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종합학교 실용무용예술학부 스트릿댄스 락킹전공
나는 걸스힙합이라는 장르로 입학했는데 OT때 장르를 바꿀 수 있는 기회에서 락킹이라는 장르로 변경했다.
욕심이 너무 많아서 학원에 다닐 때에도 한가지 장르만 배운 것이 아닌 팝핑,락킹,걸스힙합,힙합 등 여러가지 장르도 함께 배우고 크럼프는 따로 크럼프 레슨만을 하던 연습실에 가서 배우곤 했다. 난 모든 춤이 좋았다.
춤마다 특징도 다 다르고 느낌도 다 다르고. 결과적으로 나는 모두 다 잘하고 싶었다.
지금 원밀리언댄스스튜디오 대표인 리아언니를 동경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올장르 여자 댄서로서 최고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내가 다니던 학원에서 독립 후 따로 연습실을 차렸을 때도 혼자 레슨을 받으러 갈 만큼 좋아했다. 팝핑과 락킹을 전문으로 하는 연습실에 꽤 오래 다니기도 했고. 이렇게 여러 선생님들에게 춤을 배웠는데
대학교 전공은 단 한가지만 선택할 수 있기에 꽤나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그 고민을 하던 당시에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추천했던 장르는 락킹이였다. 내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며.
사실 다 재밌고 좋아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조언으로 받아들이고 전공을 락킹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전공은 락킹이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춤을 사랑했다.
살면서 무엇인가를 이렇게 열심히 해본 것은 중학교 때 실내축구대회 이후로 처음인 듯 하다.
어렸을 때 부터 공부해야된다, 성적표 가져와라 이런 쫓기는 듯한 말들에서 해방되어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하고 심지어 배우는 학교라니.
다른 수업들을 도강하고 학교가 끝나면 매일을 강의실에서 연습하곤 했다. 방학 때도 혼자 나와서 연습하고 배우고 싶던 소울이라는 장르를 찾아가서 배우기도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재밌기도 했고 잘하고 싶었기에.
춤은 내 인생에 전부였다. 이대로만 살면 돈과 명예는 알아서 쫓아올 것만 같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행사에 참가하게 됐다.
처음 참가했던 행사장에서의 불명예를 깨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나에게 무대공포증이라는 크나큰 산이 있었다. 즐기는 사람을 못이긴다는 말은 진리인 것을 깨달았다.
수업시간에나 친구들끼리 놀며 싸이퍼(동그랗게 모여 프리스타일을 하는 것)를 한다거나 할때는 아무런 욕심도 긴장도 없기에 진정 내 춤이 나왔다. 음악을 즐기고 표현할 줄 아는 프리스타일을 했고, 배틀에만 참가하면 얼어버리고 긴장하고 음악도 듣질 않는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프리스타일을 했다.
즐기는 나를 행사장에서 꺼내기란 너무 힘든 과정이였다.
어떻게 하면 힘을 뺄 수 있을까, 음악을 잘 들을 수 있을까에 대한 나의 결론은 많이 참가하는 것이였다.
그 날 이후로 닥치는 대로 행사에 참가했다.
근데 정말 신기한 건 매번 예선탈락을 했던 내가 어느순간 예선통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행사장에 많이 가다보니 환경에 적응하게 되고 아는사람도 많아지니 편해지고 자신감이 붙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재미를 많이 느꼈다. 물론 이기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러던 중 대학교 2학년 때 지포핫투어라는 대회가 열렸다. 지포라이터에서 주최하고 전국 대학 댄스팀의 최고 자리를 두고 경연을 펼치는 행사로 크루배틀 부문과 퍼포먼스 부문이 나뉘어 심사되었다.
이 대회로 말하자면 나에게는 정말 특별한 대회이다.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을 할 때 이 대회에 참가하여 수상한 대학교 댄스팀 안무를 따다가 축제 때 선보인 적이 있다. 어린 춤 꿈나무 들에게는 너무나 멋진 꿈에 무대였고 저런 대회에 한번쯤은 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21살, 나는 그 꿈의 무대에 서게 됐다.
