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오픈채팅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방장 말고도 한 명 더 있었다.
그녀, 윤시화.
내가 당근모임과 오픈채팅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따스하게 인도해준 인물이었다.
프로필 사진 속 그녀는 한 폭의 유화였다.
한 손을 턱에 괸 채,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
발랄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표정.
그림 속 여성은 마치 윤시화의 초상 같았다.
언제나 그녀는 그렇게 다정했다.
오픈채팅에서도, 글쓰기 게시판에서도.
내가 첫 글감 《제주도》를 썼을 때,
그녀는 내 한국어 실력을 칭찬했고,
두 번째 글감 《집》을 올렸을 땐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세 번째 《술》에 이르러선, 박수까지 보냈다.
그녀는 내 서사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것 같았다.
아니,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럴 만했다.
그녀는 나보다 스물두 살 많았고,
특수부대 여군 출신이라고 했다.
직업군인 남편, 세 딸,
그리고 직장까지 다니며 매주 글을 쓰는 여자.
그녀의 블로그엔 서평이 가득했고,
그녀의 삶은 강인함과 우아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나는 문학적 은유로 표현했다.
바람과 해님의 이야기처럼—
윤시화는 따스한 햇살로 내 마음을 녹여주는 사람이었다.
《오예스, 글쓰기 모임에서 당신은 왜 글을 쓰지 않나요?》
라는 글을 올렸을 때,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오예스가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고,
내 글은 불편하지 않았다고,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제가 인정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그 말과 함께, 1:1 채팅방을 닫았다.
그런데 마음 한편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인정이, 나를 비장하게 만들었다.
윤시화 같은 독자 한 사람만 있어도,
나는 끝까지 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글감 <<가정>>이 제시되었다.
나는 그 안에 내 혼을 갈아넣었다.
스트렙실도, 부은 편도도 필요 없었다.
그저 ‘쓴다’는 감각만 남았다.
글을 완성한 뒤, 나는 게시판에 올렸다.
방장과 멤버들이 칭찬을 남겼지만,
나는 기다렸다. 윤시화의 댓글을.
기다림 끝에,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나보다 더 찬찬히 삶을 살펴보았어요.”
우아한 서문 같았다.
그러나 곧 이어진 말에, 나는 얼어붙었다.
“제가 그 상황이면 남편한테 백만 대 맞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말은 버르장머리 없을 때 듣는 말이에요.”
우아했던 문장이,
갑작스레 거친 뼈대를 드러냈다.
그녀는, 내가 아닌
내 글의 인물을—아니, 나를 직접—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유쾌한 농담처럼 툭 내던졌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따뜻함은, 일종의 기세 탐색이었다.
인정은, 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