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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Dec 23. 2020

욕조가 없는 우리 집

오늘의 청소 

 호군과 나는 수영을 좋아하고 다이빙을 좋아해서 여름이면 바다로 수영장으로 다니는 게 우리의 즐거움. 우리가 곧잘 가던 수영장은 작은 탕이 하나 있다. 수영이나 다이빙을 마치고 수영복을 탁탁 털어 가방에 넣고 샤워를 한 뒤 타일을 촘촘히 붙인 네모난 탕으로 걸어가 미리 자리를 잡으신 할머니 아주머니들을 피해 구석에 몸을 누이면 사르르 몸이 풀어진다. 입에선 절로 으흐흐-거리는 소리가 나고 몸을 부르르 떨리고, 뜨겁지는 않지만 뜨거운 것 같은 따끈한 물을 손에 가득 담아 얼굴에 찹찹 뿌리던 그 순간. 그 행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바야흐로 지금은 팬데믹 시대. 전염병이 어디서 어떻게 급습할지 모르는 상황이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대중탕이란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우리 역시 수영장에 가지 않은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뜨거운 물에 몸 담그는 일을 좋아해 전에 살던 집엔 화장실을 사비로 고쳐 욕조를 두고 종종 목욕을 즐겼더랬다. 한 삼십 분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다 물이 좀 식었나? 할 때쯤 호군을 불러 등을 밀어 달라고 한다. 수증기로 가득 찬 욕조에 걸터앉아 등을 맡기고 떨어지는 때를 보고 기절하듯 웃으며 네가 더럽네 내가 더럽네 했더랬다. 


 지금은 벌써 이사한 지 3개월이 지났고, 우리는 샤워밖에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절망) 뜨거운 물로 씻은 뒤, 등을 밀어달라고 불러 벅벅 등을 밀어도 보지만 욕조에 담그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은 수준의 적당함만이 남을 뿐이다. 이제는 샤워에 걸맞은 때타월을 사용해야 할 타이밍이다 싶어 때밀이계의 에르메스라 하는 녀석을 다양한 종류로 구입하여 사용하기도 해 봤다. 분명 내 몸에는 도움이 되는 녀석이겠지만, 내장 깊은 곳에서 어허허- 하는 시원한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역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초록색과 노란색 손바닥 타올로 온 몸을 미는 행복은 다시 누릴 수 없다.


 그래 목욕이다. 목욕을 해야 한다. 한번 목욕에 꽂히기 시작하자 내 모든 신경은 욕조로 향했다. 욕조에 몸을 담가야 목욕이지!!! 욕조를 사자!!! 접이식이라던지 이동식이라던지 그런 욕조를 사서 필요할 때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을 땐 어딘가 치워놓으면 되지 않을까, 그럼 굳이 화장실 공사를 하지 않더라도 목욕도 하고 돈도 아끼고 서로 윈윈 할 수 있지 않을까. 검색창에 다양한 검색어를 넣어 우리 집 샤워부스만 한 욕조 사이즈 혹은 욕실에 놓고 사용할 수 있을만한 욕조를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들어가는 건 너무 작거나 너무 커서 딱- 맞는 이동식 욕조는 찾을 수 없다. 한참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지만 마땅한 녀석을 찾을 수 없다. 이렇게 목욕은 물 건너 가는 건가- 그럼 새벽에 사우나에 다녀올까? 좀 덜 유명한 호텔 사우나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이리저리 궁리를 해봤지만 마땅한 답이 없다. 이 집에서 목욕도 욕조도 무리. 그리고 지금 시기에 사우나도 더 무리. 뜨거운 물 틀고 쭈그리고 앉아서 물줄기나 열심히 맞는 게 지금의 최선인가 ㅠ


 목욕하고 싶어 찡찡거리던 나를 지켜보던 호군.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온 호군이 출장을 간단다. 이 시기에 무슨 출장이야!!!! 우엥!!! 하고 입을 내밀었는데, 출장은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상황이니 매력적인 제안을 하나 하겠다며 나를 앉힌다. 그래 들어보겠다 하고 자리를 잡자 출장을 같이 가잔다. 어차피 가는 출장 어차피 묵어야 하는 숙소라면 돈을 좀 보태 괜찮은 숙소에서 하루 종일 호캉스를 누리는 건 어떻겠냐고- 게다가 욕조가 있다면 더 훌륭하지 않겠느냐며. 귀가 솔깃하다. 그래서 출장 가는 지역의 호텔을 폭풍 검색- 시골 촌구석이라 호텔도 없을 줄 알았더니 지역 관광호텔이 제법 훌륭하다.


 가장 중요한 때타월과 때타월계의 에르메스라는 녀석들과 각종 목욕용품을 챙겼다. 어차피 계속 방안에 있을 거 방 안에서 놀만한 용품들을 챙기고, 호텔 내 레스토랑 역시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컵라면을 비롯한 각종 먹거리를 싸들고 내려갔다. 호군은 업무 미팅,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욕조에 물을 받았다. 비록 맛있는 음식도 그럴듯한 관광도 없는 빌붙어 간 출장이었지만 뜨거운 물에 몸을 담고 손가락만 까딱이며 TV 채널 돌리며 라면 먹는 시간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기대에 부응해 몸도 팅팅 잘 불어 때타월도 열일-


 목욕 후 온몸에 비누칠을 한 뒤 타월에 거품을 묻혀 욕조도 함께 닦았다. 전문가처럼 욕조를 박박 닦을 순 없지만 내 몸에 나온 더러운 것들이 욕조에 덕지덕지 붙어있다고 생각하면 나도 기분이 좋진 않으니까. 벽면과 바닥을 슬슬 문지르고 샤워기 수압을 높여 전체적으로 씻어냈다. 괜히 뿌듯한 기분.


 삼 개월 만에 한 목욕은 뜨거웠고, 열정적이었고, 상쾌하였다. 오늘 이 목욕으로 앞으로 삼 개월은 샤워로 버틸 수 있을 것만 같다. 날이 풀리면- 그땐 대중탕에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집콕 생활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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