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서 서러울 때
이혼녀가 아닌 미망인으로 1년째, 아무리 건강한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엄마가 혹시 외로울 까 적당히 긴장을 늦추지 않게 사고를 쳐주시는 따님을 달고 살고 있지만, 아주 가끔씩은 혼자인 게 현실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남편과 딸이 워낙 중병을 앓아서 그렇지, 사실 저도 사 년 전, 유사암을 앓아 아직도 진료비의 5%만 내고 있는 산정 특례 대상자입니다. 남편과 딸의 간호를 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제 주치의 선생님께서 연구년을 가시는 바람에 어찌어찌하다 보니 2년간 검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2년 만에 병원을 찾은 저를 보시더니 주치의 선생님은 한숨을 쉬시더군요.
"본인도 희귀병이십니다. 검사 계속 받으셔야 해요"
일장 연설을 시작하시려던 선생님은, 제가 원발성 심장 육종 환자였던 남편을 떠나보냈고, 길랑 바레로 사지가 마비되었던 딸을 일으켜 세웠다는 이야기를 꼼꼼히 차트에 적으시며, 뒷 말을 줄이시더군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시고요?"
"혈압이 좀 높긴 한데, 약을 자꾸 까먹고 못 먹네요."
제 대답에 선생님께서는 당장 혈압을 재 오라 하셨고 제 혈압 지를 들여다보시더니 약만 먹으면 되는데 왜 안 드시냐며 걱정스럽게 저를 째려보시더라고요.
"건강 조심하셔야 돼요. 이거 다 위험합니다"
하시면서 산부인과 질환이 있는 저를 가슴과 복부 CT를 찍게 해 주셨습니다.
4주 후, 저는 결과를 보러 다시 선생님을 뵀습니다.
"언제나 조금 특별나시네요."
말씀을 시작하신 선생님은 산부인과 CT를 찍었는데 갑상선 검사를 하라고 판독이 됐다며 신기해하셨습니다. 내분비내과로 의뢰를 해 주시겠다던 선생님께 굳이 사촌오빠가 갑상선 전문의로 있는 국립병원으로 가겠다고 거절을 한 것은 사실 조금은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우연히도, 희귀병 집안인 저희 식구들의 희귀병은 전부 다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이 계신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기에, 또다시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입니다.
진료실에서 나와 사촌 오빠에게 연락을 했더니, 사진을 보내라 하더군요. 영상 진료 기록을 뽑아 컴퓨터에서 버벅대며 보냈더니, 오늘 아침, 연락이 왔습니다. '초음파는 지금 병원에서 보고, 조직 검사하라 하면 올 것'이라고요. 아니 그럼 처음 협진을 해 주신다 했을 때 예약을 했으면 되는 것을... 예약하려고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이번 주 목요일에 캔슬된 시간이 하나 있고 아니면 5월 중순에 오라더군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학 중간고사 기간 동안 맞추어 선후배들과 여행을 잡았었는데... 부모님과 딸아이 병원 약속도 전부 안 따라간다고 선언을 하고 어렵게 낸 시간인데.. 이건 뭐 혼자이긴 하나 혼자가 아닌 저를 이제는 제 자신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어쩝니까, 선후배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병원 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살짝 두렵네요. 어머니는 아침부터 아버지와 뭐가 그리 바쁘신지 이리저리 다니시고, 딸아이는 엄마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일숍에 가버리고, 혼자 저녁을 먹고 있는데(물론 어머니가 재어두신 불고기에 두릅 무침을 먹었지만), 제 자신이 참 처량하더라고요. 늘 다그치기만 하고 제가 수술을 해도 병원에 한번 찾아오지도 않던 남편이지만, 이게 암일까 아닐까 하고 마음을 졸여가며 있을 앞으로의 며칠을 저 혼자 버텨야 한다니 한심하기도 합니다. 물론, 전문가인 사촌오빠 보기에 별거 아니니 그냥 검사받으라고 했겠지만, 만약에라도 암이라면, 저 혼자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사실이 초긍정 마인드를 가진 저마저 약간은 슬프게 만들며, 그래도 내 간호를 받다 천국 간 남편은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침대를 혼자 쓰고, 아무리 어질러도 혼내는 사람 없고, 하루 세끼 걱정 안 해도 되고, 차를 어떻게 타고 다녀도 아무 상관없는 삶에 익숙해져 가며 심지어 살짝 행복해하기까지도 하던 저에게 또 이런 힘든 일들이 줄줄이(사실은 딸도 조금 아파 검사 중입니다) 생기니, 옆에서 함께 한숨 쉬고 걱정하며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쉽네요. 결혼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남편이란 있어도 싫고 없어도 싫다지만, 그래도 옆에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 줄 왜 몰랐을까 심히 후회되는 스산한 봄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