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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mother Like daughter

오지랍도 유전이네요

남편이 떠나간 지 1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처음에는 그를 잃은 슬픔에만 잠겨 있다가, 나와 함께 슬퍼하는 가족들 때문에 억지로라도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도대체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네요. 도대체 나는 무엇을 꿈꾸고 살았는지, 뒤돌아 보았지만, 제게는 그다지 엄청난 꿈도, 계획도 없더군요. 아니, 제 꿈이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닌 그야말로 꿈이었기에 실천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제 성적표에 적힌 제 장래 희망은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연주자도, 교수도 아닌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희망은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차마 장래 희망 칸에 적지 못했던 저의 진짜 꿈은 역사에 남는 사람이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한국사를 읽으며 광개토 대왕과 함께 저 넓은 만주를 차지하기도 하고 김유신 장군과 삼국통일도 하며 저는 선덕여왕이나 평강공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유관순이나 잔 다르크도 저의 롤모델이었지요.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맞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역사책에 남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런 저의 꿈은 사랑에 빠지며 물거품이 되었지요. 하지만, 꿈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잖아요?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걸스카우트의 일원으로 고아원에 다녀온 후 저의 꿈은 환경이 좋은 고아원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창 소공녀를 읽으며 기숙사에 대한 꿈을 키울 때, 당시 고아원의 열악한 환경은 제게 적어도 소공녀가 다녔던 학교의 기숙사만큼이나 깨끗한 고아원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 자신이 얼마나 혜택 받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지 인지하지 못했던 저에게도, 무언가 나와 우리 집에서 일을 도와주는 언니들이 받는 대우가 다르고, 정당하지 않다고 믿었던 듯합니다. 꿈은 꿈이기에, 고아원은 커녕 하나 있는 딸아이마저 거의 고아처럼 이 집 저 집 맞기며 사는 인생이었으니 꿈이 이루어지기가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달아갔습니다.




얼마 전, 딸아이와 오랜만에 깊은 대화를 하면서 딸아이의 앞으로의 계획을 들으며, 역시 내 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딸아이는 요양병원을 만들어 지금 여기저기 고장 나고 계시는 할아버지 세대들 뿐 아니라, 저와 제 형제들까지 아프면 자신이 돌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빠를 보내며, 병원에서 더는 해 줄게 없다고 나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살아있는지, 호스피스와 요양병원을 만들어 일가친척들을 다 편안히 보내드리고 싶다는 말에 저는 딸이 아닌, 비전이 있는 대한민국의 멋진 사회인을 보았습니다. 이거 내가 요양원을 차려야 하나 어쩌나, 그러다 딸아이가 혹시라도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면 큰 일 나는 것 아닌가 하며 순식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래도 제 마음은 뿌듯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챙기고 섬길 줄 아는 아이로 커 준 딸아이가 너무 기특해서지요. 못난 엄마 밑에서 반듯하게 자라준 아이가 참 고마웠습니다.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Kid.


아이 하나를 키워내기에는 온 마을이 도와야 한다는 말이지요. 저는 한 사람을 떠나보내기 위해서도 온 마을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남편을 직접적으로 도와주셨던 의료진들, 간병인 분들, 또 위해서 기도해 주신 많은 분들, 남아있는 저와 딸아이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신 분들을 다 합하면 아마 서울 인구는 족히 넘 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딸아이가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많은 분들이 떠나는 길을 지키겠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딸아이의 인생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는 이 마음을 끝까지 간직할 거고, 저는 그 마음을 돕기 위해 힘닿는 데 까지 도울 예정입니다. 누구야 가야 하는 그 길의 끄트머리에 최고야와 함께 하실 분들 손드세요! 선착순 마감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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