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가수인가 댄서인가

by 한은성

그렇게 한번 춤 세계를 겪고 난 이후에 내 삶은 자연스레 달라지고 있었다.

원래 가수가 꿈이였던 내가 올장르 댄서, 안무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다른 평범한 나이대 친구들과 다르게 살고 싶었던 것인지 달랐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뭘 선택하더라도 뻔한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던거 같다. 그렇게 학교보다 학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내 삶은 온통 춤이 되었다.


고3때, 엄격했던 아빠는 학원시간에 맞추어 어쩔 수 없이 통금시간을 12시로 정해두는 것을 탐탁지 않아했다. 웬만큼 늦게 끝나는 수업이거나 연습을 조금이라도 한다치면 훌쩍 10시가 넘기 마련인데 최소한 10시반 쯤에는 출발해야 12시 도착이 가능했다. 가파른 신촌 언덕길을 경의중앙선 차 시간에 맞추어 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느 날은 홀에서 연습을 하고있는데 친한 학원 강사언니가 말을 걸었다.


"대학은 안갈거야?"


원래부터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대학진학도 그다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대학이라..음



"원래 대학은 갈 생각이 없었는데.. 왜요?"

"곧 서예종 수시 있잖아~ 혹시 모르니까 한번 넣어봐. 내 수강생들도 그 학교 준비 많이 하던데."



대학? 내가 대학을 간다고?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삶이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했던거 같다. 머리가 터질만큼.

두려움도 많았고 집안 형편도 그렇고 내가 가서 잘해낼 수 있을까도 그렇고 여러가지를 생각하느라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진학하는 것이였다.

내가 진학하려는 학교에 교수진이 너무 좋았고 사실은 대학교 생활도 경험해보고 싶어서였다. (내 삶의 모토는 죽기 전에 경험할 수 있는건 다 해보자 이니까)

그렇지만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특히나 내가 대학을 가고싶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기에 부모님에게 의논하는 것이 더욱 고민스러웠다. 그 장면이 자세히 기억 나진 않지만 아빠가 했던 말은 정확히 기억이 난다.



"그래 알겠어. 대학생활은 한번 해봐야지."



붙지도 않았는데 붙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인정욕구가 강했던 내가 특히나 무뚝뚝한 우리 아빠한테 무언가 허락을 받은 느낌이랄까.


그 뒤로 나에겐 대학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동아리안에서도 학원에서도 따라하기만 했지 내 춤을 창작해 본 적은 없었는데 학원에 수많은 수강생들이 똑같이 배운 작품으로 수시를 볼 것 같은 생각에 창작을 하기로 했다.

창착이라는 벽은 높았고 음악을 고르는 것 부터 시작해서 동작과 표현의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학원에서 배운 작품과 내 창작품과 섞기로 했다. 그렇게 창작품의 시간을 줄였다.


사실 언니에게 수시 얘기를 들었을 때 이미 몇주가 남지 않은 상황이라 마음이 급했는데 다행히 음악을 고르니 동작은 금방 짜게 됐다. 물론 굉장히 단순하고 반복적이였지만. 몸에 많이 익히기 위해 매일을 연습했다.


수시 날짜는 금방 다가왔다.

학원 친구랑 함께 갔었는데 동아리활동으로 남들 앞에서 공연을 해본터라 그렇게 떨리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내 차례가 되고 401호 면접장에 들어선 순간 교수님들의 시선과 차가운 공기에 손과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때 수시 인원이 많이 몰려서 1분까지만 보고 자른다는 것이다.

