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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은성 Nov 07. 2020

후암동

숙대입구 서울역 그 사이

며칠 전 인천에 사는 친한 동생과 만나기로 했다.

중간 지점이 어디인지 알아보다가 서울역에서 보기로 했다. 평소에 어딘가 여행 갈 때나 거쳐가는 곳이라 딱히 만남의 장소로 정하진 않은 곳인데 새삼 여행 가는 기분이 들었다.


집과 운동뿐인 일상에 외출은 마냥 행복했다.

날이 좀 춥긴 했지만 일부러 걸어 다니려고 패딩을 입고 나가서 꽤 걸었을 땐 살짝 땀이 났다.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길을 마주할 때 항상 핸드폰 카메라를 켠다. 뼛속부터 감성충이라 특히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예전에 카페 기사로 일할 때 매장 밖에 길이 쭉 은행나무 길이여서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사계절 내내 나뭇잎 색이 변하는 것을 보며 또 1년이 지나는구나 생각했었다.

바람이 불면 한 번씩 노란색 은행잎들이 눈처럼 흩날릴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일 하다 말고 문 밖을 내다보곤 했다.


보면서 너무 예쁘다고 연신 말을 하게 되는데 내 말을 들은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어차피 다 쓰레긴데 뭐가 예뻐. 길에 떨어진 은행 냄새 때문에도 싫다야."


정말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이렇게나 다르다니.


우리 부모님은 길거리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와서는 티비 거치대 밑에 예술작품처럼 뿌려놓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 밑에서 자란 나는 완벽한 감성쟁이란 말.

내 사진첩에는 분기별 나무와 하늘 사진들이

가득하다. 나중에 이 사진들로 갤러리를 꾸미거나 전시회를 열면 어떨까. 좋은 생각인 거 같다.


동생을 만나기 전 볼일을 보고 시간이 남아 숙대입구에 내려 서울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낯선 동네에 가면 그 동네만의 냄새가 있는데 요새는 마스크 때문에 잘 맡질 못한다.

사람들 없는 순간을 틈타 마스크를 내려 코를 킁킁거렸다. 처음 와보는 곳에 발길이 닿는 곳으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아, 여기 홍철책빵(노홍철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및 카페)있다던데 가볼까? 싶다가도 바디 프로필 준비 때문에 빵은 절대 금지인 나로서 너무 곤욕일까 싶어 포기했다.


무작정 길을 걷다 보니 남산이 보였다.

단풍이 너무 예쁘고 눈 앞에 가까이 보이는 남산이 신기하고 반가워서 무작정 그 길을 따라 올라갔다.

가다 보니 과일가게가 여럿 보였는데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이 과일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우리 동네와 시세 차이를 따지고 있더랬다. 싸도 사가지도 못할거면서.


그렇게 걷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골목길들이 나왔다.

우리 동네와 다르게 집집들이 붙어있는 주택가였는데 주택에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일까 보고 있으면 궁금하다.

전깃줄이 이렇게 많네, 싶기도 하고.

조용하고 새로운 동네를 걷다 보니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이집에서 하원 할 시간인가 보다.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기도 하고 어디선가 찌개 냄새가 나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평안한 마음이 든달까

후암동 오르막길

걷다 보니 모두 계속 오르막이라 따라 올라갔는데 이 곳이 홍철책빵이 있다던 후암동인 것을 알았다.

한번쯤 궁금했던 동네인데 반가운 마음이 들어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었다. 해가 질 무렵이라 그런지 동네가 주황빛으로 보였다.


후암동 노을

저 많은 아파트와 빌딩들은 사람들이 지었겠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높이 사는 사람들은 저런 절경을 매일 보겠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괜히 따뜻해 보인다.

후암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는 모녀를 보고 있으니 괜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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