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진 빼지 말자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 곧잘 하던 말이 있다.
“열심히 해라,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해라.”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좋은 것이고, 좋은 성과를 당연히 보장해 줄 것이라 믿고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
그렇지만, 회사를 다니고 일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무조건 열심히’가 얼마나 무용(無用)한지. 열심히 한다고 잘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최악은 아무 성과도 못 내는데 ‘열심히만’해서,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을 왜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느냐”고 분노하거나 자기가 하는 일을 책임지지 못 하고 남이 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렇게 직장 속에서 ‘열심히“가 무조건적인 선도 무조건 추구해야 하는 가치도 아님을 알게 된다. 채용 면접관이 “무조건 시키는 일 다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하는 사람은 거른다는 말도 있지 않나.(이 말 자체도 이미 너무 옛날 말이지만......)
공부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백의 상태로 대학원을 가는 바람에, 수업은 못 따라가겠고 그래서 열심히 하기라도 해야 한다고, 교수님에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한다고 스스로 믿었다. 게다가 신입생 OT때 교수님은 “공부 좀 열심히 하세요. 특히 2부 학생들.”이라고 하셨다. (2부 학생은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에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다)
그 말을 듣고 “아, 2부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고 생각하시는구나, 정말 부끄럽다. 나는 열심히 해야지. 학교도 자주 와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원은 어쩌면 그렇게 ‘다니는’ 것만 해도 힘든지.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한 다음 6시반부터 9시까지 수업을 듣는다. 일주일에 2번, 많을 때는 3번씩 학교에 가는데 이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읽으라는 페이퍼도 다 읽기 힘들었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면서 연구실 프로젝트에도 참여해서 논문을 써 내는 사람들도 있고 나는 자괴감에 빠졌다.
‘난 쓰레기야...... 잘 못 하는데 열심히 하지도 않아....... 다른 학생들은 날 한심하게 생각할 거야......교수님은 날 싫어할거야......끔찍해......’
매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5학기째 깨달았다. 교수님도 다른 학생들도 나한테 아무 관심이 없고, 내가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그 ‘열심히’만으로는 졸업할 수 없다는 걸, 그리고 신입생 OT때 교수님의 “2부 학생들, 공부 좀 열심 하세요”라는 말은 ‘열심히’에 방점을 둔 게 아니라 ‘좋은 연구 결과를 내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교수님은 출중하게 똑똑한 분이라 ‘열심히’하면 좋은 결과가 나왔던 분이고, 나는 ‘열심히’ 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실 일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어느 정도 해서 감을 잡아야 ‘잘’ 할 수 있게 된다. 요령도 있고, 센스도 있어야 잘 할 수 있다. 그건 매번 전력질주를 해서 힘을 다 빼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열심히’의 압박에 사로잡혀서 괜히 힘 빼지 말자.
사실 열심히 하나 안 하나 어차피 석사 논문은 쓰레기니까.......
친구가 매우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었다.
“그냥 졸업만 해”
입학 때는 열심히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여기도 참여하고 저기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목표를 ‘졸업’으로 삼게 되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졸업에 필요한가 아닌가? 여기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건 무엇인가? 그러면 모든 일에 힘을 쓰지 않게 되고,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게 된다. 그렇게 한정된 내 에너지를 꼭 필요한 것에 집중해서 졸업을 해낼 수 있다.
매사에 열심히 하는 학생 여러분,
욕심을 버리고 졸업만 합시다.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내가 얻는 게 무엇인지 잘 생각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