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이번엔 정말 가고 싶지 않았던 고등학교에 배정이 됐다.
언니가 다니고 있는 학교였는데 오래돼서 시설이 좋지 않았다. 워낙 신식 중학교를 다녔다보니 비교가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 부터 예체능을 좋아하고 잘했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공부에는 관심이 1도 없었다.
아,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는 국어나 문학은 좋아했다. 논술도.
어려서 부터 아빠가 항상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공부 빼고 다 잘한다고.
자전거도, 인라인도 놀이터 친구들꺼 빌려서 혼자 독학으로 터득했고 스케이트도 곧 잘 탔다.
중학교 땐 포토샵도 한참 관심있어서 장미가족의 태그교실이라는 다음카페를 보고 독학해서 그 당시 버디홈피나 싸이월드 배너 같은 것도 만들고 대문도 만들기도 했다. (이건 TMI 같지만 현재 사업체를 꾸린 형부의 명함을 그때 독학한 허접한 포토샵실력으로 구현해냈다. 형부가 아주 잘 쓰고 있다. 뿌듯.)
생각해보면 나는 이해하거나 좋아하는 관심분야는 곧 잘 하거나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거같다.
그 당시에 그것을 수능에 적용했더라면 나도 일반대학교를 갔었을까 싶다. 소위 말하는 나는 덕후 체질이다.
연예인으로 치면 버즈덕질을 엄청나게 했다. 특히 민경훈. 아직도 그 CD를 가끔 듣는데, 그때의 감정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이렇듯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끝을 볼 때까지 도전하는 편이고 관심 없는 것들은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이런 나를 좋아할 학교 선생님이 몇이나 될까.
나는 항상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반항심이 있었다. 말로는 다 똑같은 학생이라고 하지만 차별하지 않는 선생님은 살면서 딱 한분밖에 안계셨다. 고2때 담임 선생님. 선생님은 수학선생님이였는데 특히나 내가 제일 싫어하던 과목이였다. 수업시간에 한명씩 나와서 문제를 푸는 시간이였는데 관심도 이해도 못하는 나는 당연히 문제를 풀지 못하는대도 불구하고 나에게 나와서 풀게하셨다.
"선생님, 저 못풀어요. 몰라요."
"뒤에 해답지보고 그대로 적혀있는대로라도 적어."
선생님은 유일하게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나중에야 찾은 내 꿈을 유일하게 지지해주셨던 선생님이다.
지금도 1년에 한번씩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꼭 찾아뵙는다. 공부를 잘해야지만, 부모가 관심을 가져야지만, 말을 잘들어야지만 예뻐하는 그런 선생님이 내가 다닌 학교들에서는 9할정도이다. 물론 내 경험상이지만.
그때부터 줄곧 생각했었다.
각자가 다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고 관심이 있는 것도 가지각색인데 왜 인문계 고등학교라는 이 틀 안에서 나는 하기도 싫은 공부들을 배워야만 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찰나 우리 반으로 선배 3명이 포스터를 들고 찾아왔다. 교탁에 서서 동아리 홍보를 하는데, 이름하야 댄스동아리.
초등학교 때 부터 무대에 서는 가수가 되고 싶단 꿈을 가슴 깊숙이 가지고 있던터라 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동아리면 무료로 배울 수도 있고 엄마아빠를 속일수도 있겠단 생각에 친구들 몇몇을 모았다. 나 포함해서 4명정도였는데 동아리에 들어가려면 오디션을 봐야했고 그 당시 자취하던 친구네 집에서 비욘세의 Crazy in love, 브리트니 스피어스 Toxic 이런 팝송들을 틀어놓고 서로 얼만큼 춤을 출 수 있는지 다같이 막춤을 췄다. 당연히 잘 출리가 없었다. 막무가내로 2명씩 팀을 꾸리고 m.net을 보며 가수들의 안무를 조금씩 따라서 나름의 루틴을 짰다. 아 루틴보다는 동선이라고 보면 더 쉽겠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고, 우리는 운좋게도 모두 합격이 됐다.
한명은 그만두겠다고 해서 친구 2명과 함께 나는 댄스동아리에 들어가게 됐다. 그렇지만 춤을 배울 수 있다는 희망과 달리 우리 동아리는 학교에서 지원이 거의 없었고 동아리 선배들도 3학년 몇명 언니 빼고는 우리를 가르칠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3학년 때 단장언니가 유일하게 춤을 정말 사랑하고 잘추는 언니였다.
그 선배를 보고 따라하기도 하고 같이 무대에 서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었는데 그 행복도 잠시 선배는 고3이라 동아리 활동을 그만하고 학업에 매진했다. 그렇게 그 선배가 졸업을 하고 남아있는 우리 기수와 2학년 선배들은 안무를 짠다기보다 다른학교 동아리 영상을 보고 카피를 한다던지 방송안무를 따서 다른학교 찬조 공연을 가기도 하고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동대문 공연을 하면 그 당시 6000원 정도의 상품권 같은 것을 줬었는데 밀리오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였던걸로 기억한다. 재미는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왜 우리 동아리는 더 발전할 수 없을까, 안무를 스스로 짜내지 못할까 라는 고민이 늘 있었다. 그 쯤에 아 그럴려면 내가 학원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당시 유명했던 이효리 - 겟챠 안무가가 있는 신촌에 한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가게됐다. 내 나이 18살때 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