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알게 된 진정한 나의 꿈

알게는 됐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그런 꿈

by 한은성

책장에 CD를 보다가 대학교 때 부터 꾸준히 쓰던 다이어리와 연습일지를 적어놓은 노트를 발견했다.

회사생활 3년동안 단 한줄도 쓰지 않았던 다이어리가 꽤나 반가웠다.

하나씩 펼쳐보는데 이놈의 수도꼭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어렸을 때부터 잘 울었다=울보)

정말 신기한 것은 춤을 췄던 와중에도 한켠에 적혀있던 문장.


* 나만의 음악 만들어 보기. (내 원래 꿈은 가수)


비스무리한 문장들이 다이어리 한켠에 속속들이 발견됐다.

잊었던 꿈을 찾은 느낌이랄까. 그때의 내가 저 문장들을 적은 기억조차 나질 않는데 이 타이밍에 발견하다니.


다이어리 속에 나는 참 열심히도 살았더랬다. 그리고 꿈을 꾸는 행복한 아이였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도전적이며 하루 하루를 감사로 채운 글들이 가득했다.

행사장에 참여한 후 느낀점부터 시작해 언니와 그렇게 좋아하는 고흐전시회를 처음 보러가던 날, 공강 시간에 몰래 막걸리 마신날, 현대무용 중간고사 만점 받은 날, 춤으로 칭찬받았던 날 등등 나의 감정들과 일상들이 꼼꼼히 적혀있었다. 회사생활에 잔뜩 찌들어 있는 모습과 사뭇 달라 조금은 낯설었다. 내가 저런 면이 있던가?


그때 머릿속에 확신이 찼다.


아, 저랬던 나로 돌아가야겠다. 꿈도 찾고 열정도 찾아야겠다.

몸은 힘들었어도 정신은 맑았던 저 때로 돌아가야겠다.


몸도 정신도 피폐한 채 아무런 의미없는 돈벌이를 하며 시간을 축내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입사 후 경제관념이 없던 하루살이로 살았다. 목적이 없으면 실천하지 않는 성격 탓에 적금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지금생각해보면 아찔할 일. 목적이 없어도 돈을 모아뒀더라면 계획을 짜지 않고도 당장 그만둘 수 있었을텐데 나에게 투자할 돈이 없으니 그때부터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꿈과 멀어졌던 나를 찾기 위해 저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퇴사 계획을 짰다.


컴퓨터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을 위주로 알아봤고 2개의 학원에서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한 곳은 건대 쪽에 위치한 학원(A)이였고 한 곳은 예술의 전당 근처에 위치한 학원(B)이였다.


먼저 방문한 곳은 A학원인데 미디작곡 한가지만 배우는 곳이였고 원장님과 상담을 하게 됐는데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요새 누구나 컴퓨터나 노트북에 프로그램만 다룰 줄 안다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음악이라 퇴사를 감행하면서 까지 진로를 트는건 제가 생각했을 때는 좀 위험한 시도 같아요."



이제 막 음악시장에 뛰어들고 싶어하는 나름의 꿈나무로서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고싶었는데. 상담을 마치고 걸어나오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 진짜 늦었나. 괜히 퇴사했나. 어쩌지. 그렇게 한참을 걸었던 거 같다.


일단 B학원도 가보자는 생각에 당장 다음날 방문했다.

A학원과는 다르게 여러가지 커리큘럼들로 수업이 짜여있었다. 평소에 관심있고 배우고 싶었던 기본화성학부터 시작해서 머신패드와 디제잉도 포함이였다. 6개월 과정으로 학교와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상담해주시는 매니저분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늦지 않았다며 할 수 있다고.

결론적으로 B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두 학원의 금액차이는 어마어마 했다.

집으로 돌아와 며칠을 고민했다. 뭐가 더 나에게 맞을 것인지, 이득인지에 대해 따졌고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배울 수 있는 B학원을 다녀야겠다 마음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선택 또한 나의 욕심이 불러온 선택인듯 싶다.



