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았던 인생의 첫 취업, 첫 회사.
1년간 다른일 도전기를하며 동네 파리바게뜨에서 1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엔 금방 실증을 느끼던 나는 19살부터 짧게 짧게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왔는데 1년 넘게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파리바게뜨 한 곳이다.
오전알바였기에 시간활용하기도 좋았고 일도 손에 익으니 편했고 제과제빵에 관심이 있던 시기에 케익 진열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했었다. 케익은 사람들이 기분좋은 날, 행복한 날, 축하해야하는 날에 사가는 따뜻한 마음으로 구매하니까. 오늘하루도 행복한 사람들에게 잘 팔려나가겠지? 라는 마음에 괜히 웃음이 나곤 했다.
무엇보다 매장사람들이 너무 좋았다. 카페기사, 제조기사 언니오빠들도 좋았고 사장님도 좋았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좋아서 오래 일했던거 같다. 춤을 출 때 부터 활동적이고 밝은 성격 탓에 주변엔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당시 내가 생각했던 사람의 정의란 모두 다 악한 사람이 없단 것이다. 다같이 친해져서 기분좋게 일하면 더할나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순수했다. 악의가 없이 사람을 마냥 좋아하던 소녀였다.
그러다 알바도 그만두고 몇개월을 은둔생활을 했었다.
춤을 그만두고 빵집알바를 하다보니 살도 찌고 옷도 점점 맞지않고 꿈도 미래도 없는 은둔형 외톨이가됐었다.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사람들이 무서웠다. 나는 앞으로 무얼해야하지 매일 머리로만 고민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파리바게뜨 사장님한테 연락이 왔다.
"은혜야 한두달 정도만 아르바이트 해줄 수 있니?"
외톨이라 생각했지만 그 당시 매장 사람들에게 좋은기억이 많아서 그 곳은 갈 수 있을거 같았다.
그래, 이렇게 집에만 있을바엔 두달정도 아르바이트 하지 뭐.
그런 생각을 가지고 25살. 그 곳에서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 내 인생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거기서 만난 아르바이트 언니와 급 친해졌고 매장 기사님들도 오랜만에 보니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과 다시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던 중 알바언니가 파리바게뜨 카페기사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카페기사는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를 관리하는 매니저였다.
아르바이트와 달리 매장이 아닌 회사에서 교육을 받아 투입되는 현장직 회사직원이다.
언니는 장난반 진담반으로 같이 해보면 어떻냐고 말을 했고 처음엔 별반 관심이 없었는데 친했던 카페기사 언까지 나를 설득했다.
어차피 지금 고민하고 있는 시기이지 않냐고.
여자로서 괜찮은 직업인거 같다며 해보고 아니면 그만두면 되지 않냐고 했다. 나이도 어리니까.
그 날 이후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 일을 했다가 진짜 내 꿈을 잃으면 어쩌지. 슬럼프는 왔지만 나는 예술가니까, 꿈꾸는 사람이니까 언젠가 다시 꼭 춤을 출 것이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고민했다.
며칠을 고민한 후 나의 결정은 도전해보는 것이였다.
어린나이에 경력이 없어도 초봉이 꽤 괜찮았고 춤을 다시 시작하려면 레슨을 받아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언니와 함께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게됐다.
살면서 자기소개서도 처음써봤는데 아르바이트 경력이 길었던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면접에 합격했다.
한달 반 정도 교육기간을 걸치고 카페기사가 되었다.
매사에 열심히고 승부욕이 있던 나는 그렇게 원하던 일도 아닌데 교육클래스에서 1등을 했다.
그것은 잘못된 열심이였다. 1등을 한 탓에 부임받은 첫 매장은 손꼽히기로 바쁜 명동에 위치한 매장이였다.
출근 시간은 6시.
7시, 8시, 9시도 아닌 새벽으로 분류되는 해가 뜨기 전 새벽 6시가 맞다.
출근시간이 이르니 퇴근은 4시긴 했지만 가히 6시는 높디 높은 벽으로 느껴졌다.
학교 다닐 때도 6시에 가본 적이 없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어도 6시에 출근하는 곳은 없었다.
심지어 집과 가까운 거리도 아닌 명동. 우리집에선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리고 나는 신입나부랭이여서 6시 땡하고 맞춰 출근할 수 없었고 약속시간도 잘 늦지 않는 성격이라 시작 전 10분 일찍 가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계산을 해보니 거진 버스 첫차 4:30 를 타고 가야 마음 넉넉히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 환승시간 포함.(15분 정도 기다려야했다)
첫 출근날, 나름 일찍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낯설고 어두컴컴한 매장에 혼자 있노라니 덜컥 겁이 났다.
