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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Apr 30. 2023

순례길 여행 0번째 이야기

왜 산티아고 순례길인가(1)

과거를 떠올려보면, 나는 여행을 떠나서 많은 것들을 결정했다.


  오래전, 누군가 나에게 여행을 떠나는 의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그것들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행을 통해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으며 느끼는 행복은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비례한다고 덧붙였다. 그때의 나는 여행을 자주 해보지 못했기에 여행에 대한 그의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게 들렸다. 그는 청년들을 이끄는 단체의 대표였고, 청년들의 행동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청년들이 어느 순간 SNS에 여행 사진이라거나 맛집 사진이 자주 올리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조만간 그들이 꿈과 현실에 대해 대표에게 의논하고자 연락하곤 했다는 그의 에피소드들은 그의 말에 대한 신빙성을 높여주었다.


"지금, 여기, 당신이 서 있는 곳에서 행복하다면 질문에 대한 답을 밖에서 찾을까?"


  그때의 나는 여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가본 나라라고는 기껏 세네 국가정도였으니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여행 가는 사람들의 불행이 아니라 내 선생님께서 그렇게도 강조하셨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것"이었으므로 지금도 그의 말이 딱히 틀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현실에서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항상 강조하셨던 대표님의 말은 내 선생님이 누군가를 인용해서 해주신 말씀과 같았다.


"두 다리를 땅에 딛고서, 별을 바라보라."


  이후 몇 번의 여행을 하면서 문득 그의 말이 떠오를 때마다 점차 나는 그가 말한 여행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여행이 온전한 힐링과 위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삶을 구성하게 된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들은 여행에서 내린 것들이었다. 내가 나의 삶을 여기서 한 발자국 물러나 바라보기 위해, 꿈을 향해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던 내 모습에서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기 위해 여행했기 때문이다. 잠시 멈추어서 나를 바라보면 때로는 나에게 엑셀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도 했고, 때로는 브레이크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 중 설레고 기대되는 시간은 여행을 계획하고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였으며, 비행기에서 내리고 낯선 곳에 혼자 나를 남긴 시간부터는 방황의 시간이었다.

  

  이런 의미를 찾게 된 첫 여행지는 태국이었다. 훈련병 시절, 주말 자유시간에 나는 태국의 한 마을인 빠이에 관한 에세이를 읽었고, 여행자들의 천국이라던 그 마을은 제대 후 내 첫 여행지가 되었다. 치앙마이에서 몇 시간 동안 수백 개의 굽이 길을 달려간 빠이에는 자유가 있었다. 수십 명의 여행자들을 만나며 수십 개의 꿈을 들었고, 낯선 이에게 자신의 꿈을 말하는 그들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상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사람들이었다. 나는 며칠 동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막연했던 내 꿈에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나에게 빠이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그러나 이후 몇 번의 여행에서 빠이를 가지 않았던 이유는 빠이에서 세운 목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없었을뿐더러, 딱히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5년에 빠이에서 세웠던 목표들은 여전히 나를 이끌고 있었고, 나의 경험들은 그것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빠이에서 돌아온 후 나는 바로 '꿈사다리 학교'라는 교육 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이 두 개의 선택은 내 인생에서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빠이에서 세웠던 목표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내 능력에 대한 객관화 없이 무작정 이 길을 선택해서 억지로 나를 끌고 온 것은 아닐까. 지금 단계까지는 어찌어찌 끝낸다 하더라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나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을 때 나는 다시 빠이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2주 정도 빠이에 머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득, 불안한 나를 이끌고 빠이를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빠이에서 나는 꿈을 꾸었고 그것을 위한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 나에게 빠이는 새로운 도전이자 새로운 출발지였다. 그곳에서 세운 것들이 흔들리고 있으므로 다시 빠이에 머물면서 마음을 다잡는 것은 맞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나는 애초에 왜 이 여행을 계획했을까? 내가 만든 프레임이 맞다는 확인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벗어나고 새로운 프레임을 짤 수 있도록 만드는 환경이 필요한 것일까. 지금 이대로 빠이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내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시각이 아니라 힐링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었던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시작되는 불편한" 여행이 아니라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안심하게 되는 편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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