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파란띠 (4) - 흰띠 1 그랄의 기쁨

이걸 네 번 더 하면 파란띠가 된다.

by bythewind

나는 7월 초에 주짓수를 시작했고 9월 말에 첫 번째 그랄을 받았다.


주짓수 띠에는 검은색으로 감싼 부분이 있는데 거기를 반창고로 한 바퀴 둘러 감으면 검은 바탕에 흰 줄이 하나 생기고, 그게 1 그랄을 의미한다. 첫 번째 그랄을 받던 날,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관장님이 하사해주신 첫 번째 그랄을 달고 자리로 돌아와서 그랄 한쪽에 네임펜으로 날짜를 적었다. 별도의 심사 과정이 없기 때문에 성실하게 등록하고 출석해서 열심히 수업에 임하다 보면 관장님 재량으로 승급과 승단을 시켜주신다. 경찰 공무원에 지원할 때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공인 단증은 별도의 심사 절차가 있다고 한다.


첫 그랄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1 그랄을 달 때까지 주짓수를 계속하고 있을지 몰랐다.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자주 가서 내가 계속할만한 운동인지 알아보려는 마음이 제일 컸다. 삼 개월은 짧고도 긴 시간이다. 단기 목표인 파란띠를 따려면 그랄을 모아야 하지만, 언제나 장기 목표는 몸과 마음의 평화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든 수틀리는 게 생기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 성취보다 나의 안녕이 우선이다.


내 띠에 첫 그랄이 달리던 날, 도장 친구들과 같이 많이 웃었다. 축하해 주고 축하받고, 집에 와서는 띠를 잘 보이는 곳에 꺼내두었다. 프로필 사진도 바꿨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엄마 나 1 그랄 됐어! 여전히 성취보다 안녕이 우선이지만, 사소한 성취여도 기쁨과 즐거움이 이렇게나 달콤했다. 파란띠가 더 갖고 싶어졌다. 이걸 네 번 더 하면 파란띠가 된다. 아이고 네 번이라니, 진짜 한참 남았구나.


KakaoTalk_20250304_232429645.jpg 영롱한 나의 첫 그랄


파란띠를 향해 갈 길은 이렇게 멀었지만 나는 이제 이 생태계에서 왕초보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그냥 초보다. 왜냐면 이제 나를 올려다보는 무 그랄 후배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기술을 배우다 안 되면 이거 어떻게 하냐고 서로 묻고 확인하게 되는데, 내가 선배에게 물을 때나 왕초보끼리 물을 때와는 다른 책임감이 몰려왔다. 무 그랄 왕초보가 나한테 뭘 물어보는데 대답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된다. 아무도 배정해주지 않은 책임감이 그렇게 첫 그랄과 함께 내 허리를 동여맸다.


그리고 이게 얼마나 쓸데없는 생각인지 알게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1 그랄의 기쁨에 이어 1 그랄의 슬픔, 1 그랄의 절망, 1 그랄의 고통도 맛보게 되었다. 그랄을 하나 더 받으면 한없이 기쁜 동시에, 이 종잇장 같은 실력으로 이렇게 착실히 그랄이 늘어도 되는 건가 싶고, 기쁨 이면의 슬픔과 절망과 고통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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