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을 배웠으면 정말 잘 공부한 것이다

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시간

by 소휘

유명한 인터넷 유머가 있다.

학사 : 난 이제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한다
석사 : 공부를 더 해보니 모르는 게 조금 있는 거 같다
박사 :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교수 :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얘기하니까 학생들이 다 믿더라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내가 아는 게 정말 없구나’라는 걸 더 많이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석사를 가겠다는 사람들은 그래도 공부에 어느 정도 흥미를 느끼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 학부 때까지의 공부와 석사부터 시작되는 공부는 다른 종류의 공부이다. 그러다 보니, 석사를 마치고 ‘나는 공부와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닫는 경우가 많다.


논문을 읽으면 ‘나도 이 정도는 쓰겠는데?’라고 생각되지만, 논문을 내가 막상 쓰려고 하면 처음부터 턱턱 막힌다. 내가 쓰면서도 내 논리가 말이 안 된다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교수님은 그걸 어쩜 그렇게 잘 잡아내시는지. 내 논리와 연구설계의 부족함을 교수님은 콕콕 잘도 집어내신다. 그렇지만 뭘 알아야 고치지, 뭘 어떻게 손을 대야 잘 되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계속 되풀이해서 겪고 나면, “이 정도 논문 나도 쓰겠다”는 말이 쏙 들어간다. 석사 졸업한 사람이 대단하게 보이고, 박사를 간다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고백하자면 나는 한때 학교와 회사를 병행하는 직장 동료들을 은근슬쩍 무시했던 때도 있었다. ‘그까짓 거, 뭐가 어렵다고 징징거려?’하고 내심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내게 그 상황이 닥치고 보니, 그렇게 병행하면서 석사를 딴 모든 직장 동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며 교만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말 공부를 한 게 아니라 학교를 ‘다니기만’ 한 사람들은 이 감정을 잘 모른다. 물론 학교를 ‘다니기만’ 하는 것도 정말 피곤하고 지치는 일임이 사실이지만, 거대한 벽을 만나 본 것과 만나보지 못한 것은 다르다. (물론 일부러 그 벽을 만날 필요는 없다...피할 수 있으면 피하자) 그 벽이 논문만은 아니다. 수업만 들어도 모르는 거 투성이고 수업마다 해야 하는 발표와 과제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왜 난 이걸 이해를 못 하지’ ‘왜 난 이걸 못 쓰지’라고 자괴감 들고 괴로운 시간의 나날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는 것이 공부를 잘 했다는 증거이다. 공부를 해야 질문을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공부를 했으니까 객관적인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겸손해지는 것이다. 가만히 어릴 때를 생각해보자. 어렸을 때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안다. 그러다가 세상을 알아가며 현실인식이 점점 되기 마련이다. 고1 때는 다들 모의고사 때 장난 삼아 서울대로 지망대학을 한 번씩 써보지만, 공부를 더 많이 한 고3 때는 서울대 가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진다.


초, 중, 고 내내 공부를 그렇게 하루 종일 했는데도 수능 만점은 못 받는다. 그런데 석사과정 4학기 하고 괜찮은 논문을 쓸 수 있다(또는 써야만 한다)는 생각은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심지어 처음 쓰는데 멋지게 한다고? 잘 쓴다고? 스스로에 대해 너무 과다한 기대를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보라. 그런 교만을 버리기만 해도 석사를 잘 이수한 것이다. 진짜 최악은 자기 석사 논문이 꽤나 잘 쓴 논문이라고 믿고 있는 경우다.


석사를 마치고 보니, 겸손을 배우려고 공부를 했구나 싶다.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이 많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으려고 그 힘든 과정을 지나온 게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멍청하면 어떠랴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래 좀 부족하면 어떠랴 소중한 존재이다’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 마음 공부 하러 대학원 갔던 게 아닐까 싶다. 뭐, 어쨌든 하나라도 성장에 도움이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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