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예방 접종이 몇 개월 밀렸어요.”
집 앞 소아과 의사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
딸아이의 예방접종을 놓쳤기 때문이다.
그 덕에 딸은 양팔에 주사 두 방을 맞고 목청껏 울음을 터뜨렸다.
‘정신없어도 예방접종은 기억했어야 했는데….’
자책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요즘 참 정신없이 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아침엔 독서와 운동을 짧게 하고, 막히는 길을 뚫고 회사로 향한다.
밀린 메일을 처리하고 팀원 업무를 점검하면 오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점심을 먹고 나면 블로그 글을 쓰며 오후를 맞는다.
프로젝트 회의와 컨펌을 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
퇴근 후엔 바로 육아 출근이다.
목욕시키고, 놀아주고, 재우는 일까지 하루의 마지막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주말엔 가족 행사, 지인 결혼식, 아내의 꽃집 돕기까지 더해지니
정신이 쉴 틈이 없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써볼까?’
주변의 일들에 휩쓸려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정작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일기를 꺼내보기로 했다.
일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꾸준한 자기 관찰은 자기 확신을 만드는 힘이 된다.
그리고 자기 확신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이뤄내는 동력이 된다.
생각해 보면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자기 관찰이 필요한 시대다.
기술과 사회 구조가 초 단위로 변하고,
대가족은 사라지고 개인가족의 시대가 되었다.
국가조차도 세계화에서 파편화로, 협력보다 생존을 택한다.
하루에도 수십 기가바이트의 정보가 쏟아지고,
메신저 알림이 끊임없이 울리며
고요히 ‘나’를 바라볼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가장 중요한 만남은 ‘나 자신과의 만남’이다.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약 1,900만 달러(약 250억 원)에 낙찰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세계 최고의 투자자와의 만남이 그만큼 가치 있다고 여겨진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과의 만남은 그보다 더 값지다.
자기 자신을 만나지 못하면,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바람 부는 대로 방향 없이 흘러가 버린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왜 가야 하지?’
‘내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나를 관찰하는 시간, 즉 일기가 필요하다.
'전쟁과 평화'의 저자 레오 톨스토이는 평생 일기를 썼다.
자신의 성향, 습관, 인간관계, 사명감까지 꾸준히 기록했다.
그는 아내가 몰래 자신의 일기를 읽는 걸 알고
‘아내를 위한 일기’와 ‘자신을 위한 일기’를 따로 쓰기 시작했다.
이후 ‘실패일지’, ‘훈육일지’, ‘심심풀이 일지’ 등으로 확장하며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구했다.
그 결과, 그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작가로 남았다.
결국 자기 관찰은 인생을 써 내려가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인생의 작가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흔들리지 않으려면
매일 나를 만나야 한다.
딸의 예방접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갤럭시탭을 펼쳤다.
일기 앱을 여니 마지막 기록이 7월이었다.
요즘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만 썼지,
정작 ‘나 자신을 위한 글’은 쓰지 못했다.
오늘 밤엔 다시 일기를 쓸 예정이다.
오늘 하루 느낀 감정과 생각을 조용히 써 내려가며
오랜만에 나 자신과의 만남을 가지려 한다.
그 시간은, 워렌 버핏과의 점심보다 더 값진 시간일 것이다.
- 별미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