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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은성 Nov 08. 2020

시절들 마다 함께한 관계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런 사람들

기분이 썩 안 좋은 날이다.

관계들에 대해 생각이 많은 밤이다.


나의 시절들 마다 함께한 사람들이 간혹 떠오른다.

내가 끊어냈건 그쪽에서 끊어냈건,

자연스레 끊어졌건 간에

내가 빠진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마음 한켠이 답답해져 온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던 시절을 되뇌이곤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다 좋았고 그립고 지금 다시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 시절의 나와 그들, 상황이 생각나고 생각을 하다 보면 그때의 우리가 그리운 것이다.


SNS는 정보의 바다답게 많은 이득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보기 싫거나 끊어내질 못하는 관계를 계속 봐야 할 때도 있다. 보기 싫어 숨겨둬도 연결고리를 찾아내 내 눈앞에 걸릴 때가 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소식 이어도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불편한 관계를 마주할 때도 있다.


예전에는 노력하다 안 되는 것 같으면 극단적으로 다 끊어내곤 했는데 나름 나의 방법이었던 거 같다.

불편한 관계를 단지 세월이 깊다는 이유로 이어가려 참아냈던 시간들이 한 번에 빵 하고 터져버리면 마음에 남은 응어리들을 없애려 한 번에 다 지워버리곤 무감정에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이 방법은 그다지 좋진 않은 거 같다.

나를 아는 사람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약자인 나는 오히려 모르는 사람보다 더 배려하고 참는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싸워서 풀기도 한다. 굳이 싸우는 이유 또한 관계를 끊기 싫음에서 오는 행위이다. 이만한 노력들을 하는 와중에 불편하고 답답한 상황들에서 내가 감내해야 할 감정들이 이제는 버겁다.


그냥 툭 하고 내려놓고 싶어 진다.

흘러가는 대로 두고 이해하고 싶어 진다.

그러려니 인정하고 싶어 진다.


그렇지만 나는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나와 그 사람 둘 다 지치지 않게 함께 할 수 있을까.


감정이 올라오면 눈물부터 차오르는 탓에 제 감정 하나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내가 요새는 애같이 느껴진다. 나는 눈물 제어능력이 거의 바닥이라 눈에서 나오는 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흐르는 것이 물이요 내 감정은 이렇다.


저렇게 받아들이고 살아왔는데 나이가 점점 들면서는 이 컨트롤되지 않는 눈물이 애석하다.


내 생각을 온전히 차분히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좀 지나야 할 말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눈물을 참으려고 한다.

내 의지로는 안 되는 눈물을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나 또한 눈물이 날 상황이 되면 참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왜 참아야 할까.

얼굴 표정에서 모든 감정이 다 드러나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솔직하고 직관된 삶을 살았다.


근데 나의 이런 점이 단점으로 작용할 때가 바로 어른이 되었을 때이다. 취업을 하거나 실수를 하거나 바로바로 울그락 불그락 대는 얼굴 때문에 '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은'척' 괜찮은 '척'


감정이 올라와도 이성적을 또박또박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내가 그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을까.


내 눈물을 조금은 컨트롤하고 감정을 누르고 잘 설명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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