내가 준비한 춤은 2분30초 가량이고 내가 짠 안무는 뒷부분인데. 남들과 똑같은 춤을 추고 싶지 않아서 내가 짠 부분부터 틀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DMX - Get in on the floor 가 흘러 나오고 너무 긴장한 탓에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춤을 췄다. 사실 긴장한 것도 있지만 동아리에서 처음 춤을 배울 때 제일 중요한 것이 파워풀하게 춰야 무대 밑에서 잘 보인다고 세뇌교육을 받아서인지도 모르겠다. 1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면접 질문이 시작됐다. 어디 학원출신이냐 물었고 누구에게 배웠느냐는 질문도 있던거 같다. 그 당시에는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나이를 들고 생각해보니 이 것이 사실 중요했던 것일까 싶다. 어느정도 춤을 췄나 안무는 직접 짰나 이런 질문들도 있었다. 교수님들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떨며 어버버 대답을 하고 나갈 때 90도로 인사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교수님들 꼭 다시 한번 뵙고 싶슴다!!!!!!!!!!!"


이게 나의 최후의 보루였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창피스럽긴 한데.

그때는 진짜 합격하고 싶었거든.


그리고 일주일 뒤 쯤인가 발표가 났다. 결과는 합격.

뜻하지도 않게 대학생이라니. 내 인생에 대학교를 다니게 될 줄이야.


그리고 학교에 소문이 났다.

우리학교에서 이번년도 수시합격한 첫번째 였기에. 친구들은 날 볼때마다 축하한다며 부럽다며 말해주었다.

내 꿈을 유일하게 응원해주시던 고2 때 담임선생님도 같이 좋아해주셨다.

근데 나머지 선생님들은 아니였나보다. 별반 관심도 없을 뿐더러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문학시간이였는데 여고의 총각선생님이라 인기도 많고 나도 한때는 좋아했던 선생님이였다.

들어오자마자 하는 말.



"여기에 수시 붙은사람이 있던데 누구야?"

"은혜요, 은혜!"



나 대신 친구들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문학선생은 날 보며 질문을 했다.


"어디학굔데?"

"서울예술종합학교요." (지금은 바뀌었지만 그때 학교명칭은 저랬다.)


"아~ 거기? 돈만 있으면 아무나 가는데?"



저 문장은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19살 어린소녀의 마음에 어마무시한 상처와 창피함과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친구들이 수군대는 것 같았고 내 얼굴은 벌게졌다.


당장이라도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저 문장을 내뱉은 후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하는데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혹여나 막말로 돈만 있으면 다 가는 학교라 할지라도 나는 일부러 돈만을 들여 가는 아무나가 아니며 선생의 위치에서 자기학교 학생에게 말하면 안될 말을 했다는 것 쯤은 알고있었다. 그때는 상처 투성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은 정말 미성숙하며 차별에 극대화가 되어있는 대한민국의 교사였다.


나에겐 목표가 있었기에 열심히 준비해서 이룬 것이기에 부끄러움은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이미 수시합격한 나는 학교에 더 이상 애정이 남아있지 않았고 수시합격을 하면 2학기엔 학교를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은 빼주려 하지 않았지만 고2 담임선생님이 잘 말씀해주신 덕분에 2학기 학교생활은 하지 않고 졸업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인생의 첫 노동,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시점이다.


당시 언니 친구가 일하고 있던 미스터피자에서 일했는데 노동에서 느낀 첫 사회생활이였다.

매니저가 보통이 아니여서 금방 관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몇번이고 그만두고 싶었고 한번은 사장님한테 그 매니저 때문에 일 못하겠다며 울면서 전화했던 적도 있다.

그렇지만 언니 친구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 않았기에 버티며 반년이나 일했다.


나중에는 그 매니저에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어렸는데도 그 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이 하나있다.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없을수록 자기방어를 한다고. 매니저님이 딱 그랬다.

나이는 지금 내 나이 쯤이였던거 같은데 18,9살 고등학생들 상대로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여러가지 히스테리를 부리곤 했다.

나름 악바리인 나 조차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분명한 건 그만한 이유가 조금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매니저님과 친해지고 나는 그 지점 우수사원으로 뽑혀 잡지에 사진이 실리고 상품권도 받았다.

내 기억으론 좋은사이로 남았던거 같다. 그때 느꼈던 사람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진심은 통한다는 것. 나의 인생에 좌우명, 가치관이 되었다.


그렇게 미스터피자 아르바이트와 학원을 오가며 반년을 보낸 후, 2009년 나는 춤추는 대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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