어물쩡대고 있었는데 교육해주시는 기사님이 오셨다. 그렇게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샌드위치 매대에 섰다.
아, 이 곳이 내가 앞으로 일해야할 곳이구나 실감이 났다.
첫날은 옆에 서서 가만히 보는 것이 전부였다. 샌드위치 레시피를 보지도 않고 척척 만들어내는 기사님이 신기할 따름이였다. 나는 아직 한개도 제대로 외우질 못했는데.
그렇게 옆에서 눈치껏 보조 역할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됐고 기사님은 나에게 말했다.
"처음이라 아직 어색하고 그렇죠? 하다보면 늘거에요. 여기 매장이 힘들고 바빠도 사람들이 좋거든."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1-2주가량 교육을 받던 중에 이제는 혼자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어차피 이 매장 관리자는 나이기에 혼자서 다 할 줄 알아야 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1개의 샌드위치를 만들 때 마다 시간을 쟀고 엉망으로 만들 때는 호되게 혼이나곤 했다.
시간을 지키며 예쁘게 정석대로 만드는 것이 신입인 나에게 너무나 버거웠고 무엇보다 하루에 생산해야되는 샌드위치 양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혼자 할 수 있을까. 왜 하필 이런 매장에 배치된 것일까.
일하다 말고 눈물이 났다. 화가치밀어 올랐다. 결국 기사님에게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말했다.
기사님은 한숨을 푹 쉬더니 알겠다며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주임님, 은혜가 못하겠대요. 네, 네. 알겠습니다."
일부러 내 앞에서 통화를 하는건지. 울면서 바로 옆에서 통화소리를 듣고있자니 정말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무엇을 도전하든지 간에 중도포기한 적이 거의 없던 내가 저런 소리를 듣다니. 수치심이 들었다.
기사님은 일단 오늘 일은 끝마치자해서 마무리하고 퇴근하려는데 나에게 저녁약속이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말했더니 맥주한잔 하자고 했다. 그렇게 기사님과 명동 근처 치킨집으로 갔다.
기사님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내 앞전에 두명이나 조금 일하다 말고 그만둔 것이다.
그만큼 이 매장이 물량도 많고 신입이 감당하기엔 힘든 매장이라고.
그렇지만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며 설득했다.
마음이 약해지면서 아르바이트 할 때 이미 많이 친해진 회사사람들이 떠올랐다.
주임님, 제조장님, 기사님들이 은혜는 알바도 잘 해냈으니 기사 일도 잘할거라며 격려해줬던 말들이 생각났다.
그래,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였지. 이왕 시작한거 수습은 끝내보자 라는 마음이 들었고 한번 계속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명동매장에서 1년 반을 일했다.
중간에 많은 위기를 겪고 퇴사할 생각도 했었지만 결국 버티고 버텨 시간이 흘렀다.
이 매장은 정말이지 밥도 못먹을 정도로 바빴고 4시 퇴근인데 일을 못 끝내서 8시에 집에 가기도 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출근해서 해가 질때 퇴근했었다.
매일 한숨을 푹 푹 쉬어댔고 어느샌가 꿈도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스트레스를 받을라치면 퇴근하고 백화점으로 향해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재끼곤 했다.
꿈을 먹고 살았던 나로서는 목표의식도 꿈도 없는 이 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해야될까 마음이 답답했다.
답답함을 넘어서 병이 들었다.
하루는 겨울에 출근할 때 였는데 버스에서 갑자기 숨이 안쉬어지고 이대로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창문을 열었다. 그 추운 겨울에.
뒤에 있던 아줌마가 툭툭 치며 아가씨 추운데 창문을 왜 여냐고 핀잔을 줬다.
결국 내리기 바로 전 정거장에서 내려야했다. 눈 앞이 흐릿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크게 쉬었다. 한 두번 쉬니 정신이 조금은 돌아오는 듯 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내가 출근하지 않으면 피해볼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 것을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했다. 그렇게 한번을 겪고 난 후 이 증상은 점차 잦게 나타났다.
한번은 지하철에서, 한번은 길을 걷다가. 점점 좁혀오더니 이젠 매장에서 일을 할때도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
일을 하다 말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바깥공기를 맡으면 좀 나아졌으니.
내가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도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매장 근처 내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