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여섯 살이 된 아들은 벌써부터 파워 T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MBTI를 맹신해서라기보다는, 이토록 단순하고 명확하게 우리 아들의 성격을 설명해내는 언어가 있다는 게 신기해서다.
아들이 나에게 해주는 평가는 꽤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예를 들어 『백설공주』를 읽어주고 나서
“아들아, 넌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쁘지?” 하고 물으면
아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아니?”
당황한 내가 이유를 묻자, 아들은 아주 정직하게 설명해준다.
“엄마는 화장을 안 해서 안 예뻐.
우리 담임 선생님은 눈에 항상 무지개색으로 알록달록하게 화장을 하는데,
난 그게 예뻐.”
쌩얼에 자신 있던 내가 머쓱해지는 순간이다.
또 한 번은,
손을 턱에 괸 채 TV에 집중하고 있는 아들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아들, 너 꽃 같아. 손은 꽃받침 같고.”라고 말했더니
아들은 이내 자세를 고쳐 잡고 나를 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엄마는 똥꽃 같아.”
서글서글한 눈빛과 그렇지 못한 멘트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그래서 가끔은 부럽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해주고,
엄마가 늘 최고라고 말해준다는
동네 엄마들의 아들 에피소드를 들을 때마다
우리 아들도 나에게 그런 아낌없는 애정 표현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가?’ 싶은
쓸데없는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어제였다.
합기도를 마치고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이 “엄마!” 하고 외치며 두 팔을 벌려 달려왔다.
두 팔 가득 아이를 안아 올리자,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아들이 내 볼에 마구 뽀뽀를 해주고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싶었지만
이내 아이의 뽀뽀에 취해 행복을 만끽했다.
눈을 감은 채 아이를 꼭 안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들이 손으로 나를 떼어내며 말했다.
“엄마, 밥 먹기 전에 이 사탕 먹고 싶어.
이거 좀 까줄 수 있어?”
허탈한 웃음이 났다.
알고 보니, 뽀뽀는 사탕의 대가였다.
밥 먹기 전 간식을 금해오던 터라
합기도 학원에서 받아온 사탕이
유난히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아이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남편도 그랬다.
연애 초반, 남편은 나에게 ‘예쁘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았다.
잔뜩 화사하게 차려입고
발그스름한 볼 터치를 하고 나간 날에도
남편은 그저 데이트에 묵묵히 집중했다.
내가 얼굴을 한껏 들이밀며
“나 어때?” 하고 물으면
“귀여워. 근데 화장 안 한 얼굴이 더 자연스러워.”
라며 김 빠지는 소리를 했다.
참다못해 왜 여자친구한테 예쁘다는 말을 그렇게 아끼냐고 따지면
남편은 덤덤하게 말했다.
“난 널 예쁘다고만 정의하는 게 싫어.
넌 멋지고, 매력 있고, 아름다워.”
그때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싶어 어리둥절했지만
이상하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묘하게 수긍되는 느낌이랄까.
그런 남편이, 자신도 모르게
유일하게 나를 대놓고 예쁘다고 말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밥상에 차려낼 때다.
지난주였다. 외출도 하지 않아 머리는 이틀이나 감지 않았고
펑퍼짐한 파자마 차림으로 야인 같은 몰골로 주방에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한 그릇 떠서 밥상에 올려두고 잠에서 막 깬 남편을 불렀다.
남편은 느릿느릿 다가와 김치찌개를 한 숟갈 가득 떠먹더니
뜬금없이 말했다.
“여보. 오늘 왜 이렇게 예뻐?”
어이가 없어 폭소를 터뜨렸다.
6년 연애 내내 듣지 못한 ‘예쁘다’는 말을
김치찌개를 끓여줘서야 듣다니.
뭐, 감격스럽기도 하고 나쁘지 않았다.
오늘 사탕을 까서 주자
아들은 잔뜩 신난 얼굴로
또다시 내 볼에 입을 맞췄다.
아빠와 똑 닮았다.
내가 기대하는 애정 표현은 늘 비껴 가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은 이 부자의 방식.
두 남자만의 서툴고 특별한 애정 표현 속에서
나는 굳이 확인받지 않아도 괜찮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