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 편의 글쓰기를
나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마감일은 정해져 있었지만,
글쓰기 경험도, 기교도 없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건 오직 ‘나’뿐.
스스로를 파헤치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글을 위한 시간을 따로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일상 내내 ‘글감’과 ‘나’를 집요하게 떠올렸다.
그 과정에서 묵혀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숨을 가진 채.
하지만 감정만 파헤쳐 헉헉대기만 해서는 글이 되지 않았다.
그것들을 다시 줍고, 정제해야
비로소 한 편의 문장이 되었다.
일과를 마친 뒤 밤을 꼴딱 새운 날도 있었고,
교대 근무 중인 남편의 스케줄을 넘나든 날도 있었다.
아이 앞에서 퀭한 눈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죄책감과 싸웠다.
그렇게 두 번째 글감을 겨우 마쳤을 때,
나는 스트렙실을 털어 넣고
오픈채팅방 속 방장에게 말했다.
힘들다고.
방장은 짧게 답했다.
“편도가 가라앉길 바라요.”
무심하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말이었다.
그것은 위로였다.
그 순간, 당근모임에 처음 가입하던 날이 떠올랐다.
사실 내가 이 방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멤버 수가 적어서가 아니었다.
‘당근 모임’이라는 이름이
어딘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글쓰기는 고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오만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나름의 ‘참가 자격’을 얻었다.
노력으로 따낸 트로피처럼,
채팅방 대화에서도 나는 물꼬를 텄다.
방장은 자신이 만든 공간이 활기찼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은연중에 그 반색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예스’라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나보다 먼저 가입했지만 글을 전혀 쓰지 않았다.
대신 오픈채팅 대화에는 자주 등장했다.
주제는 아리따운 아내와 첫 만남,
아들 자랑 등, 글쓰기와 무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의아하게도 다른 멤버들은 그런 이야기에도
대댓글을 달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심지어 글은 쓰지 않으면서
지역 백일장에는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해되지 않았다.
글을 언제부터 쓸 것이냐는 윤시화의 은근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애 키우느라 바빠서요.”
순간, 가슴이 뜨겁게 일렁였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낮에는 직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면 반찬을 만들고 집안을 돌보며
다섯 살 아이와 놀아주다 보면
밤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키보드를 두드려
마감일을 지켜왔다.
그런 나에게 ‘바쁘다’는 말은,
내 노력을 한순간에 지워버리는
칼처럼 꽂혔다.
그동안 피를 토하듯 써낸 내 글들이,
그 한마디로 ‘안 바빠서 써낸 글’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다.
그는 이 모임의 본질과 규칙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