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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꽃 피는 나라

천국으로 배달하고픈 향기를 나누어 드립니다

남편이 살던 고향은 미국의 플로리다의 작은 도시 브레든턴 이었습니다. 세계적인 테니스 학교인 닉 볼레 테리 테니스 아카데미가 있던 곳이기는 하지만, 인구 3, 4만 정도의 플로리다 중부 해안가의 조그만 소 도시 였습니다. 오렌지 나무들로만 가득한 허허벌판에서 혹독한 훈련과 학업을 병행하던 그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바닷가에 가는 날이었답니다. 그는 바닷바람을 참 좋아했습니다. 특히 오렌지 꽃이 피기 시작하는 1월 중순부터 오렌지 향기와 함께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노라고, 늘 이야기하곤 했었습니다.


탬파와 사라소타 사이의 브래든턴


테니스 선수로, 코치로 1 년이면 30주 이상을 여행을 하며 지내던 그는 유난히 향에 민감했습니다. 매주 다른 도시, 다른 호텔에 묵어야 하는 그는 늘 같은 향수를 방에 뿌려대며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갔었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도 자신의 향이 아닌 다른 냄새들을 힘들어했습니다. 식성은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천상 한국인이면서도 그 냄새는 힘들어했던 그, 그래서 그가 집에 돌아오면 음식 냄새를 빨리 없애기 위해 식사 준비를 하면서 늘 향초를 피워 놓고는 했었습니다.


 

늘 피우던 양초




신혼 초, 늦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 그는 저 몰래 라면 봉지 위에 향초를 켜놓았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저녁을 해 주었는데 그 냄새가 싫다고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고 냄새를 지우고 싶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을 홀랑 태워 먹지는 않았지만, 라면 봉지 밑으로 까많게 타버린 싱크대의 자국은 그 집에 사는 내내 그를 작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저와 3년 같은 30년을 함께 보내고, 홀연히 저를 떠나갔습니다. 그를 보내고 보낸 2 년은 저에게는 2만 년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늘 남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귀찮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던 그인데, 그가 가고 나니 왜 그리 좋았던 시절만 기억이 나는지, 왜 그리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은지, 왜 그가 없는 세상이 의미가 없어 보이는지.. 그가 없는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 미친듯한 몸부림을 쳐댔습니다. 그가 그저 잠시 여행을 떠났을 뿐이라 부정하며 다시 돌아올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고, 심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하여 심장 모양의 수세미 10,000 개를 만들어 보겠다며 밤을 새우며 뜨개질만 하기도 했습니다.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제가 위태해 보였는지 주변 분들께서는 참으로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텅 빈 세상을 사는 저에게는 그마저도 버겁고 힘든 짐으로만 느껴졌습니다.

 

심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을 기리며 1만 개의 하트 수세미를 뜨려 했으나...



제가 마음을 잡기 시작한 것은 그가 남긴 양초 조각들 때문이었습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타다 남은 양초들을 한 군데 담아 놓으려고 양초를 만들기 시작했고, 유튜브만으로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원데이 클래스를 시작으로 캔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지개색으로 캔들을 만들고 여러 가지 향을 넣어보는 작업은 육체적으로도 방 안에 틀어박혀 한걸음도 걷지 않던 저를 움직이게 해 주었고, 정신적으로도 저를 많이 위로해 주었습니다. 남편이 생전에 쓰던 향수며 즐겨 쓰던 캔들의 향을 써 보았지만, 제 마음을 사로잡는 향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씨 쏠트 앤 유자라는 향을 만났습니다. 이름 그대로, 바닷소금에 유자향을 조금 섞은듯한 달콤 쌉싸름한 향을 처음 만난 날, 저는 그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그가 대학원 졸업 후 모교에서 일을 할 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첫 직장을 가지고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아이를 낳았던 브레든 톤, 플로리다로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딸아이에게는 진짜 고향이기도 하네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남편은 발병하기 2-3년 전부터 우리 가족들을 모두 끌고 추억 여행을 다녔었섰습니다. 2016년, 우리는 플로리다를 방문했었습니다. 오렌지 꽃이 피기 시작한 1 월, 자신의 모교인 IMG Academy를 방문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교장 선생님은 부재중이셔서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쉬워하는 저에게 남편은 "다음에 보지 뭐, 100살 넘게 사실 거야."라고 말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남편은 맞았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100세에 가까운 신데 아직도 살아계십니다. 그가 떠났을 뿐이지요. 바닷가에 가서는 큰 숨을 들이키며 "이게 오렌지 꽃 향기야"라고 딸에게 설명해주던 그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직도 정정하신 닉 볼레 테리 교장 선생님



씨 쏠트 앤유 주라는 향을 만나고 저의 캔들은 한 가지의 향으로만 만들어집니다. 캔들을 만드는 것은 저에게는 그를 추억하며 그의 부재를 애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이자 의식이 되었습니다. 지인과 친지들에게 이 향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캔들을 만들어 나누는 것조차도 이 나라에서는 허가가 필요하더군요. 저는 그저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그를 기리기 위해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는 사업자등록도, 통신판매 등록도 필요하더군요. 상호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남편과 제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인 딸의 이름인 고야 캔들로 정했습니다. 처음에는 판매까지 이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인들에게 선물을 했고, 정말 많은 캔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지인의 지인이 부탁을 하시고, 공짜로 드리기에는 너무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 재료비 정도를 받다가, 인증을 위해 열어놓은 네이버 스토어에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어쩌면, 그가 천국에서 주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고야 캔들 스토어는 점점 일이 많아지네요. 그의 향기는 저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달콤하고 아름다운 향인가 봅니다.




고야캔들샵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망 캔들


저는 전업으로 캔들을 만들지는 않을 것 같긴 합니다. 캔들을 만들며 엄청난 이익을 내지도 못할 듯합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고야 캔들을 주문하신다면, 열심히 만들어 배달해 드릴 예정입니다. 그가 그리워하던 고향의 향이 많이 피워진다면 혹시 그가 천국에서 맡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이랍니다. 아직 저는 그가 참 많이도 그리운 모양입니다.




고야 캔들의 시그니쳐: 천사 캔들: 벌써 200명의 천사가 행복을 나누어주러 떠나갔네요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네이버에 "고야 캔들"을 검색해주세요. 아름다운 향기를 저렴한 가격에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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