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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의 육아 전쟁

하늬와 쌍둥이

by 별리

#1. 첫 조카 하늬


내가 이준이와 이현이를 만나 기 전, 작년 10월에 첫 조카가 생겼다.

여동생의 딸인 하늬.


하늬는 엄마의 품속에서 열 달을 꼬박 채우고 건강하게 태어나 우리 집에서도 하늬의 친가 쪽에서도 모두 첫 손녀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예쁨을 받으며 자란 하늬는 지금 이준, 이현이의 첫 조카 누나!


둥이들이 50일째 되는 날, 여동생이 하늬와 함께 놀러 왔고 오랜만에 하늬를 만날 수 있었다.

하늬는 뽀얗고 하얀 피부가 눈에 띄고 특히 코가 높다. 코가 높은 아기가 별로 없다는데 하늬는 태어났을 때부터 코가 높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작고 예쁜 얼굴에 길쭉한 팔과 다리까지! 아직 아기인데 긴 기럭지때문인지 어린이가 된 것 같은 하늬.


"하늬는 다음에 모델해야겠다"

나는 하늬를 보며 말했다.


하늬는 혼자서 젖병을 잡고 우유를 먹을 수도 있었고, 조금씩 기어 다니기 시작해 여기저기 활발히 움직였다. 호기심도 많아 이것저것 손에 닿는 대로 빨기도 해서 위험해 보이는 물건들을 하늬에게 닿지 않도록 열심히 치워야 했다.

우리 집에 3일 정도 있었는데, 초반에는 괜찮았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떼가 늘어 여동생이 매우 힘들어했고 그 당시의 전쟁과 같았지만 재미있었던 시간들을 담아보려고 한다.


#2. 1차 육아전쟁. 네 명의 아기들과의 시간


하늬뿐 아니라 동네 가까이 사는 친척 언니와 언니의 딸 은채도 놀러 왔다.

이렇게 집에는 엄마, 나, 여동생, 친척 언니까지 어른 네 명과 태어난 지 50일 된 이준, 이현, 7개월 하늬, 14개월 은채까지 아기 네 명이 있게 되었다. 복작복작했던 단 몇 시간의 시간.


요리 솜씨가 좋은 엄마는 이날 맛있는 미나리 부침개를 만들어주었고, 우리는 부침개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아기들을 보아야 했기 때문에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있을 순 없었지만 말이다.


하늬는 앉아서 엉덩이를 움직여 자리 이동을 했고, 은채는 잘 걸어 다녀서 어른들의 손이 더 많이 갔다. 이준이와 이현이는 울지 않는다면 누워있거나 어른들의 품에 안겨있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공동육아의 느낌도 나고 서로가 다른 아기들을 보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사진 촬영!

쌍둥이들이 세상에 태어난 50일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우연히 비슷한 종류의 모자도 있어 아기들 머리에 씌워주었고 이준이와 이현이는 옷을 맞춰 입혔다.

네 명의 아기를 한 공간에 모여 두려고 하니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1차 전쟁!


쿠션 위에 이준이와 이현이를 각각 눕히고 그 옆으로 하늬와 은채가 앉을 수 있도록 했는데, 하늬는 이준이를 만지려 했고 은채는 다른 곳으로 이탈하고 싶어 했다. 복잡한 상황에 쌍둥이들은 울기 시작했다.

한 명을 진정시켜 눕히면 다른 한 명이 울기 시작하고, 그 상황에서 어른 한 사람은 카메라 버튼을 눌러 빠르게 사진을 찍었다. 사진 촬영의 배경음악은 이준이와 이현이의 울음소리가 된 것 같았다.


50일 기념이라는 취지 때문이었는지, 쌍둥이 모두가 잘 나오기를 바란 나는 아기들을 진정시키고 사진 촬영을 여러 번 했지만, 그 시간은 매우 짧았다. 아기들의 울음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돌이켜보면 사진 촬영을 한 시간은 30분도 안 되는 시간이 었는데, 상황이 만들어 내는 복잡함으로 인해 굉장히 오랜 시간 촬영을 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힘들어서였으리라.

욕심을 버리고 사진 촬영이라는 시간을 끝내니 평화는 금방 찾아왔다. 둥이들이라도 울지 않고 차분해지니 하늬와 은채의 귀여운 어리광들은 전쟁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30분 남짓의 짧은 전쟁이 준 결과물은 꽤 재미있었다. 예쁜 사진도 있었고 그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녹여낸 듯한 사진들도 여러 장.

이는 훗날 아기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할 것임이 분명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


누나들과 함께한 50일 기념촬영


#3. 2차 육아전쟁. 머리카락과의 사투


하늬가 온 지 이튿날에는 쌍둥이들의 첫 이발이 있었다. 여동생의 미용사 친구가 놀러 온 김에 아기들의 머리를 이발해주기로 한 것이다. 생후 51일째 아기들! 아직 머리숱이 없을 수도 있는 시기지만 우리 두 명의 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짙은 눈썹과 머리숱을 자랑했기 때문에 이 당시 머리카락은 꽤 많이 자란 상태였다.


아기들을 위해 아직 사용하지 않은 새 이발기를 준비한 미용사 친구.

