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이 들었다.
나는 글쓰기 초임자답게, 방장과 윤시화 대신 직접 나서기로 했다.
곧 ‘오예스’라는 닉네임을 ‘몽쉘’로 바꾸고 글 한 편을 썼다.
제목은 《몽쉘, 글쓰기 모임에서 당신은 왜 글을 쓰지 않나요?》였다.
살아 있는 메시지를 담은 글.
내가 여태 쓴 글 중 가장 짜임새 있었고, 힘이 있었다.
그 글을 게시판에 업로드한 뒤,
방장과 윤시화에게 1:1 오픈채팅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글을 썼는데, 문제가 되면 내리겠습니다.”
방장은 금세 읽고 물었다.
“이거 픽션이에요? 우리 모임 이야기 같긴 한데 닉네임이 달라서요.”
그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글을 시작한 지 고작 한 달 남짓, 장르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이 글이 ‘100% 리얼 에세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실시간으로 ChatGPT에 장르를 물어보고 곧 답했다.
“아, 픽션 아니고 에세이입니다.
몽쉘은 오예스, 방장은 방장님 맞습니다.
제가 아직 에세이밖에 못 써서요.”
그러나 이상했다.
한국문학을 논하던 방장이 내 글의 장르를 몰랐을 리 없었다.
또 하나, 그다음 말도 의아했다.
“오예스는 게시판 안 들어오니 올려도 될 듯요.”
나는 몽쉘이, 반드시 그 글을 읽어주길 바랐다.
그리고 그제야 희미하게나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감이 왔다.
“죄송합니다.”라는 인사.
그게 잘못이었다.
나는 칭찬받고 싶었던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숙이며—인정 욕구였다.
서둘러 채팅을 닫으려던 그때, 방장은 또 말했다.
“제가 아는 문예창작과 선배가 그러더라요.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솔직함.
그리고 또 하나—칼끝은 절대로 남을 향하면 안 되고,
자신을 향해야 한다더라고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글쓰기 한 달 차에게 문예창작과 이야기를 왜 꺼냈을까.
‘칼’이라는 단어는 또 뭘까.
내 글은 나를 해부한 글이었다.
그리고 칼을 맞을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제 글은 확실히 남을 겨눈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방장은 곧바로 답했다.
“예예. 우리 모두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
모두 목적을 이루는 글쓰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허무맹랑하고 황급한 마무리.
칼이라는 단어로 먼저 찌르고도, 찌른 줄 모르는 무지함.
찌른 게 아니라고 우기며, 지적하자 “예예”로 넘기는 회피.
그 칼이 어디가 잘못됐는지, 뽑아들 기개조차 없는 무책임함.
나는 바랐다.
제발, 이 모든 것이 방장의 말처럼 ‘픽션’이었으면.
하지만 이 장르의 끝은
이미 느와르를 향해 조용히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