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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휘 Jul 30. 2022

채식 모임을 나가기로 했다

내가 받아들여지는 공간의 소중함

올해 채식 관련 모임을 나가게 되었다. 사실 채식 모임은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었다. 새로운 채식 식당을 가보고 싶은데 여럿이서 가야 많이 시켜 먹을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SNS에서 가끔 부담없이 한 끼 정도 같이 하는 모임들을 보면 신청해볼까 고민도 했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나는 엄격히 실천하는 ‘비건’이 아니라서 혹시 그 모임에서 내가 또 공감하지 못하고 겉돌까 우려가 되기도 했다. ‘보통 동물권이나 환경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그런 곳에 올 테고 나는 거기에 별 관심이 없으니까 안 맞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점점 환경과 채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화장품이나 의류, 각종 제품들이 ‘비건’임을 내세우며 광고하는 시대가 오다니! 대체육 시장도 점점 커지고 있고, 슈퍼에서도 비건 식품을 만날 수 있게 되고. 이런 시대의 변화에 조금 마음도 편안해졌고, 그러던 중에 마침 올해 초 한살림에서 채식과 제로 웨이스트 관련 모임을 만든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한살림 조합원이다.) 이건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단번에 신청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임을 갔다. ‘나와 잘 맞을까?’ 걱정하면서.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오셨다. 채식에 막연한 관심이 있는 분, 건강을 위해 채식하시려는 분, 동물권과 환경에 관심이 있는 분, 그리고 채식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온 나. 비건을 해 보셨던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었다. 다양한 분들을 보며, 내가 채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다 환경과 동물권에 관심이 있을 거라는 편견이 있었구나 깨달았다. 나 자신이 그런 편견어린 시선을 받는 것에 진절머리내면서도, 나조차도 그런 편견에 가득했구나 싶었다.


그간 코로나로 모이기가 쉽지 않아 줌으로도 모이고, 날짜와 장소도 조절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활동가님의 노력으로 모임이 결국 구성되었다.

함께 모여서 채식 음식을 먹으며, 자기의 삶과 생각과 채식과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이 물건을 만든 생산자의 이야기를 듣고, 환경과 내 삶에 대해 생각한다.

여름의 보양식 콩국수와, 도토리묵 무침, 떡꼬치까지!


이 공간에서는 내가 받아들여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했다. 


여기서는 내가 ‘특이한 사람’도 ‘까다로운 사람’도, ‘특별히 배려해야 할 사람’도 아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지. 이곳에서는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받아들여지는 공간이란 얼마나 소중한지.     


내 브런치에서 가장 많이 호응을 얻은 길이 ‘김밥에 햄 좀 빼도 되죠?’(보려면 클릭) 라는 글이다. 내 평생 처음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만난 날. 같이 김밤의 햄을 빼며 느꼈던 그 행복감. 그것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서, 내 행동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기쁨이었다. 여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신 것을 보면, 다들 이 작은 행동에 얼마나 눈치를 보아 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설명 없이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누구에게든지 필요하다. 


내가 이 채식 모임에서 느낀 편안함은 그것이었다. 성분표를 보지 않아도 되는 음식을(나는 고기가 함유되어 있는지 성분표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함께 만들어 나누어 먹고, 서로의 이야기에 서로가 공감해주는, 실로 보통의 바깥 사회에서는 너무 경험하기 어려운 편안함.     


얼마 전에는 청년오랑에서 하는 ‘예비비건모임’이라는 것을 신청해서 가 보았다. 무려 8명이나 앉아 계셨다. 사회자가 참여자에게 왜 비건에 관심을 가지는지에 대해 각각 물어 보았는데, 지난 모임에서는 ‘동물에 대한 관심’ ‘환경에 대한 관심’ ‘건강을 위해서’라는 답변이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 포함 2명이 ‘입맛’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또 속으로 ‘비슷한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SNS의 발달로, 채식하는 분들의 피드에서 식단도 보고, 그분들의 생각도 보고 하지만, 그런 것과 진짜 사람을 대면으로 만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뭐랄까, 말로만 듣던 사람을 진짜로 만나서 “와! 진짜 있는 사람이었어!”라는 느낌이랄까? 사진을 보는 것과, 진짜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좀 우습지만, 그건 ‘진짜 있어! 진짜 내가 받아들여지는 공간이 실존하고 있어!’라는 느낌인 것 같다. 그간 계속 말해 왔지만, 나에게 채식은 사회적인 배제의 의미가 너무 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늘 나 자신을 설명해야 했고, 편견어린 시선에도 남이 기분 나쁘지 않게 웃어야 했다. 그렇기에 이 작은 모임이 나에겐 ‘받아들여짐’의 의미인 것이다. 나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이렇게 나의 세계는 확장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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