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서울게 없던 14살
중학교 배정식 날, 나는 뜻밖에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우리 초등학교와 1분거리에 있는, 언니가 다니는 중학교에 배정 받을 줄 알았는데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새로 지은 중학교에 배정을 받게됐다. 좋은건지 싫은건지.
사실 초등학교 때 지금의 성격과 다르게 많이 내성적이였던 나는 그 당시 소위 말하는 노는무리의 친구들을 선망했다. 그들은 멋져 보였고 권력자 같은 느낌도 풍겼었다. 어린 마음에 같이 어울리고 싶어 많은 시도를 했지만 거의 꼬붕처럼 졸졸 쫓아다니는 꼴이였다. 어떻게 보면 그 무리와 끊어낼 기회였기에 차라리 잘 된 거일수도.
그렇지만 나의 중학교 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1학년 때 정확히는 엄마가게의 손님의 딸, 그러니까 아는 언니가 이미 우리학교 유명한 언니였던거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인사를 하고 이따가 여학생탈의실로 오라고 하는거다.
들어갔더니 나 빼고 이미 여러명의 1학년 신입생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있었다. 그때 뭐라 말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질 않지만 우리 후배 할 사람들 뽑는다고 했던가? 짝후배 이런거 정한다고. 그러니까 일찐놀이를 하고 있던거다.
여기서부터 나의 잘못된 선택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때 선망했던 그 무리 안에 내가 들어갈 수 있다니!
나도 권력을 쥘 수 있겠구나 라는 어리석은, 정말 어리석은 생각으로 중학교 1학년 방황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았다. 1년동안 그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교를 누비고 다녔다. 정말 나대고 다녔다. 그 어린나이에 뭘 안다고 그 안에서 패를 가르고 죄의식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서로 치고박고 싸우기도 했다.
계속 그렇게 밖으로 나돌았다. 당시 아빠는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며 목포에 내려가 있는 상황이라 겁대가리를 상실했었다. 학원친구와 함께 문방구에서 그때 제일 비쌌던 하이테크 펜을 무더기로 훔쳤었다. 당연히 CCTV에 고스란히 녹화가 됐고 문방구사장님은 학원으로 우릴 찾으러 왔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난동을 피웠고 선생님은 진정하시라며 우리를 따로 불렀다.
"너희 엄마 불렀으니까 곧 오실꺼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제발 엄마한테만은 알리지 말아달라고 사정했다. 그때 학원 1층 CCTV에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나를 반 죽도록 때렸고, 곧장 문방구로 안내하라고 했다.
난생 처음 우리엄마가 남 앞에서 무릎 꿇은 것을 보았다. 그것도 본인의 잘못이 아닌 나 때문에.
철딱서니가 없고 죄의식이 없던 나에게 이상한 감정이 마구 들었다. 눈물이 흘렀다.
엄마 왜그러냐고 일어서라고 하는데도 엄마는 문방구 사장님한테 자식을 잘못 키운 제 잘못이라고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 그 장면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잊지 않는다. 왜 나 때문에 엄마가 잘못을 빌어야 하지? 그렇게 계속 생각하며 집으로 왔는데 학원을 마친 언니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와서 나를 마구 때렸다.
언니랑 아무리 싸웠어도 단 한번도 날 때린적이 없었는데. 오히려 내가 힘이 쎄서 막으면 막았지.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내 마음속 깊숙이 느껴지는 죄책감과 창피함과 미안함과 허탈함 등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 맞아도 할말이 없었다.
그 사건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몇명은 전학을 가고 학교에서 부모님을 호출해 우리를 해체 시키게 했다.
그렇지만 학교 선배들 때문에 불안한 우리엄마를 포함해 몇몇 부모님들이 우리를 데려다주고 데리고오길 매일 반복했다. 그리고 또 1년이 흘러갈 쯤에 남아있는건 우리엄마 하나였다.
다들 몇번 반복하시다 그만 두었고 우리엄마만 완벽히 내가 학교에 다시 적응할 때 까지 나를 놓지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그 무리에서 나오게 됐고, 중3이 되어 내 인생에 어쩌면 첫번째로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거기서 만났다. 그래서 내 기억은 중3때부터가 훨씬 더 많다. 체육선생님이셨던 담임선생님을 필두로 우리 반은 체육 특기반이 됐다. 그 안에서 나는 실내축구 에이스로 뛰기도 했고 계주에 나가기도 했고 여행도 가고 야영도 하며 더욱 돈독히 지냈다. 1년의 행복했던 추억들을 지나 졸업식 날 울음바다가 됐었다.
이별이란 너무 아픈 것이라는 것을 그 쯤부터 알았던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