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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휘 Nov 20. 2022

함께 밥을 지어 먹는다는 것의 특별한 의미

식사를 짓는 일

밥을 함께 먹는 것처럼 특별한 일이 있을까? 그게 특별한 의미이기에 데이트할 때는 꼭 식사를 같이 하고, 특별한 날에는 꼭 좋은 곳에서 외식을 하고, 단합을 위해서 회식을 하고, 또는 ‘밥이라도 편하게 먹자’며 회식을 싫어하기도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을 하며 밥을 먹는다.

     

나는 사실 맛집에 굉장히 진심인 사람이지만, 정작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굉장히 대충 먹는 편이다.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게 어쩜 이렇게 귀찮은지. 재료 손질-요리-설거지까지 짧아야 한 시간, 길면 세 시간이 걸리는 그게 너무 힘들다. 내 몸에 좋은 것을 넣어 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힘겨운 작업을 자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요리책도 보고, 요리 교실도 가끔 가고, 좋은 식재료 쇼핑도 종종 한다. 이번에 전에 갔던 보틀라운지(@bottle_factory)에서 「손으로 짓는 식사」라는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해서 가 보았다.


이 프로그램은 ‘오늘의 분리수거’(@recycle.today)라는 회사의 지원으로 마련된 프로그램인데, 총 3회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룻을 만들고, 젓가락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요리를 해서 자기가 만든 그릇에 담고 자기가 만든 젓가락으로 먹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앞의 그릇 만들기과 젓가락 만들기에는 참여하지 못 하고, 「손으로 짓는 식사」 프로그램에만 참여했다.      


"버리고, 새로 만들어내고, 다시 구매하는 일이 너무 쉬워진 요즘. 물건을 살 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고민하거나,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그럼 삶의 곳곳이 이런 물건들로 채워져 풍요로워집니다. 
‘손으로 짓는 식사’는 삶의 곳곳이 이런 물건들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획했어요. 오래 사용해도 고장나지 않고 건재한 물건, 손때가 묻어 멋스럽게 변한 물건, 함께 한 시간이 쌓여 보기만 해도 지난 추억이 떠오르는 물건. 주고받은 지혜와 손으로 지은 물건이 함께 한 분들의 일상에 오래오래 함께하길 바라며."
(@bottle_factory)


요리는 ‘지구커리’(@jigucurry)의 구슬 요리사님이 가르쳐 주셨는데, 제철 채소를 사용해서 뿌리채소솥밥, 된장채소국, 두부표고고추장범벅, 채소구이, 단감샐러드 이렇게 무려 5가지의 요리를 만드는 엄청난 한상차림이었다. 

모두 비건 음식이었고 한살림 식품 등 국산 좋은 식재료로 만들어졌다. 

 

가지런히 손질되어 준비된 채소들


처음에 레시피 종이를 보고 ‘설마 이걸 다 만든다고?’ 싶었지만 1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뚝딱뚝딱 재료 손질을 하니 척척척 요리가 이루어졌다.


다같이 뚝딱뚝딱하니 만들 수 있었던 요리들


혼자라면 이렇게 못 했을 건데, 여럿이서 하니까 이 많은 요리를 다 해서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요리사님이 채소 밑손질을 다 해두신 덕이 컸다.)     


막 지은 밥과 국, 제철 채소가 가득한 비건 식사. 속이 참 따뜻해지는 식사였다. 열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지어 나누어 먹는 특별한 경험. 그것도 밥과 국이라는 우리의 기본 식사라서 더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름 모를, 낯선 외국 요리였다면 물론 즐겁기는 했겠지만 이렇게 따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식사라는 느낌보다는 요리교실이라는 느낌이 더 들었겠지. 그렇지만 자주 보는 채소들과, 쉽게 접할 수 있는(하지만 사실은 은근 먹기 힘든) 식사를 지어 먹으니, 일하다 와서 잔뜩 곤두섰던 마음이 풀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넘치게 지어서 다같이 먹고도 남아서 다들 남은 음식을 싸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요리를 하면서, 내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무척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성미가 급하다. 채소를 채써는데, 나는 ‘빨리 이걸 다 채썬다’에만 집중해서 빨리 채써려고 하다 보니 옆에 채소가 튀기도 하고 채썬 모양도 들쭉날쭉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분은 차분하게 차곡차곡 채를 써셔서, 채썬 모양이 첨 정갈했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빨리 채써는 것도 물론 아닌데 말이다. 아, 내가 참 성미가 급하구나 싶었다. 


밥을 먹을 때도 나는 ‘빨리 먹는다!’에 집중하는데, 한 분은 테이블 매트까지 챙겨 오셔서 예쁘게 놓고 사진을 찍고 드셨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달까.

내가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가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구나, 내 마음에 여유가 없구나, 그래서 집에서 밥을 잘 안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확실히 이 프로그램은 요리교실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었다. 요리를 배우는 게 아니라 밥을 함께 지어 먹는 데 중점을 두는 시간이었고, 그래서 특별한 경험이었다. 함께 식사를 만들어 먹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다. 밥을 지어 먹는 것에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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