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평온한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아이 등원 후의 오전, 그리고 육퇴한 밤이라고.
아이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시간들이 기다려진다.
오늘도 그랬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아들의 아침밥부터 준비한다.
메뉴는 내 컨디션이나 아이의 취향에 따라 그날그날 달라진다.
바삭한 토스트를 굽기도 하고, 따뜻한 떡국을 끓이기도 하면서 주방은 금세 분주해진다.
그릇과 수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아이는 잠에서 깨어 식탁 앞으로 온다.
업무 특성상 출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남편은 아침을 재촉하지 않는다.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곁에서 수다를 들어주고, 옷가지를 챙기며 등원 준비를 돕는다.
남편이 아이와 함께 현관문을 나설 때, 비로소 부산스러웠던 아침이 끝난다.
아이가 등원하면 집 안에 조용한 공기가 내려앉는다.
설거지를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린다.
커피 향이 집 안에 은은하게 퍼질 즈음, 삐삐삑— 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온다.
우리는 둘이 오붓하게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한다.
창문으로 오전의 햇살이 깊숙이 들어온다.
식사를 마친 남편은 양치를 하고,
나는 바닥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한 자세로 빨래를 갠다.
수건 한 장, 양말 한 켤레가 유난히 부드럽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남편은 빨래를 개는 내 모습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말한다.
“여보, 나 불편해.”
나는 긴장한 채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묻는다.
“응? 뭐가 불편해?”
남편은 민망하게 웃으며 말한다.
“난 그냥 쉬고 있는데, 여보는 빨래를 개고 있잖아.
나만 편안한 것 같아서 불편해.”
나는 피식 웃고 만다.
남편은 가끔 오작동이 걸린 로봇처럼 말이 쉽게 삐걱댄다.
아이 등원, 육아, 살림, 그리고 일까지—
모든 걸 함께 해내면서도 늘 ‘불편하다’고 말한다.
나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답한다.
“아 그래? 여보는 불편해? 근데 어떡하지. 난 행복해.”
늘 불편해하고,
불편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내 일상은 행복하다.
한가득,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