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다래 Aug 20. 2020

법무사와의 첫 통화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드디어 오늘, 법무사에게 서류를 제출한다. 어제 부동산을 통해 필요한 서류들은 갖추었으니 오늘은 호군의 가족관계 증명서만 전달받아 바로 법무사에게 전송하면 끝이다. 출근하는 호군에게 외장하드를 쥐어주며 꼭 출근하자마자 가족관계 증명서부터 출력해서 나에게 보내라고 한 뒤 동네 행정복지센터에서 출력이 가능한지 이리저리 검색을 해봤다. 팩스 전송과 복사가 되는 건 알았는데, 출력이 되었던가…. 기억나지 않아 9시가 되면 바로 전화해 보기로 한다. 


 8시 50분, 오빠로부터 가족관계 증명서가 도착했다. 확인하니 행정복지센터에서 출력은 어렵다고 해 동네 복사집에 들러 출력. 1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헛웃음이 나온다. (무인발권기는 500원) 바로 행정복지센터로 이동해 발열체크를 하고 팩스 전송을 시작했다. 요즘 회사는 복사기에서 팩스 전송까지 한방에 휙휙 잘도되는데 우리 동네는 전화기 팩스 기능을 사용하는터라 속도가 매우 느리다. 한 장 한 장 겨우 전송을 마치고 법무사에 전화를 했다.


“제가 오늘 전세대출 서류를 팩스로 보냈는데요”

“네. 확인해볼게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호군입니다.”

“단독주택이에요?”

“아, 그건 제가 잘 모르는데. 다가구인지 다세대인지 단독인지 잘 모르겠어요”

“건축물대장이 있어야 해요”


 분명 내가 경기도시공사에서 받은 서류를 보면 건축물대장을 법무사에 제출하라는 소리는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 사람은 내게 건축물대장을 달라고 한다.


“세입자예요? 부동산이에요?”

“세입자인데요…”

“부동산에서 그거 다 알아서 해주는데, 왜 세입자가 이러고 있어요”


 이건 무슨 황당한 소리인지. 부동산에 맡기라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고 부동산에서 이런 서류 처리를 해준다는 얘기도 처음 들었다. 설령 부동산에서 친절을 베풀어 이런 서류 처리를 다 해준다고 한들… 세입자가 서류를 제출하고 관련해서 질문하면 안 된다는 건가 싶어 속에서부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한마디 더 하신다.


“이거 여기서 부동산 비용까지 다 주는 거 아시죠? 부동산 맡기면 될걸”

“제가 하면 안 된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는데요.”

“아 귀찮으실까 봐 그러죠”


 나를 생각하는 척을 하면서 본인이 귀찮아 죽겠다는 얘기를 이렇게 돌려하다니...


“전체 가격은 얼마예요”

“약 3억이요”

“하.. 전세대출 9천만 원밖에 안되는 거 아시죠?”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내가 받은 서류엔 1억 2천이라고 떡하니 적혀있는데 9천만 원밖에 안된다며 내게 경기도시공사에서 신청한 거 맞냐, 제대로 전화한 거 맞냐, 여러 번 되묻는다. 이제는 손이 떨리고 가슴이 터질 지경이다. 지금 내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그럼 난 잘못 수령한 건가? 부들거리느라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있는데 다시 묻는다.


“뭐 신청하신 거예요?”

“신혼부부 전세대출이요”

“아…”


 아? 아아아??? 지금 아 소리가 나오나??? 내가 그 한마디에 감정이 북받쳐올라 결국 말하고 말았다. 제대로 알고 지금 저한테 설명하시는 거 맞느냐,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으로 사람을 오락가락하게 하고 1억 2천 대출되는 줄 알았다가 9천으로 줄었다가 왜 하늘과 땅을 오가게 하느냐, 왜 날 배려해서 말하지 않느냐, 감정에 북받쳐 떠들어대니 돌아오는 한마디


“미안합니다”


 감정 없는 사과.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가 사람을 이렇게나 비참하게 할 줄이야. 서류 검토한 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고 그분은 전화를 끊으셨다. 난 내 감정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통화가 끊어져 이 감정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이 끓어오르는 분노와 짜증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몰라 일하는 호군에게 이 억울한 감정을 쏟아내고 말았다. 같이 욕하고 같이 분노했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완전히 해소되기엔 부족했다.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고 어떻게든 그 사람을 찾아내 불이익을 받게 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들끓었다. 그 사람 이름을 물어봐서 회사에 클레임을 걸고 경기도시공사에 민원을 넣어 그 회사와의 계약을 끊어지게 하고 이런 그지 같은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경기도시공사 역시 뒷돈을 받은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 거지 같은 시스템에 크게 한방 먹여주리라 생각하고 또 했지만. 실행에 옮기기엔 내가 너무 소심하고, 분노를 이런 방식으로 되돌려주고 싶진 않았다.


 도시공사와 계약하는 게 이렇게까지 사람을 끓어오르게 하는 일이었나? 나만 운이 좋지 않은 건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나. 비슷한 생각을 반복해봤자 돌아오는 건 울화뿐. 생각을 멈추고, 숨을 크게 쉬었다. 조금 진정이 되는가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하… 오늘 저녁은 엽떡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동산 사장님, 제 편이 되어 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