어디에서 어떻게 잘라야 할까 고민하다가 무릎을 세워 그 위에 비닐을 덮고 위에 아기를 앉히듯 안았다. 그 상태로 아기의 머리를 미는 일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미용사라는 직업을 가진 친구답게 안정적으로 아기를 잡고 머리카락을 밀기 시작했다. 방향에 따라 아기를 다르게 안기도 하면서.


다행히 이준이와 이현이는 울지 않았다.

처음 겪는 상황에 놀랐는지 오히려 가만히 있었고, 처음에만 살짝 울먹임을 보이다가 말았다.

먼저 이준이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 배냇머리가 잘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이상하기도 했고 너무 많이 자르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적당히, 아기들에게 어울리도록 잘 잘렸다.


이준이의 이발이 끝나고 다음으로 할 일은 목욕시키기였다. 짧은 머리카락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고, 아기 몸에도 묻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는 일은 목욕시키기 뿐. 엄마는 이준이를 씻겼으며 나와 미용사 친구는 이준이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여동생은 다른 아기를 보고.


머리카락은 아무리 치워도 또 나왔고 또 나왔다. 결국 이현이까지 이발을 마친뒤에 남은 정리를 하기로 하고 2차 이발 시작. 이현이는 이준이보다 머리숱이 훨씬 더 많아 남겨진 머리카락도 두배.


"이현이는 진짜 머리숱이 많아요. 태어난 지 50일밖에 안되었는데!"


미용사 친구는 이현이의 머리카락들을 밀며 말했다.


이준이가 욕실에서 나오고, 이현이가 욕실 행.

똑같은 일을 두 번 반복하고 나서 조금씩 상황은 정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어디서 나왔는지 짧은 머리카락들은 계속 발견되었고, 심지어 목욕을 하고 나온 아기들의 몸에서도 머리카락은 나왔다.


그리고 그 원인을 발견했다.

나와 엄마 옷에 묻어 있던 머리카락들이 아기들에게 옮겨간 것이다.

나는 목욕을 하고 나온 아기들에게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혀주면서, 엄마는 아기들을 목욕을 시키면서 옷에 있던 머리카락을 아기들에게 옮긴 것.

결국 아기들은 한 번 더 목욕을 해야 했다. 총 두 번의 목욕. 특히 이현이는 목욕 횟수가 한 번 더 추가돼 세 번의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머리 사이사이에 잘린 짧은 머리카락들이 섞여있었고 여러 번 씻어내도 떨어지는데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아기들은 깔끔 해진 헤어스타일이 갖게 되면서 외모도 한껏 상승했으나,

집안 곳곳엔 짧은 머리카락들이 숨을 곳을 찾아 들어가 있었고 이것들을 정리하느라 진땀을 뺀 건 어른들의 몫이었다.


머리카락과의 사투를 벌이긴 했지만 아직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미용실에 방문하기보다 집에서 아기들의 생애 첫 이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아기들의 생애 첫 이발


아기들의 잘린 배냇 머리카락은 지퍼백에 넣어 두었는데, 이는 매우 감성적인 엄마의 행동이었다. 모든 머리카락이 잘린 것도 아니고, 언젠가 버려질 머리카락인데 배냇 머리카락이란 이유로 조금은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기들의 모든 것은 소중하기에.


#4. 3차 육아전쟁. 울음바다


이발이 있고 그다음 날, 이날은 하늬와 여동생이 우리 집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었다.

동생은 친구들을 만난다며 하늬와 나갔다가 오후 늦게나 되어 돌아왔다. 이때부터 아기들과의 3차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늬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에서 울었다고 했고, 그 원인은 대변을 본 것. 대변을 치우고 나서도 하늬는 떼를 부리며 많이 울었다. 이 영향이었는지 쌍둥이들도 돌아가며 눈물을 보였다.

'엄마, 나, 여동생이 있는 어른 팀' 대 '하늬, 이준, 이현이가 있는 아기팀' 이 달래고 달래지고, 잠들고 잠에서 깨고의 대결을 펼치는 것만 같았다.

잘 놀다가도 어느 순간 울며 안아달라고 보채는 아기들. 결국 목욕을 빨리 시키고 재우기로 했다.

그러나 목욕을 시킨 그 순간에만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고 전쟁을 계속되었다.


7시쯤. 어른팀으로 한 명의 팀원이 합류. 바로 남편이 귀가한 것이다. 이로 인해 조금의 여유가 생겼으며, 아기들은 한 명씩 잠이 들었다.


사실 이 3차 전쟁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아기를 거의 안고 있었으며 다음날 평소보다도 더 아픈 몸이 그날의 힘듦을 대변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세명의 아기들과 정신없는 3일의 시간을 보냈지만, 함께 하는 육아는 나름 재미와 추억, 아쉬움이 동반된 시간이었다. 동생과 하늬가 돌아간 그 날 오후에는 복작복작함이 사라진, 왠지 모를 조용함이 집안에 맴도는 기분이었으니.

지금은 너무 어려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겠지만, 훗날 세 아기가 함께했던 당시의 사진들을 보며 할머니, 엄마, 이모와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알아주길 바란다.


"자주 놀러 와 이쁜 조카 하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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