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우리와 함께합니다.
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Bartholdy, 1809-1847)입니다.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유명한 유태교 철학자인 모세 멘델스존의 아들로, 유명한 은행가였습니다. 어머니 역시 전통 깊은 유태인 가족인 이치히 가문의 손녀로, 이 둘은 멘델스존이 일곱 살 때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멘델스존 가족은 1811년,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정책에 은행일이 지장을 받을까 봐 베를린으로 이주합니다. 2남 2녀를 두었던 멘델스존 부부는, 자신의 아이들이 최고의 교육을 받도록 저명한 학자들을 가정교사로 초청, 아이들을 가르치게 합니다.
2남 2녀 중 장남이자 둘째로 태어난 멘델스존은 여섯 살 때,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멘델스존은 당대 유명한 피아노 선생님을 찾아 파리, 베를린 등에서 음악을 배우게 됩니다. 멘델스존의 데뷔 무대는 아홉 살에 실내악 연주였습니다. 부유한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에 관심을 보이자 사설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주었고, 멘델스존은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위해 일찍부터 많은 곡을 작곡하게 됩니다.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심지어 아들의 작품을 출판해주고, 당대 유명한 예술가와 음악가들을 초청, 그를 소개해 줍니다. 멘델스존은 어린 나이에 현악 8중주, 한여름밤의 꿈 서곡 등을 작곡해 이름을 날리고, 바흐를 재조명하며 자신의 음악적 입지를 굳혀 나갔습니다.
1835년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한 후 1837년, 자신보다 여덟 살 연하의 프랑스 교회 목사님의 따님인 쎄실( Cécile Charlotte Sophie Jeanrenaud, 1817-1853)과 결혼하여 2남 2녀를 두었습니다. 멘델스존의 결혼은 순탄한 것 같았지만, 1844년, 멘델스존이 스웨덴의 소프라노인 제니 린드(Jenny Lind, 1820-1887)를 짝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멘델스존의 제니를 향한 열정은 그가 보낸 편지에 남아있는데요, 그녀에게 구애를 하며 자살을 하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답니다. 스웨덴의 나이팅게일로 불렸던 제니를 위해, 멘델스존 자신의 오라토리오 "엘리아"의 소프라노 파트를 쓰기도 하고, 그녀의 데뷔 연주를 들으러 영국으로 일부러 여행까지 갑니다. 하지만, 신은 멘델스존이 한눈파는 것을 용납 하기 싫었을 까요? 영국 여행에서 돌아온 후, 멘델스존은 몸이 급격히 약해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신이 가장 믿고 따르던 누나 페니 멘델스존의 죽음으로 심적으로도 위축됩니다. 누나가 세상을 떠난 지 약 6개월 후, 멘델스존은 중풍 발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멘델스존은 자신이 존경하던 바흐를 따라 자손들의 교육을 아주 잘 시켰습니다. 멘델스존의 큰 아들인 카를 멘델스존(1823-1897)은 역사학자가 되어, 하이델베르크와 프라이부르크에서 교수로 일생을 보냈습니다. 딸인 마리는 영국으로 시집을 가, 런던에서 살았으며, 막내딸인 릴리는 저명한 법학자인 바쉬(Adolf Wach, 1843-1926)와 생을 함께 했습니다. 멘델스존의 자손들 중에 가장 성공한 자손은 그의 둘째 아들 파울 멘델스존(Paul Mendelssohn, 1841–1880)입니다. 파울은 화학을 공부하고 영국의 유명 염색 회사들의 기술을 들여와 대학 친구였던 마르티우스(Carl Alexander von Martius, 1838-1920)와 함께 염색 공장을 독일에 처음으로 열었습니다. 1867년 설립된 이 합작 회사는, 1898년 "AGFA"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20세기에는 카메라와 카메라 필름, 인화지 등을 만들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뻗어나갔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스캐너, 프린트 잉크, 이미징 사업 등으로 재도약했으며 지금은 건강 관련 사업과 그 이외 사업도 한다고 하네요. 우리가 실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기업이지만, 그 뿌리가 멘델스존의 아들에 있다니 더 친근하게 느껴지네요.
아그파 로고
음악계 최고의 금수저로 태어나, 아버지의 재력을 십분 이용하여 자신의 음악생활을 시작하고 위대한 작곡가로 우뚝 선 멘델스존, 만약 그가 여느 음악가처럼 평범한 집안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지, 가끔, 위의 로고를 보면 생각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