 쿵쾅거렸거든.


그래도 너는 결국 해냈어.
두 번째 시험에서 전과 비교도 안 될 점수로 합격했지.

엄마는 “그땐 각자의 입장이 있었으니 이해한다”고 말하셨어.


너는 합격 발표가 난 날에도
내 앞에서 원숭이처럼 깡총대며 춤을 췄어.

근데 이제 나는
예전처럼 “아이고, 잘한다. 우리 원숭이”
라고 너에게 말할 수 없었어.

그 말이 어느 순간
나에게는 금지된 말처럼 느껴졌거든.


네가 학원을 그만둔 지 두 달.
나는 여전히 너를 문득문득 떠올려.

그리고 오늘,
문 앞에 떨어져 있던 그 구겨진 종이조각 덕분에
나는 너와 다시 닿았어.


그 종이를 휴지통에 버릴 수가 없더라.
그저 조심스럽게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어.


원준아.
두 달 뒤 네가 정말 돌아온다면,
나는 또다시 너의 엄마 목소리와 함께 너를 바라보게 될까.

…아니라고 약속할게.

너는 네 엄마가 아니라

작은 원숭이.
내 기억속에서 여전히 그 존재 그대로 기억해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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