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때론 알 수 없는 기제로 나를 감동시킨다.
100일 챌린지 참가비는 3만 원이었고, 환급을 받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100일 안에 맨몸 풀업에 성공하거나, 100일 동안 매일 풀업 연습영상을 스토리에 올린 후 하이라이트에 저장해 두는 것.
당연히 나의 목적은 환급이 아니라 성공이었다. 하지만 성공 못 할 수도 있는데 다른 방법을 안 할 이유는 없잖아? 그렇게 나의 풀업 연습영상 올리기 집착이 시작되었다.
지지를 많이 해주는 초록밴드로 시작해서 중반 즈음 보라밴드로 이동하긴 했지만 맨몸풀업은 여전히 요원했다. 어떤 날은 평소보다 잘 쑥쑥 올라갈 때도 있었지만 보라밴드로 연습을 할 때도 다섯 번째 즈음이 되면 힘에 겨워서 턱이 바 위로 올라갈락 말락 할 때가 더 많았다. 99일 째까지도 그랬다.
100일째 날 보라밴드로 연습하는 영상을 촬영하고 나니 100일 챌린지 한 번 참여한다고 풀업이 바로 되지 않을 건 알았지만 그래도 서운함이 남았다. 안 될 줄 알았지만 맨몸 풀업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안 될 줄 알았지만 다시 촬영 버튼을 누르고 시도해 봤다. 견갑을 당겨서 팔꿈치가 90도가 되는 것까지는 할 수 있는데, 거기서 더 올라가는 게 늘 고비였다. 100일이 되어도 고비였다. 더 당겨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내려가기는 왠지 억울해서, 그네 탈 때 발을 구르듯이, 있지도 않은 구름 계단이라도 밟는 것처럼, 개구리가 뒷다리를 차는 모양새로 다리를 팡팡 차며 올라가는 척을 해봤다. 어? 어?? 올라가는 척을 했더니 좀 올라가지는 것 같았다. 몇 번 더 해봤다. 어? 턱이 바 높이를 지난 것 같다?? 바가 내 턱보다 아래에 있어?!
촬영본을 확인하니 코는 확실히 바 높이를 지나쳤고, 턱이 바 위로 올라갔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보다는 훨씬 많이 올라가서 마음이 넓은 누군가는 이걸 턱걸이라고 해줄 것 같았다. 가슴이 쿵쾅이고 아이처럼 방방 뛰고 싶어서 거실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폴짝 뛰어도 봤다. 이야, 이거 하면 되는 거였어? 되는 척을 하니까 진짜 되어버린 거야? 하면서. 맨몸 푸시업은 연습을 매일 바짝 했더니 두어 달 만에 성공했는데 맨몸 풀업은 오륙 년 동안 차도가 없어서 의기소침해지려던 차였다. 와. 더 연습하면 이거 진짜 되려나 봐. 우와!
본인 이름을 걸고 챌린지원을 모집한 인플루언서는 나의 100일째 스토리를 보고 고생하셨다, 환급해 줄 테니 계좌를 알려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재빨리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계좌번호를 보냈다. 시작할 때 이십여 명이었던 참가자들 중 대여섯 명은 일찌감치 성공했고, 중반 이후 나머지 사람 중 스토리 인증을 계속 한 사람은 나뿐인 것으로 보였다.
사실 내가 스토리 인증을 놓지 않았던 건 리더의 가이드가 불성실했기 때문이다. 시작할 때 받은 안내는 풀업에 좋은 보조운동, 매일 몇 개씩 연습해야 할지 횟수, 휴식은 며칠에 한 번인지 등에 대한 가이드를 2-3주마다 올려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같은 기간에 본인이 참가 중인 각종 러닝 이벤트에 대한 피드만 와르르 올라오는 경우가 생겼다. 나중에는 누군가 재촉해야만 뒤늦은 가이드가 올라왔다. 이 사람도 풀업전문가였던 건 아니라서 공유해주는 내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참가비를 받고 챌린지원을 모집한 사람이 약속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 실망스러웠다. 3만 원이 아까워졌고, 그래서 성실함으로라도 환급을 받아야겠다는 결심까지 선 것이다. 나도 참.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없는 사람인 것이지.
이런 불순한 동기로 챌린지와 인증을 성실히 수행했다가 결과적으로 평생 숙원사업이던 맨몸 풀업 성공 근처에 와버린 것이다. 성실함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고, 삶은 때론 알 수 없는 기제로 나를 감동시킨다.
방금 그는 3만 원의 빠른 입금 대신 "오~ ㅇㅇ님 풀업 90-95프로 정도 성공인데요? 이번 주에 일반 철봉에서 친업 그립으로 한 번 해보시겠어요? 1주일 안에 명확한 풀업 1개 잘하면 나올 거 같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럼요 선생님, 제가 안 하겠습니까. 저는 계속 연습할 겁니다. 친업 말고 정식 풀업으로 명확하고 깔끔한 맨몸 풀업을 할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환급 조건 2개를 둘 다 충족한 거 같은데요, 아 제 풀업이 90-95프로라고 하셨나요? 저의 하이라이트를 보시면 100일간의 스토리 인증 내역이 명확하게 담겨있습니다. 두 가지 환급 조건이 and 조건은 아니었겠지요. 제가 명확한 풀업을 하는 추가 인증까지 선생님께 보내드리고 싶은지는 생각을 조금 해봐야 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참가비가 3만 원이었지요. 제 계좌는 지난번에 보내드린 계좌와 동일합니다.
…라고 답을 보내고 싶었지만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이렇게 답을 보냈다. "ㅋㅋ 네 기회 되면 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