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청 만들기
얼렁뚱땅 시작하게 된 3개월 아르바이트가 끝났다. 일주일에 세 번 회사에 나가며, 하루 9시간 일주일에 5일 성실히 출근하는 분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난 세 번 나가는 것도 힘에 부쳐 쉬는 날은 쓰러져 유튜브만 까딱거리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세상의 모든 직장인 여러분들께 박수를 보낸다. 어떻게 당신들은 직장과 집안일, 휴식을 병행할 수 있는 거죠? (젊음인가요? ㅎㅎ)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주말 내내 집에 누워있었지만 - 호군이 옆에 있을 때 쉬는 것과 없을 때 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에 일주일 정도는 그냥 퍼져있을까 생각도 했다. 올림픽 기간이기도 하고 배구 한일전을 너무 신나게 본 터라 한유미 님이나 김연경 님 유튜브만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갈 것만 같은 기분. (네, 물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유튜브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부엌에 놓인 자두 박스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저 자두는 오늘 어떻게든 내가 처리하지 않으면 음식물 쓰레기봉투 안으로 직행할 것이 뻔하기에.
지난주 시댁에서 보내준 자두 한 박스. 열개만 있어도 두 가족이 먹기엔 충분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열 개는 야박하다며 한 박스를 보내주셨다. 세어보니 40개 정도 된다. 얼른 반을 나눠 옆집 테리네(시바를 키우는 이웃집)에 가져다 드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하나를 얼른 씻어 크게 왕-하고 베어 물었다. 으악- 비명이 절로 나오는 신맛. 신 걸 잘 못 먹는 내 입맛에 이 자두는 '접근금지' 수준이다. 그래도 시댁에서 주신 건데... 내가 한 입 먹었으니까 그래도 이건 끝까지... 하는 마음으로 두 입 더 먹었지만 턱이 얼얼해져 결국 난 포기하고 만다. 저녁에 돌아온 호군이 주말 내내 익혀서 하루에 하나씩 신 맛 체크를 했지만 여전히 난 접근 불가. 그 자두가 우리 집에 20여 개나 있다는 소식.
먹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저 자두는 자두청으로 담가야겠다 싶었다. 몸을 일으켜 자두를 꺼냈다. 다섯 개만 할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열개를 꺼내 물로 닦고 깨끗한 행주로 한번 더 닦아 물기를 제거해줬다. 도마와 칼을 꺼내 씨앗을 뺀 자두를 잘게 썰고 저울의 0점을 맞춰 무게를 달았다. 다섯 개를 썰어 넣었는데 벌써 600g 이 넘어간다. 어? 우리 집에 이거 들어갈 유리병이 있나? 찾아보지만 눈에 보이는 건 500g짜리 작은 병 하나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우선 칼질을 멈추고 설탕을 꺼내 자두에 버무렸다. 1:1 비율이 가장 맛있겠지만 난 양심이 있는 편이니까 80%만 넣기로 하자. (읭?)
지난 3개월간 안 하던 부엌살림을 사부작사부작 거리며 하고 있으니 호군과 함께 먹을 저녁 메뉴를 고민하게 된다. 미역을 좀 불려서 미역국을 해야겠다, 반찬이 없던데- 계란말이랑 어묵볶음, 김치만 놓고 먹어도 괜찮겠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은 더워서 식욕이 없어, 몸이 무거워서 저녁 못하겠어 온갖 핑계를 대며 외식과 배달 음식으로 매 저녁을 때우기 급급했는데 오늘은 집에 있는 재료들을 생각하며 함께 먹을 음식들을 상상한다. 당면이 있는데 내일은 잡채를 해볼까, 밑반찬이 없는데 진미채 볶음이랑 콩자반을 좀 해둬야겠다는 계획도 세우게 된다.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자두청을 만들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잊고 있었던 일상이 조금씩 돌아오는 느낌이다. 이렇게 조금씩 나를 다시 세워간다.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내일은 또 무엇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