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의 과정이 끝난 뒤, 나는 그대로였다.
좋아하는 것이면 열정적으로 도전하고 이해하면 잘 이행하던 내가 퇴직금을 올인하며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꿈꿨던 것에 대한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열심히 하지 않았고 못했다.
왜 하필 그 타이밍이였을까 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신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다만 나의 마음가짐의 문제였던 것을 지금에서야 알게됐다.
나의 열등감과 조바심. 회사생활을 하며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사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도전할 여유조차 바닥나 버린 나의 내면을 돌보아야한다는 것.
정말 신기한건 신은 나를, 우리가족을 버리지 않으셨다. 관계는 서서히 좋아졌고 짧은시간 안에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 시간 안에 깨달은 것이 있다. 인생에 못누렸던 것이 표현이라는 것과 내가 먼저 변하면 무엇이든 변할 수 있다는 것. 사실 지금도 아직도 어색하고 서툴다. 내가 생각할 때 가족간에 표현은 가장 극복하기 힘든 끝판왕 같은 존재이다. 예쁘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그 굴뚝은 결국 제값을 하지 못한다.
곧 죽어도 이해하지 못할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나 서서히 나이가 들며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하기 싫은 회사생활을 하며 공황장애를 앓고 힘들어했던 나처럼 부모님은 수많은 시간을 참고 견디셨구나.
우리 때문에. 미안하고 한편으론 안쓰럽다. 지금의 나처럼 각자의 이름 석자가 불리우는 젊은 시절이 있었을테고 꿈이 있었을테고 자유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이름이 아닌 누구 누구의 엄마아빠로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워 부모님께 가끔 이름을 부른다. 그리곤 물었던 적이 있다.
"어떻게 하기 싫은 일을 평생을 하며 견뎠대. 나는 가끔 엄마아빠가 안쓰러워. 그냥 우리 낳지말지"
"무슨 말이 그래. 내가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사는 이유는 딱 하나 너희 밖에 없어."
너무 감동적인 말이지만 감동 보다는 부모님의 희생이 나는 서글프다. 물론 부모님들은 다들 희생하며 사시지만 특히 우리 부모님은 본인들의 삶이 아예 없는 채로 우리를 포커스로 살아가시는 분들이기에 너무 서글프다.
제발 그만 자유로워 지시라고. 그냥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빠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시라고.
맛있는거 먹으면서 내 생각하지말고 마음껏 드시라고.
부모님의 인생은 또 우리 가족의 성장과정은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가정들과 비슷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신이 일손이 부족해 우리에게 내려주신 것이 엄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모의 마음은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