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패밀리, 크리스마스의 온기를 전하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오천 명을 배부르게 했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다. 수로만 보면 턱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나눔의 손을 거칠 때, 숫자는 사라지고 공동체는 살아난다. 성경은 이 장면을 기적으로 기록했지만, 요한복음 6장을 읽을 때마다 한 가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기적이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작은 것을 내어놓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성경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도 누군가의 일상에서, 말없이 반복되는 선택을 통해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사단법인 52 패밀리는 그런 선택을 한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 온전히 함께 누리는 삶의 방식으로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전국의 아동양육시설을 향한 크리스마스 나눔은 그들의 오랜 약속과도 같달까. 해마다 돌아오는 연말, 특별한 선물보다 어떻게 마음에 먼저 닿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낯설고 막막했다. 3년 전, 나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던 것처럼.
충남 당진에서도 해마다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나눔 역시 전달에 그치지 않았다. 아이들이 직접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먼저 받았다. 그런데 리스트를 읽어 내려가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특별한 날에 한 번쯤 꿈꿔볼 법한 선물이 아니라, 일상에 꼭 필요한 물품들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알람 시계, 우쿨렐레, 고구마 과자, 헬로키티 이불, 장난감과 옷, 학용품…. 목록은 담담했지만, 그 이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떠올려주길 바라는 마음, 그 기다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12월 첫째 주, 단체 대화방을 통해 모임 일정을 알렸다. 회원들은 한자리에 모여 이번 만남을 앞두고 반드시 지켜야 할 주의 사항을 다시 확인했다. 아이들에게 전하는 편지에는 종교적인 내용이나 개인적인 감정을 담지 않기로 했고, 연락처 교환 역시 원칙적으로 지양하기로 했다. 선의에서 비롯된 작은 행동이 자칫 아이들을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지역에서) 연락이 이어지다 금전적인 부탁으로 과도한 상황이 이어졌고, 그런 과정에서 아이들이 시설 밖으로 무단외출을 하게 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공지 사항의 원칙들은 불편하더라도 분명히 공유되어야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처음 참여한 한 회원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현실을 들으며 조용히 슬픈 미소를 지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눈가에는 이내 눈물이 맺혔다. 해마다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이들을 만나며, 새롭게 알게 된 상황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아동학대와 폭력의 아픔을 안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것도. 그런 현실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넘겨두고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는 알아도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인사를 건넨다고.
이후 모두가 둥글게 모여 앉아 각자의 마음을 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펜을 쥔 회원들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쑥스러워했다. 생각해 보면 요즘 SNS나 메신저에 익숙해져, 마음을 손 글씨로 표현하는 일에 점점 서툴러지고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회원들은 각자 맡은 아이의 선물을 정성껏 준비했고, 온기 담은 마음으로 손 편지를 써 내려갔다. 목록에 맞게 선물 하나와 함께, 아이들을 진심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시간이 담겼다. 그 시간이 온전히 닿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충남 당진에 국한되지 않고, 크리스마스 나눔이 더욱 깊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52 패밀리 회원들은 예산의 새감보육원과 서산 성남보육원, 천안 신아원을 차례로 찾아 아이들과 크리스마스를 함께해 왔으며, 최근 3년 동안 (리더를 맡은 나를 포함해) 천안 삼일육아원에서 같은 계절을 반복해 만나고 있다. 청소년들은 3년 전보다 눈을 마주 보고 인사도 나누며,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닌 다시 만나는 이모들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예측할 수 없는 감동이 해마다 서로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였달까. 감동은 받는 사람에게도 깊이 남았지만, 어쩌면 선물을 건네는 이들의 마음에 더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지난 27일, 천안 삼일육아원 강당에서는 52 패밀리 회원들이 준비한 (손편지) 선물 전달과 함께 크리스마스 공연이 열렸다. 앤톤윤 유튜버의 클라리넷 연주를 시작으로, 서산시립합창단 소프라노 김영실, 예담컴퍼니 김주희 대표의 뮤지컬, 예담컴퍼니 소속 피아노 연주와 남경일 대금 연주가 이어졌다. 여기에 행사 하루 전 급히 꾸려진 <비대칭팀> 유지영 단장의 K-POP 댄스까지 더해지며, 서로 다른 장르의 무대가 적극적으로 펼쳐졌다.
화려함보다 마음이 앞선 공연이었다. 당진에서 천안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해 준 이들 역시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이었다. 평소 5년 넘게 알고 지낸 셀럽분들이 같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은 자연스레 두 배가 되었다. 이날 행사의 진행과 무대를 맡은 앤톤윤 유투버는 위트 있는 진행과 클라리넷 연주로 현장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행사의 진행과 중간중간 어색해질 수 있는 순간마다 아이들과 가위바위보를 하며 QR코드 편의점 쿠폰을 건네는 깜짝 이벤트를 진행해 웃음을 더 했다.
과하지도, 가볍지도 않게 아이들의 눈높이에 몸을 낮추며 공연의 흐름을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 자리에 MC로 섰다면 분위기를 살리기는커녕 횡설수설했을지도 모른다.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은 말솜씨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라는 사실을.
“사실, 현장 음향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어려움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시간을 나눌 수 있어 더 의미 있었다”며 “저의 작은 재능이 학생들에게 기쁨과 감동이 되는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음향이 완벽하지 않아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다.
이지남 대표는 “2021년, 전국 아동양육시설에 갈비 한 끼를 전하고 싶다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 오병이어의 기적이 지금까지 1만 3,412명에게 닿았다”며 “그날 이후 우리는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넘어, 함께 기적을 만들어가는 가족이 되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전국) 52 패밀리 회원들의 나눔은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삶과 삶을 잇는 연대로 확장되고 있으니까.
2026년에도 전국 52 패밀리 회원들의 나눔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매월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밥톡톡’ 건강 밀키트 지원을 통해 사회로 적응해 나아가는 과정을 함께 걷고 있다. 거창한 조언 대신 “밥은 잘 먹고 있니?” 건네는 안부를 묻고, 혼자가 아니라는 응원을 담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