마침내 3년을 채운 후, 기나긴 나의 첫 회사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퇴사 이후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이 잠 실컷자기였는데 3일정도 지나니 좀이 쑤셨다. 살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본 적이 거의 없을 뿐더러 늘 생각에 꼬리를 무는 탓에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였다. 일주일을 겨우 채우고 2주째 되었을 때 퇴직금을 수령하러 은행을 찾았다. 3년간 일한 댓가는 실수령액 870만원 정도.

실직자가 되면 쓰려고 모아둔 비상금을 포함하니 내 통장에는 살면서 단 한번도 보지 못한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의 숫자가 찍혀있었다. 보는 순간 느낀 감정은 처음 느껴본 감정이였다. 내 통장이 아닌 것 같았다.


이 돈으로 당장 세계여행이라도 가고싶었지만 그 나이에 여권하나 없던 나에겐 사치였다.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무엇인가 빨리 도전해야했다.


우여곡절 끝에 B학원에 등록하게 됐지만 삶이란 참 순탄하지가 않다는 것을 또 한번 느꼈다.

학원만 다니면 무언가 반짝일 것 같던 나의 인생은 현실의 벽과 환경에 주저 앉게 됐다.

사실 모든 것은 핑계일 수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나는 나에게 박하다) 당시 아빠와의 관계가 좋지않아 많은 방황을 했다. 스트레스 저항도가 현저히 낮았던 나는 음악에 또는 학원에 집중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들 말을 안해서 그렇지 하나씩 마음 속에 힘들었던 가정사가 있지 않은가?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소통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해결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하루도 잠을 제대로 이룬 적이 없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런 마음상태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도전한다는게 버겁게 느껴졌다. 처음 학원을 갔을 때 느낌은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을 묻고 그 음악을 나눠듣고 커리큘럼을 설명 받는 자리였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과 장비들을 보고있자니 그것은 참 행복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존감은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 포함 5명이였다가 1명이 중도포기를해서 4명이서 클래스를 듣게 됐는데 나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한번쯤 음악을 시도했거나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였다. 육안으로 봤을 때 나이도 내가 제일 고령자인거 같았고 말 그대로 제일 초짜인 것 같았다. 다행히 나와 같이 처음 시작하는 오빠가 한명 있었는데 급속도로 친해지며 동지애를 느끼긴 했다. 그렇지만 레벨로 나눈 클래스가 아니였기에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도 중간레벨 정도로 가르치시는 듯 했다. 프로그램도 장비도 모두 처음 배우는 나에게는 따라가기에 급급한 하루 하루가 괴로웠다.


동영상을 찍어보기도 하고 복습을 하기도 했지만 조바심과 환경에 짓눌려 점점 더 답답해져 갔다.

하루에도 몇번이나 환불을 할까 생각했지만 클래스에 남은 오빠와 동생 이렇게 우리 셋은 서로 의지하며 버텼고, 특히나 나를 위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친해진 동생은 나와 음악적 취향이 굉장히 비슷했는데 혼자보러 가려했던 공연도 우연적으로 같이 예매해놓은 상태여서 함께 보러가기도 했다.


당시 장비도 없던 터라 연습을 하려면 학원에서밖에 하질 못했는데 학원과 알바를 병행해서 학원이 끝난 후 바로 동네 카페로 향해야했다. 결국 학원 등록을 한 후 남은 퇴직금으로 중고맥북과 보급형 키보드를 구매했다.

집에서 프로그램을 돌려 만들었던 첫 음악이 생각난다. 완성하진 못했지만 가상악기로 비트를 찍고 루프를 이용해 멜로디를 덧붙혔는데 너무 신기했다. 아 이렇게 음악이 만들어지는구나. 음과 악기를 켜켜이 쌓다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진 않을까? 기대감에 부풀었다.


허나 그것은 잠시 클래스에 가면 또 기가죽고 집에선 아빠와 마주칠까 밖으로 나도는 바람에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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