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깨닫고 인정해야 할 사실
어차피 석사논문은 쓰레기다. 이 사실을 빨리 깨닫느냐 아니냐에 따라 당신의 대학원 생활이 달라진다. 하루라도 빨리 깨닫는 게 좋다. 최악은 논문을 다 쓰고 나서도 못 깨닫는 사람이고, 보통은 논문을 쓰면서 깨닫는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그런 쓰레기를 생산하는 게 너무 너무 힘들다는 점이다. 굉장히 힘든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가 쓰레기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체로 그렇다.
그래서 “나쁜 교수는 지옥에 가서 자기가 쓴 석사논문을 반복해서 읽는 벌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혹시 지금 당신이 다니고 있는 대학원의 졸업 요건이 논문 작성이나 졸업 시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거라면, 논문은 생각도 하지 말고 졸업시험을 선택하길 바란다. 그것도 아니고 이수만 하면 졸업이 되는 과정이라면, 당신의 혜안에 감탄한다. 직장인이 다니는 과정으로 베스트를 선택했다.
학위논문은 풀타임 학생이 다니는 일반대학원이라면 당연한 과정이지만, 직장인으로 이 과정을 해내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자, 욕심을 버리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나는 왜 석사를 따려고 하나?’
내 인생에 논문이 꼭 필요한 건지, 아니면 ‘그냥 열심히 하고 싶어서’ ‘석사 나왔다고 하려면 그래도 논문이 있어야지’ 정도의 마음이라면, 다시 현실적으로 생각하라. 논문이 있느냐 없느냐가 앞으로의 커리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한다.
내가 다닌 과정은 논문이 필수인 데다, 논문을 쓰기 위한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즉 학점이수 – 시험 – 논문을 다 해야 졸업이 되는 과정이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지라 울면서 이 과정을 겨우겨우 해내가며, ‘시험만 치면 졸업할 수 있는 과정으로 갈 걸’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논문을 쓰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보통 초중고, 학부 때까지 우리가 해 왔던 공부는 있는 지식을 잘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석사 때부터는 약간 달라진다. 석사는 물론 맛보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의 시각을 가지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해 왔던 공부와는 다른 종류의 과정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리고 이게 진짜 새로운 것이라고 증명하는 과정은 굉장히 어렵다.
그리고 직장인이면 또 하나의 난관이 있다. 바로 직장 글쓰기와 학문적 글쓰기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건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즉, 직장-학교 병행은, 두 가지 종류의 생각의 구조, 글쓰기의 구조를 병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사실 나도 회사에서는 보고서깨나 쓴다는 사람이다. 다년간의 직장생활로 보고자료, 업무계획 작성은 어디 빠지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고자료 써 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보고자료는 최대한 간명하게 써야 한다. 특히 높은 직급에게 올라가는 보고서일수록 한 장을 넘겨서는 안 된다. 글자 크기는 크면서 한 장에 모든 내용을 담아내야 한다. 이 보고서 작성에서 사용되는 논리구조는 대강 이러하다.
[회사 보고서에 필요한 논리구조]
A : 현 상황의 문제점(To-Be)
B : 해결책(As-Is) : 보통 이 부분이 길다
C : 투입자원(인력, 예산 등등)
D : 기대효과
회사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나는 저런 구조의 생각을 갖고 저런 식으로 보고자료를 썼다. 즉, 다년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저런 생각 훈련이 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논문은 대략 이런 논리구조이다.
[논문의 논리구조]
A : 현 상황의 문제점
B : 선행연구 분석
C : 연구방법 & 연구과정 & 분석결과 : 보통 이 부분이 길다
D : 결론
E : 연구의 의의 & 한계
전혀 다른 생각의 구조이고 전혀 다른 글쓰기 방식이다.
내가 이 사실을 정말 확 깨달은 때가, 논문 계획서를 쓰면서였다. 보고서 쓰던 습관대로 논문계획서를 간단하게 한 장으로 써서 냈는데, 지도교수님이 그걸 검토하더니 ‘너무 짧으면 성의 없어 보인다’고 수정하라고 피드백을 주신 것이다. ‘어? 한 장이 좋은 거 아니었어?’라는 당황스러움. 그리고 나서야 직장과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경야독하는 직장인 학생들은, 낮에는 회사에서 위의 생각 구조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아래의 생각 구조로 공부해야 하는 셈이다. 생각의 전환이 팽팽 일어나지 않는다. 뭐 될 수도 있겠지만 보통 힘들다.
이제 제일 중요한 점.
‘이렇게 힘들게 논문을 썼지만 결과는 쓰레기다’
잔인한 현실이다. 학위논문을 완성하면 기본 10권은 인쇄를 해야 하는데, 참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에 몇 권 내고, 연구실에 갖다 놓고 나머지는 친한 사람들에게 한 권씩 기념으로 주는데, 친구는 자기가 쓴 논문을 돌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비싼 편지지 만드느라 이 고생을 했구나.’
물론 나도 만 천 원짜리 편지지에다가 편지를 써서 그 친구에게 주었다.
어차피 석사논문은 쓰레기다. 이 사실을 알고 힘을 좀 빼자.
석사논문은 학문적 생각의 방법, 학문적 글쓰기의 방법을 연습하는 과정이다. 연습이다. 처음부터 잘 할 수 없다. 혹시 잘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는가? 그럼 연구실에 있으면서 연구실 공동연구도 거들고,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도 올려 보고, 포스터 발표도 해 보는 그런 일련의 훈련 이후에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음을 잊지 말자. 그것도 안 하고 학위논문 하나 쓰는데 잘 쓸 거라고 생각하는 건 교만이다.
혹시, 소속된 연구실의 교수님이 ‘석사든 박사든 내가 지도한 논문의 수준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교수님이 만족할 때까지 졸업을 안 시켜주는 타입이라면, 안됐지만 어서 탈출하길 기원한다.
직장인에게 풀타임 학생만큼의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교수님이라면, 그 기대에 부응할 자신이 없다면 도망치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드린다. 연구실을 바꾼다거나, 휴학을 한다거나 등등. 물론 기대에 부응해가며 다 해내는 훌륭한 분도 있겠지만, 그렇게 못한다고 해서 자신을 한심하게 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학교를 다니기만 해도 아주 잘하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