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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휘 Jul 30. 2022

채식하면 먹는 즐거움을 모르겠네요?

세상의 다양한 즐거움과 다양한 맛에 대하여

얼마 전, 외부 사람과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메뉴를 고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 식습관을 밝혔다. 으레히 나올 질문에 대답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이제는 채식 인구가 늘고 있는 덕분에 “저 고기 안 먹어요”라는 말을 하면 “아, 그렇군요”정도의 대답을 듣곤 한다. 요즘은 그래도 일단 인정하는 게 ‘세련된’ 대답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많이 퍼진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렇군요.” 다음, 잠깐 짧은 침묵 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아직 세련되어지 않았다. “삼겹살도 안 먹어요? 삼계탕은? 탕수육도? 치맥도 안해요?” 와, 이런 폭격은 오랜만인데, 하고 생각하면서 “네, 그것도 고기니까 안 먹죠 ^^”라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그 대답을 듣자 상대방이 나를 안타깝다는 듯한 눈빛으로 보며 하는 말이


“인생에 먹는 즐거움이 큰데......”


여기에 내가 세련되게 대답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랜만에 이런 질문을 당해선지 순간 울컥해서“저 미식가에요. 저는 중동 음식도 좋아하고, 동남아 음식도 잘 먹어요. 회사에서는 맛집 리스트를 만들어서 공유해주고 사람들 맛집 소개도 많이 해준답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고기를 안 먹으니 먹는 즐거움을 모를 것이다, 고기를 안 먹으니 식탐도 없을 것이다’라는 건 꽤 흔한 편견인데, 오랜만에 겪는 일이라 다시금 이 편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채식을 하니 건강하게만 먹을 것’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나는 먹는 즐거움에 진심인 사람이다.

동네 마트에서 허브라고는 바질과 파슬리만 팔 때 멀리까지 가서 이탈리안 허브믹스를 사서 야채 스프를 끓였고, 네팔 음식이라는 게 흔하지 않던 때 먹으러 다녔고, 코코넛 파우더라는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던 때(대략 20여년 전)부터 코코넛 쿠키를 집에서 구웠다. 한때는 매일 하루 2시간씩 요리 블로그를 구경하곤 했다.


왼쪽 2장은 채식 쿠킹클래스(경우의수)에서 먹었던 두부소보로덮밥과 비건 라멘, 오른쪽은 재료의산책에서 먹었던 한상차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채식을 하면 입맛이 섬세해지는 것 같다. 고기를 안 먹으니까 고기가 들어갔는지를 실제로 고기를 먹는 사람보다 더 예민하게 구별하고, 다채로운 채소, 과일, 허브의 향과 맛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채소는 색과 맛이 다 다르고, 다루는 방법도 다양하다. 양파처럼 조리법에 따라 맛이 많이 달라지는 채소도 있다. 그게 요리의 재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치맥과, 소주에 삼겹살이 곧 먹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아주 흔하다. 치맥도 삼겹살도 먹지 않는 나는 먹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정작 저 말을 하신 분은 양식을 잘 못 먹는다는 본인의 식습관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말이다. 


양식을 즐기지 않는다든가, 동남아 음식을 못 먹는다든가, 중동 음식을 평생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든가 하는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아무렇지 않게 인정받는다. 그런데 왜 고기를 안 먹으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왜 ‘고기=맛’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맛’의 영역이 얼마나 다양한데.


사실 입맛 뿐만이 아니다. 나는 술도 안 마시고 드라마도, 영화도 거의 보지 않는다. 십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사니?”라는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정말 재미있게 내 인생을 꾸려 가고 있는데. 나만큼 활발하게 이런 저런 일을 벌리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곰곰 생각하다가, 내게는 술이나 영화나 드라마 역시 ‘사회적’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 저것들을 즐기지 않을 때의 단점은 인생이 심심한 게 아니라, 사람들과 대화하며 어울릴 화제가 사라져서이다.  요컨대 사회적인 목적으로 필요하다. 사실 어렸을 때는 TV만이 중요한 매체였고 TV 채널도 몇 개 뿐이라 모두 같은 드라마, 같은 영화를 보던 시대였다. 그래서 당시 ‘개그콘서트’를 보지 않던 나는 대화에 낄 수 없어서 소외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다행히, 시대가 변하고 취향이 다채로워진 시대가 되었다. 각자가 각자의 취향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세상에는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많고, 맛있는 것도 많다. 그래, 사는 데는 정말 먹는 즐거움이 크다. 채식의 섬세하고 다채롭고 멋진 즐거움을 알게 되어 나의 세상은 더 풍성해졌다. 나는 오늘도 내 취향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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