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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May 10. 2023

순례길 네 번째 이야기

순례자의 짐은 삶의 무게

구간 : 론세스바예스 - 수비리
거리 : 21.5KM
소요시간 : 6시간




  어제 산맥을 넘고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한 뒤, 다음날은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한국에서 출발할 때 배낭의 무게는 9Kg이었는데 데카트론에서 침낭과 스포츠 타월, 물병 등을 사고 나니 10Kg가 넘어버렸다. 보통 본인 몸무게의 10~15%가 적당하다고 하니 내 짐의 무게는 그리 무거운 것이 아니었지만 나약한 내 몸은 그것조차 견디지 못했다. 론세스바예스 숙소에 도착하고 배낭을 벗으니 어깨 근육이 부어있었고, 발목과 발바닥이 시큰거렸다. 더군다나 수비리까지 가는 길은 얕은 오르막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이라고 전해 들었던 터라 짐을 지고 내려가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을 느꼈다.


  동키서비스는 짐을 다음 목적지까지 배달해 주는 대행 서비스를 말한다. 각 숙소마다 준비되어 있는 신청 봉투에 목적지 마을과 숙소를 적고 난 후 거리별로 정해져 있는 금액을 넣는다. 그리고 봉투를 배낭에 묶은 뒤 아침에 정해진 장소에 두면 오전 8시쯤 수거하여 배송한다. 묵을 숙소를 적지 않는다면 공립 알베르게로 배송되지만 분실의 우려가 있으므로 미리 정한 후 다음 숙소 사장님께 사진을 보내놓는 것이 안전하다고 한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까지 짐을 보내는 비용은 7유로였다. 동키서비스를 이용한 날 보다 수월하게 주변을 구경하며 걸을 수 있던 점에서 합리적인 금액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여섯 시에 출발하려 했지만 식사를 마친 후 정리를 하고 나니 6시 50분이었다. 목표는 오후 1시 전에 도착하는 것이기에 서둘러 걸어야 했다. 준비해 간 접이식 배낭에 최소한의 짐만 넣어둔 채 두 번째 일정을 시작했다. 처음 3일이 제일 힘들 거라더니 오늘 길 역시 어제만큼 힘들었다. 동키를 이용해서 다행이지 배낭을 메고 내리막을 걸었다면 위험했을 것 같다.

알베르게에 구비되어있는 자판기를 이용하여 아침 식사 해결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

  계속되는 언덕을 넘어 수비리에 도착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난 한국인 일행과 함께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는 마을 입구에 있었는데, 숙소 옆으로 강이 흐르고 있어서 창 밖의 뷰가 시원하니 좋았다. 친절한 주인아저씨께서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짐을 정리하고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러던 중 괜찮아 보이는 바를 만났고 거기에 앉아서 바스크지역 전통주인 시드라를 마시기로 했다. 시드라는 지역마다 맛이 다르다는데 우리나라의 막걸리와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시드라

  대충 장을 보고 알베르게에서 식사를 하는데 한국인 일행 분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월별로 구분하여 만든 단체 채팅방이 있다고 한다. 함께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많은 정보와 도움을 얻는다고 한다. 그런데 채팅방에 있는 어떤 분께서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여 순례길을 걷는 것은 진정한 순례길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다른 분은 순례길을 걸을 때는 프랑스 길이 아니라 북쪽 길을 무조건 걸어야 하며 중간에 점프(마을을 다른 이동 수단으로 건너뛰는 것)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므로 무조건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은 다음에 와서 다시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배낭이 없이 걸은 나는 이틀 만에 진정한 순례자가 아니게 되었다. 배낭 없이 걸어도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내가 순례자가 아니라니...


  사실 나 역시 단체 채팅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까미노를 걷는 사람이면 단체 채팅방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으므로 들어가서 나쁠 게 없기 때문에 나 역시 들어가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내가 고민했던 이유는 채팅방에 나와 같이 까미노를 처음 걷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까미노는 다시 까미노를 부르기에 여러 번 경험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간혹 자신이 경험한 것이 절대적인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여기서 만난 사람만 하더라도 각각의 짐을 가지고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챙겨 온 배낭의 무게이자 자신이 챙기고 있는 마음과 몸의 무게이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었고, 각자가 그렇게 걷는 이유가 있었다. 나 역시 여러 번 고민하여 이 길을 선택했지만 나와 함께 있던 일행들의 이야기는 나의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런데도 채팅방의 그들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정답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까미노는 이미 지나간 사람들이 제시한 정답만을 걷는 것이 아니라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자신의 길을 수없이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이다. 몸이 아프면 아픈 대로, 마음이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지름길을 통해 갈 수도 혹은 그곳을 피해 빙빙 돌아갈 수도 있는 길이다. 단 이틀을 걸었음에도 우리 일행이 걸은 길은 각자 달랐지만 결국 수비리에서 만났다. 그리고 각자가 걸어온 길에 어떤 것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는 시간은 걷는 것만큼 의미 있었다. 언제까지 동행할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모두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면, 혹은 도착하기 전에 순례의 여정이 끝난다고 해도 다시 돌아가서 자신이 어떤 이유로 완주했고, 어떤 이유로 완주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까미노는 이어질 것이었다.

석양이 지면 숙소로 돌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 팜플로나까지 가는 길이 쉬울 것이라는 말에 들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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