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알게 된 사회생활

학교에서 벗어나 알게 된 사람과의 관계

by 한은성

자발적으로 무언가 배우고싶다는 말을 해본적이 없던 나는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만 말을 했었다.

춤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아빠에게 어떻게 전달 되었는지 잘 기억 나질 않지만 어릴 적 아빠를 무서워 하던 나에겐 엄마는 징검다리 역할이였다.


아빠가 나를 불렀다.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 춤은 왜 배우려고 하느냐 이런 류의 질문은 하질않고 다짜고짜 신촌에 있는 학원에 같이가봐야겠다고 말했다. 학원이라고는 엄마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엄마가게 미용실 위 속셈학원만 주구장창 다니던 나에게 부모와 함께 학원 상담을 간다는 것 자체가 새로웠다. 그리고 두려웠다. 왜 굳이 같이 가려고 하는거지? 라고 생각했다.


아빠와 단 둘이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를 간다는 것 자체가 생소해서 지하철을 타고 신촌역을 가는 내내 우리는 대화 한마디도 나누질 않았다. 현대백화점을 지나 신촌교회를 지나 내가 목표한 학원에 도착했다.


들어가자마자 학원내부에 붙어있던 대형기획사들의 오디션 포스터들이 내 눈을 사로 잡았다.

아, 저거다. 내가 여기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방법.

이 곳을 다니면 금방이라도 내 꿈을 이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데스크에 상담 받으러 왔다고 했더니 간략한 스케줄표를 보여주며 원하는 수업 선택해서 수강하면 된다고 상담직원이 말했다. 그 당시에 내가 배우고 싶던 춤은 걸스힙합이였지만 다른 장르들도 조금씩 다 배워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선택의 혼란을 겪고 있는 나를 두고 아빠는 상담직원에게 말했다.



"아니, 이게 상담이 끝이요? 여기 원장님을 뵙고 싶은데."

"아 저희는 따로 원장님 상담은 없고요. 제가 상담해드리고 있는데."

"그럼 만나서 얘기 나눌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 잠시만요."



데스크로 연결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간 상담직원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더니 우리를 원장실로 안내했다.

원장님은 3,40대 쯤 보이는 남자분이셨다. 어디에서 오셨냐, 우리 학원은 이러 이러한 커리큘럼이 있는 학원이다 짤막하게 담소를 나눈 뒤 원장님이 우리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 보통은 어린아이들 빼고는 부모님이랑 같이 오질 않는데, 그것도 아버님이랑. 신기하네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빠가 질문을 했다.



"저, 그래서 이 춤을 배워서 대학은 갈 수 있습니까?"

"아. 대학을 가길 원한다면 갈 수 있죠. 현재 우리나라에 3군데 대학교에만 전공이 있어서 선택해서 진학할 수 있습니다."

"졸업 후에는 진로가 어떻게 됩니까?"

"안무가가 될 수도 있고 댄서로 활동할 수도 있겠죠..?"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내내 아빠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며칠 뒤, 엄마가 나에게 학원비가 얼마냐고 물었다. 그 당시 한 클래스당 일주일에 두번 1시간 반 수업. 10만원-15만원선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욕심이 많던 나는 걸스힙합 클래스 말고도 다른장르의 클래스도 모두 다 들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걸스힙합 예비반 한개 클래스를 등록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조금은 두렵던 첫 수업날.

어떤 연습복을 입어야하고 어떤 연습화를 신어야할지 감이 오질 않아 집에있던 츄리닝과 운동화를 대충 챙겨갔다. 도착한 후 옷을 갈아입고 제일 구석진대 자리를 잡았다. 혼자 뻘쭘히 서있는데 사람들이 한두명씩 들어왔다.


다들 나같이 멍한 표정을 하고 두리번 거리며 탈의실을 찾아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말 그대로 '예비반' 눈인사 한번 오가지 않는 적막이 흘렀다. '다들 모르는 사이인가?'

몇분이 흘렀을까. 드디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허리춤에 남방을 두르고 두건을 쓴 머리 위에 캡모자를 쓴 선생님한테서 빛이 났다. 우와. 멋지다.

갑자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동아리에서 입던 짝퉁 아디다스 츄리닝에 체육복 같이 생긴 반팔티라니. 후


선생님은 CD수납가방에서 한장을 꺼내 CD플레이어에 넣었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음악을 틀기 위해 CD를 직접 구워 일수가방같이 생긴 CD수납가방?에 넣어 다녔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선생님은 큰 소리로 스트레칭 할게요~~~~~ 라고 외친 후 박자에 맞춰 스트레칭 하기 시작했다. 박수를 치면 방향을 바꾸는 것인데 처음하는거라 곁눈질로 힐끔 힐끔 보며 어버버 따라했다.

근데 나뿐만 아니라 그 클래스 안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같이 곁눈질 해가며 새천년 체조 따라 하듯이 따라하고 있었다. 허허

스트레칭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동작을 배우는데 제일 처음에 배웠던 동작은 지금도 잊질 못한다.


'목 아이솔레이션'(Isolation 1 고립,분리,격리 2 외로운[고립된] 상태)

말 그대로 목을 분리시킨다는 뜻이다.

동아리에서 춤을 췄어도 격렬히 가슴을 튕기거나 과도한 웨이브를 하거나가 전부였는데 목을 분리하라니.

그것도 상하체를 움직이지 않고.


그 당시 CF에서 유행하던 맷돌춤이 있었다. CF를 보며 혼자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했던 그 목 분리 동작.