대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된 후 같이 퍼포먼스 준비를 할 여러 장르의 친구들을 모았다.
우리는 그렇게 10명이 되었다. 학교 내에서도 선발전이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우리팀이 참가하게 됐다.
그때부터 한달 간에 죽음의 새벽연습이 시작됐다.
10명이 합을 맞춘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게 아니였다. 3분에서 5분사이 곡을 완성하기 위해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의견차이로 울고 웃으며 점차 완성해갔다.
대중들은 그저 짧은 시간동안 공연을 감상하기만 하면 되지만 그 짧은 공연을 위해 댄서들은 음악선정부터 시작해서 동작, 흐름, 의상, 퍼포먼스까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려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그 음악이 지겨워 죽을 때 까지 듣고 연습하고 외우고 또 외운다.
그렇게 한달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대망의 공연날.
많이 떨리고 긴장됐지만 열심히 연습한 만큼 나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감도 있었다.
1등은 무조건 적으로 우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고, 그때부턴 즐기기 시작했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큰 무대에 섰을 때, 내가 좋아하는 심사위원 댄서분들과 응원해주는 선배들, 공연을 보는 대중들 앞에서 환호성과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단 하나, 내가 하는 동작 중에 뛰어서 착지하는 동작이 있었다.
이 동작은 연습할 때 부터 불안불안했고 나에겐 버거운 느낌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착지를 잘 못하고 말았다. 재빨리 틀리지 않은 척 다음동작을 이어갔다. 음악을 들으며 멘탈을 부여잡으려 노력했다.
다행히도 그 뒤론 틀리지 않고 무사히 공연을 끝마쳤다. 끝난 후 자책감에 시달리며 다른 학교들의 공연을 보며 순위 발표만을 기다렸다.
두구두구두구.
" 2010 지포핫투어 퍼포먼스 부문 1등은요....! 서울종합예술학교!! "
우리 학교와 팀명이 불렸고 소리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한달동안에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 머리 맞대고 고민했던 일들.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 통틀어서 제일 기뻤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 일을 계기로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었던게 제일 큰 마음이였던거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배틀이나 공연행사에 나가서 1등했던 적이 없던 나는 이렇다 할 재능을 증명할 길이 없었기에 부모님의 불안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특히나 부모님 세대는 내가 추는 춤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였고 정보도 없었기에 무슨 춤을 추는지 전공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도 힘들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빠는 나에게 졸업 후 춤을 그만두라는 말을 계속 해왔었다. 하도 그러니까 그때까지 1등한 적이 없었는데 1등한 친구의 상패를 빌려 아빠를 설득해볼까도 생각했었다. 나는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은 기다릴 마음이 없으신거 같았다.
그러기에 수상은 더욱 기뻤다. 상패는 학교에 전시가 됐고 집에 가자마자 상패를 들고 찍은 내 사진을 아빠한테 보여줬다. 1등했어. 나 드디어 1등했다고.
그 말 안에는 나 계속 춤 춰도돼? 나 춤이 너무좋아. 춤 추고싶어. 라는 많은 말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빠의 반응은 뜨뜨미지근했다. 아 그러냐, 잘했다. 끝.
그날 밤 침대에 누워 꺼이꺼이 울었다. 내가 바랐던 반응도 아니였고 허락도 아니였기에.
그리고 며칠이 흐른 뒤, 지포핫투어 홈페이지를 들어가기 위해 아빠 컴퓨터를 쓸 일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또 펑펑 울어버렸다.
네이버 검색창에 지포핫투어를 친 순간 이미 검색하여 클릭했던 흔적이 있는 것이다.
클릭해서 들어갔더니 나의 흔적을 찾으려 아빠가 이리저리 클릭해놓은 마우스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이렇게 찾아볼 정도로 관심이 있으면서 왜 그렇게 매정히 말했던 것인지. 부모의 마음이란 지금도 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 이후로 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몇개의 행사에 더 참가했었고 결국 나는 1등은 해보지 못하였다.
제일 많은 성과를 낸 것이 4강정도. 그렇게 나의 춤 인생은 자연스레 놓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