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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Aug 03. 2021

아침 강제 루틴

오늘의 청소 - 커피

   ㅜ 아침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눈곱도 떼지 않은 눈으로 하는 일은 호군을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까지도 거리가 있는 편이고, 버스가 마음처럼 자주 오지 않아 출퇴근 픽업을 하고 있다. 그렇게 호군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바로 멍멍이 산책. 실외 배변밖에 하지 않는 녀석이라 아침저녁 산책 시간은 꽤나 중요하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동네를 돌고 돌아오면... 너무 피곤하다. 몸은 땀으로 젖었고, 마스크 속 공기는 답답해 숨을 크게 몰아쉬기 바쁘다. 바닥에 널브러져 누워있으면 그냥 다시 자자, 이렇게 피곤한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상태로 침대에 기어들어가면 그날 하루는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는 것 = 망했다.


 헉헉거리면서도 목이 탄다. 물이든 뭐든 한잔 마셔야겠다. 어제 끓여놓은 시원한 보리차가 있으면 좋으련만 물병은 비어있고, 브리타 정수기 안에 든 물은 미지근해 보여 왠지 손이 가질 않는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수기 물을 전기 주전자에 넣고 온도를 90도에 맞춘다.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하다.




 팬데믹이 몰아치기 전 호군과 난 매주 주말, 드립 커피 클래스에서 커피 내리는 법을 배웠다. 다양한 드립 도구들을 활용해서 커피를 내리고, 이런저런 원두를 맛보며 우리만의 커피 취향이라는 것을 찾았다. 이후 우리는 커피숍에 가는 비용이 대폭 줄어든 대신 원두를 사는 비용이 늘었다. 커피 한잔 가격이 2-5천 원 사이를 오가는 것을 생각하면 원두 200g에 13-16천 원이면 가격부터 너무 은혜롭다. 더구나 로스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원두를 취향에 맞게 직접 내려마실 수 있다니.


 겨울엔 고소하고 진한 느낌의 원두를 찾아 따뜻한 아메리카노나 라테로 즐기고, 여름은 과일향이 싱그러운 원두를 찾아 아이스로 즐긴다. 고소한 느낌의 원두는 사시사철 언제 마셔도 질리지가 않지만 과일향의 원두를 여름에 내려 마시는 건 이거지 이거,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기 때문. 원두를 나라별로 등급별로 찾아 내려 마시는 것도 좋지만 내가 더 좋아하는 건 유명한 커피 가게의 블렌딩 원두를 찾는 것이다. 이 브랜드의 커피숍은 이 블렌드가 주력이란 말이지? 내가 한번 평가해주겠어- 하는 느낌으로다가. 물론 난 하수이기에 블렌딩이 잘 되었는지 로스팅이 잘 되었는지 따위는 하나도 모른다. 다만 오- 이건 내 입에 맞아, 아- 이건 나한테는 너무 신데- 아쉬워, 정도의 평가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내리고 나면 몸은 어느새 식어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가볍게 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는다. 유튜브를 보더라도 쓸데없는 검색질을 하더라도 책상 앞에서 하겠다는 나의 의지랄까.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뒤적이며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편이 낫다. 책상에 앉아 놓인 노트에 오늘의 할 일을 쭉 적어보고 순서를 정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몸을 일으켜 뭐든 해놓고 밖에 나가서 해야 하는 일이라면 동선을 정리한다. 나는 외출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사람이니 가능한 한 번의 외출에 많은 일을 해치워야 한다.


 대략 할 일이 정리되면 집부터 정리한다. 빨래를 돌린다던지, 바닥을 쓴다던지, 혹시 어젯밤 설거지 해 놓은 그릇들이 있다면 그릇 정리부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정리가 된 이후엔 생각을 정리하는 일. 책을 읽고 오늘 써야 하는 글들을 정리한다. 물론 중간중간 유튜브를 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유튜브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안 이후부턴 그냥 생각나면 클릭하는 편이다. 책상에 앉아서 매우 불편한 자세로 모니터를 보며 웃는 내 모습이 자각이 되는 순간 난 바로 끄는 편이다. 현타라는 게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은 기분이라.


 이 모든 순간 커피의 얼음은 책상 위에서 사그락거리며, 땀을 뻘뻘 흘리며 녹아내린다. 시원하게 원샷- 하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모든 순간순간 한 모금씩 쪽 마시는 게 내 즐거움이니까. 오전 내내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하루를 정리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아침 강제 루틴이지만, 꽤나 즐겁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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