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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휘 Dec 17. 2020

쓰레기 줄이기2. 플라스틱 생수병

숯 정수기


원래 우리집은 수돗물에 보리차를 끓여 먹었기 때문에 나는 수돗물을 먹는 데 별 거부감이 없었다. 최근 십여년 동안 가정집에 정수기를 설치하는 게 너무나 보편적이 되었지만, 그 전에는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살림을 시작하고서 어렸을 때 그래 왔듯 수돗물로 보리차를 끓여 마시곤 했다. 그러나 5년 전쯤, 이사한 집의 수돗물은 맛이 너무 좋지 않아서 보리차를 끓여도 너무 먹기가 힘들었다. 오래된 집이어서 그랬는지, 원인은 모르겠다. 그러나 별로 까다롭지 않은 나도 그냥 마시기엔 힘든 정도의 맛이어서, 그때부터 생수를 사 먹기 시작했다. 고구마를 삶거나 라면을 끓이는 때는 수돗물을 쓰기도 했지만, 마시는 물은 생수를 먹었다. 그래서 원래 잘 하지 않던 온라인 장보기도 시작하게 되었다. 주문하면 문 앞까지 무거운 생수가 배달되니까 물을 시키기 위해 장을 보면서 이것저것 더 사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 생수를 먹으면 매주 몇 개나 플라스틱 생수병을 버리게 된다. 쓰레기를 내놓는 날은 내 몸 하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나올 일인가 싶어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정수기를 설치하자니 정기적으로 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싫었다. 브리타 정수기를 사 볼까 생각했으나 브리타로 걸러도 수돗물 냄새가 난다는 후기를 어디서 보고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저 최대한 생수를 덜 먹고 덜 사는 쪽으로 노력하는 정도로 어영부영 살고 있었다.


그러다 망원동에 있는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을 방문한 날, 거기서 유리 물통에 숯을 넣어서 식수로 제공하는 것을 보았다. 수돗물에 식용 숯을 넣으면 정수가 되고, 브리타 정수기의 필터에도 활성탄이 들어간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숯이 담겨 있는 물통의 물을 마셔보니 괜찮은 것 같아 식용 숯을 몇 개 사 왔다.


숯을 씻어서 수돗물에 담가 두니, 기포가 뽀글뽀글 맺혔다. 그렇게 두었다가 마셔 보니, 정말 수돗물이 먹을 만하게 바뀌었다! 단, 담그자마자 바로 그렇게 되지는 않고, 하루 정도는 담가 두어야 수돗물 냄새가 사라진다. 나는 이틀을 담가 두고 물통에 넣어서 마신다. 그래도 수돗물이라는 생각에 가급적 한 번 끓여서 차로 마신다.    


정수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식용 숯.  한번에 3L정도 정수해 두고 먹는다


숯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세한 구멍이 나 있어 흡착력이 좋기 때문에 정수, 탈취 기능을 한다. 그래서 필터 등에 많이 사용되는데, 그것을 물에 그냥 담갔을 때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숯을 몇 번 쓰고 나서는 뜨거운 물에 소독한 뒤에 햇볕에 말려서 쓰면 다시 기포가 뽀글뽀글 맺힌다. 물을 받는 과정에서 미세한 숯 알갱이가 부서져서 나오기 때문에 맨 밑에 가라앉은 물은 마시지 않는다. 


사실, 맛으로만 따지자면 생수가 맛이 조금 더 낫긴 하다. 고백하자면 손님이 올 때는 생수를 사 마신다. 그래도 수돗물 냄새가 안 나서 그냥 마셔도 괜찮은 편이고, 차를 끓여 마시면 생수와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수돗물을 쓰니까 많이 만들어 두고 요리할 때도 쓰고 밥도 짓고 국도 끓인다. 숯을 쓴 덕분에 생수를 거의 사지 않게 되고, 전보다 페트병 쓰레기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엄청나게 대단한 걸 줄인 건 아니지만, 조금씩 뭐라도 줄여 보고 싶어서 방법을 찾고 있다. 늘, 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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