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청소 - 내 정신
내 주변을 정돈하며 삶을 다시 바라보고, 글을 쓰는 일이 정말 즐겁다고 생각했었는데- 최근 3개월 동안 난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지난 일 년을 보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려견이 생겨버렸다. 뚜둥...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정말 적극적으로 강아지를 입양할 준비는 하지 않았던 우리 부부였다. 호군의 알레르기도 걱정이 되었고, 둘만으로도 벅찬 삶에 셋이 된다는 생각은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누군가 버리고 간 유기견을 임시 보호하게 되며 둘로도 족했던 삶이 셋이 되었고, 이 아이는 자연스레 우리의 삶에 녹아들었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은 없지만 아이를 키운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를 느끼며 강아지와 지내고 있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지만 여유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이 아이와 놀아주는 건 아니었으니. 그러나 책상에 앉는 일은 조금 어려워졌다. 내가 책상에 앉으면 강아진 나를 따라 들어와 차가운 바닥에 누워 날 가만히 바라보기 때문에. 마음이 쓰였다. 그 아이가 있는 장소가. 편하게 누웠으면 했다. 그래서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노트북을 꺼내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노트북을 켜고 모니터를 바라보지만 글은 써지지 않았다.
급작스레 글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뚜둥... 주어진 시간은 한 달. 한 달 동안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된 것. 강아지를 키우며 동물병원에 다니게 되고 강아지 용품을 소비하게 되며 생활비의 지출이 늘었다. 한 달 동안 우리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소비의 규모가 늘어나게 된 것. 한 달 동안 나만 바쁘게 글을 쓰면 강아지 일 년 사료값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아 덜컥 수락하였는데... 이 글쓰기로 내가 쓰고 싶었던 글쓰기는 뒤로 밀려나버렸다. 하루에 정해진 양의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는 일이 내 즐거움이 아니라 정말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 모니터를 바라보는 게 지긋지긋해졌다. 그 아르바이트는 4월 초에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5월 말이 된 지금까지 내가 쓰던 글을 이어 쓸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조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물론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다. 과학책을 읽으며 내용을 이해하고 소설책을 읽으며 세상을 이해한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그럴 땐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이런 세상도 있구나, 생각하며 삶의 경험치를 쌓는다. 책을 읽는 것도 그 책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것도 내 몫이기 때문에 난 매일 부지런히 책을 읽고 조카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한다. 읽어야 하고 생각해야 할 주제가 명확해지자 내 삶에 대한 고민보다 책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며 한구석이 계속 찜찜하기만 했다. 써야 할 내 이야기는 뒷전이 되어버렸다는 게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이런저런 사건들로 3개월이 훌쩍 지나고 5월 말이 되었다. 난 여전히 내 글을 쓸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동영상을 보거나 고인물이 되어버린 게임을 할 시간은 있었지만 글을 쓸 시간은 없었다. 이유가 뭘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슬리퍼를 신고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를 한 바퀴 슬렁슬렁 돌았다. 그러다 내가 입은 내의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뭐 이런 걸 샀담.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편하다고 좋다고 떠들어서 산 상품인데 스타일도 나와 어울리지 않았고 사람들의 이야기만큼 소재가 시원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편했다. 내가 뭐 이런 상품을 내 돈 주고 샀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오자 글을 쓰지 못하는 지금 내 상황이 한방에 이해가 되었다.
전에 비해 돈을 좀 더 많이 벌고 (그래 봤자지만) 강아지가 생기며 돈 쓰는 일이 어렵지 않아 졌다. 산책 다니고 일하느라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배달과 외식이 늘었고, 내가 불만족스럽게 여기는 부분들을 모두 소비로 해결하고 있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옷, 필요 없는 가전제품, 냉장고에서 버려지는 음식들... 전엔 버리는 게 일이었는데 지금 난 택배박스를 쌓아놓는 게 일이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쓸 수 없었구나.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아서, 내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삶의 방식을 내 글에 쓸 수 없어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주변을 비우고 생각을 버리고 단순하게 살고자 한 삶이 약간의 방심으로 한순간에 예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생각 없이 택배박스를 뜯던 내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강아지 사료를 사야 한다고, 장난감이 필요하다고, 간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난 장바구니에 물건을 넣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평소에 갖고 싶었던 옷, 신발, 음식들을 함께 구매했다. 자연스레 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사라졌다. 그걸 3개월이나 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옷을 입으며 뭐 이런 걸 샀냐고 나에게 불평하고, 집이 지저분한 이유를 강아지에게서 찾았다. 내 물건과 먹지 않는 음식들, 배달 용기들이 공간을 차지하는 건 눈을 돌리고 강아지 물건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털뿜뿜한 강아지를 키우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기 바빴다. 이렇게 한심할 수가. 내가 변했다는 걸 깨닫자 당장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불편한 내의부터 찾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아깝다고 다시 입을 일이 아니다. 쓸데없는 내 소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부산스레 냉장고를 뒤져 사놓고 이주일이 지나도록 먹지 않았던 만두를 찌기 시작했다. 왠지 냉동실에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사놓고 방치해둔 냉동음식들을 치워야 할 때이다. 있으면 먹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쌓아둔 음식들. 아니, 지내보니 알겠다. 결심을 해야 먹어지고 마음을 먹어야 비워진다.
냉장고를 비우는 연습도 당근 마켓에 물건을 올리는 연습도 집에 쌓아둔 쓰레기들을 버리는 연습도 처음부터 다시, 다시 시작한다. 내가 가고자 했던 길에서 벗어났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자. 오늘부터 다시- 다시 시작하면 가고 싶었던 그 길에 닿을 수 있을 거야. 아직 5월이고 2021년은 7달이나 더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