마음은 이미 휘휘 돌리고 있지만 몸은 당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어깨를 움직이지 않고 턱으로 목을 옆으로 당기기. 그리고 고개를 세우기. 양쪽 다 시도 하고 연결동작. 후


아니 턱을 옆으로 당기는데 어떻게 어깨가 안움직입니까? 예?

답답할 노릇이였지만 동작 연습을 반복했다. 그러더니 신기하게도 삐걱 삐걱 조금씩 동작이 부드러워졌다.

오호? 조금 적응되려고 하니 다음 동작진도를 나갔다.

이번엔 골반을 튕기는 것인데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구부리고 왼쪽 오른쪽으로 골반을 위로 돌리는 것?

글로 쓰려니 좀 어려운데 하여튼. 어려웠다. 그렇게 첫 수업을 끝내고 신촌역까지 걸어가는 내내 머릿 속에서 수업 때 들은 음악이 맴도는 듯 했다. 나도 모르게 걸으면서 동작을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온통 춤 생각 뿐이였다. 나도 모르게 움찔 움찔거리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까 눈치를 봤다.



학교에 있는 시간 내내 춤 생각 밖에 없었다. 꼭 죽어있는 느낌이다가 학원갈 시간만 되면 몸 안에 세포가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 이제야 살아있는거 같다.

수업 시작 하기 몇분 전에 도착해서 스트레칭 하고 배운동작 다시 시도해보고 거울 앞에 내 모습이 점점 익숙해져갔다. 처음엔 어색하고 부끄러웠는데.



수업 시간 말고도 연습실을 쓸 수 있었는데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시간만 나면 학원으로 향했다.

한번은 예비반에서 친해진 친구랑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내 나이또래 쯤 되보이는 여자애들 4-5명 정도가 우르르 들어왔다. 우리를 위 아래로 쓱 훑어보고는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음악을 끄더니 자기들 CD로 바꿔 틀었다. 쟤네 뭐지? 평소에 할말은 하는 성격인 나조차도 너무 당황스럽고 학교가 아닌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당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음악소리에 맞춰 자기네들 끼리 배운 루틴을 맞춰보고 현란하게 골반을 돌려댔다.

나랑 예비반 친구는 기가 한껏 죽어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수 없었다.

그날의 수치스러움은 아직도 기억을 한다.



그 사건을 겪은 이 후 내가 했던 행동은 그랬다.

클래스에 온 모든 이들에게 말을걸었다. 그리고 친해진다. 같이 즐겁게 춤을춘다.

내가 처음 왔을 때 느꼈던 어색함과 소외감,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떨쳐내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똑같이 춤에 관심이 있어 온 사람들이기에 금방 친해졌고 그렇게 내 바운더리를 넓혀갔다. 그들과의 커뮤니티는 너무나 재밌었고 그렇게 나는 여러 클래스를 듣게 됐다.

여러 장르의 선생님들과 친분을 쌓고 스트릿댄스 장르를 하나씩 섭렵해나가는 재미도 느꼈다.

그러다보니 어느순간 클래스 단계도 조금씩 높아지고 아는사람도 꽤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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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적었던 연습일지 ]



그리고 어느 날 수업시간이 아닌 시간에 홀에서 친구들과 연습을 하고있었는데 그녀들이 등장했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의식하지 않으려했다. 근데 이 쪽으로 걸어오는게 아닌가?

그리고서 한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 저 혹시 어떤반 수업 들으세요?"

"걸스힙합 초중급반인데요. 왜요?"

"그러시구나~ 잘하시는거같아서. ㅎㅎ 같이 연습해요!"

"아 네, 뭐. 혹시 CD 바꾸실거면 바꾸셔도돼요"

"아니에요! 음악 좋은데요?^^"



불과 몇달 전과 이렇게나 반응이 다르다니. 거기서 느꼈다. 아. 이것이 작은 사회이구나.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의 사회란 것이구나.


소위 발이 넓다는 이유, 실력이 예비반때 보다는 나아진 이유로 대하는 태도들이 저렇게나 다르다니.

웃겼다. 그들은 내게 저질렀던 사건은 기억도 못하겠지. 얼굴도 기억 못하겠지.

나는 니들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단다.


억지로 발을 넓혀야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소외감드는 환경이 싫어서 손을 먼저 뻗었던 것 뿐이고

욕심이 생겨 많은 장르수업을 듣고 열심히 연습한 것 뿐인데.

그들이 무엇이라도 된냥 우르르 몰려다니며 학원 물을 흐리는 것을 보면 참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러사건을 겪고 춤을 추다보니 춤에 대한 애정도가 점점 높아져갔다.

내가 처음에 꿈꿨던 가수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댄서들만의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도 참여하고 싶어졌고 몇몇 친구들과 배틀 참가를 하기위해 연습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배틀 참가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이 있었다.

나만의 춤. 프리스타일.

어떤 음악이 나올지도 모르고 어떤 BPM일지도 모르는. DJ가 틀어주는 음악에 즉흥적인 춤을 춰야하는.

이제껏 학원에서 배웠던 기본기와 안무가 아닌 음악에 맞춰 나의 춤을 춰야한다는 것.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음악에 맞게 짜여진 안무나 기본기만 배웠던 터라 어떻게 프리스타일을 해야하는지를 알지 못해서 참가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렇지만 일단 참가신청을 하라는 여러 선생님들 말씀에 나와 친구는 덜컥 신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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