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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Feb 21. 2024

아저씨 탐구하기 (4)

아저씨! 이렇게 해보세요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수다를 즐긴다.

친구와 동네를 몇 바퀴나 돌고도 수다 끝자락은 아직 멀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웬 말은 그렇게나 많은 건지.

식탁에 차려진 음식보다 수다가 더 진수성찬이다.


하루종일 동행한  친구와 그토록 말을 많이 했으면 말샘이 마를 만도 하다.

그럼에도 집에 와서 또 전화선을 잇는다.

남자들은 도저히 이해불가다.


끊어질 줄 모르는 아줌마의 수다줄을 아저씨는 뚝 끊어버리고 싶다.

어린 시절 짓궂게 여자애들 고무줄을 끊어버리고 도망가듯 그렇게 

말 줄을 베어내고 싶다.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간 집안 대전이 일어날 것이기에 참을 뿐이다.

여자는 2만 마디 이상을 풀어내야 속이 편하다.

그에 비해 남자는 7천 마디 하면 뇌에서 그만, 그만 차단막이 내려온다. 

이러니 아저씨는 아줌마의 수북한 수다잔치에 질리고 만다.


아저씨라고 다 말수가 적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줌마 보다 더 말이 많은 아저씨도 있다.

그야말로 왕수다쟁이다.


수다쟁이 아저씨를 보고 있으면 과묵한 아줌마들은 말한다.

"체신머리 없게 남자가 저게 뭐야. 점잖지 못하게." 

남자가 말이 많아지는 건 체신머리와 연결되는 풍토다. 


그렇다 보니 아저씨들은 일방적으로 듣는 쪽이다.

마누라를 화자로 내세우고 아저씨는 청자로 굳어있다.

아무리 그래도 일방통행은 단조롭다.


말도 출렁다리를 타고 왕래가 있어야 한다.

맞장구가 있어야 말 맛이 찰지다.

우선 딱딱하게 듣기만 하거나 못 들은 척하면 재미가 없다.

부부사이가 좋아지려면 아저씨의 리액션이 아주 중요하다.


마누라가 뭐라 뭐라  말을 했다고 치자.

그럼 눈만 꿈벅거리지 말고 손뼉을 치자.

손뼉을 친다고 해서 박수를 치라는 얘기가 아니다.

딱 한 번만 크게 쳐야 한다.


손뼉을 칠 때도 꼿꼿하게  경직된 자세는 흥미가 없다.

뒤로 넘어갈 것처럼, 앞으로 기울 것처럼 기우뚱한 모션을 취하면 더 효과적이다.

왼손을 아래로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가 `똭` 이게 정답이다.

소통이란 것이 이런 작은 수고로움이 보태질 때 더욱더 진하게 스며든다. 


맞아, 바로 그거야 그거.

이런 뉘앙스로 쳐야 한다.

박수와는 다른 화답의 태도로 말이다.

박수는 콘서트장에서나 신나게 치고 마누라에겐  공감의 손뼉을 쳐주자. 

그것은 마누라말에 고소한 참기름 역할을 한다.


이 한 번의 큰 손뼉에 아저씨의 공감 능력이 살아나는 순간이다.

매번 아줌마들의 불만은  아저씨의 공감부재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부부싸움의 발단은 공감 부재에서 작동한다.


이왕 사는 거 재밌게 살아야 하고 웃으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 아저씨들은 표현력이 절대 부족하다.

사랑한다는 말도 쑥스럽다고 평생 속에만 꽁꽁 싸매둔다.


그거 묵혀둬 봐야 아무 소용없다.

부동산처럼 가격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이담에 국 끓여 먹을 일도 없다.

그렇다면 어째야 할까.

사랑한다는 말을 죽어도 못하겠다면 방법은 또 있다.

아줌마가 한창 말을 하고 있을 때 추임새를 활용해 본다.


정말?

진짜?

헐~

웬일이니?

대~박.


이 다섯 마디의 말만 거든다면  그날은 그야말로 대~박 나는 날이다.

마누라는 맨난 소통부재의 남편이 못마땅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도대체 공감능력 이라곤 코딱지만큼도 없던 목석이었는데 `어디 가서 배워왔지?`

당장 의아해할 것이다.


 이 말들은 새롭게 아저씨를 바라보는 기폭제가 된다.

길에서 만나면 남인줄 알던 남편이 변했다고 아줌마도 손뼉을 쳐줄 테다.

그리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나가서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반찬거리를 

넘치도록 사들고 올 것이다.


말은 이처럼 공감과 맞박자가 중요하다.

세상에 말 몇 마디로 이렇게 대우를 받는데 이것도 못해주면,

그건 가정의 화목과 단결을 포기하는 거다.

마누라가 뭐라고 말을 하면 우선 이렇게 공감부터 해보자.


엊그제 먹다만 엿처럼 딱딱하게 굳어만 있지 말 것이고.

그저께 씹다 붙여놓은 껌처럼 뚝뚝하지 말고. 

아무 반응 없이 졸린 눈으로 먼 산만 쳐다보지 말자.

아저씨의 언행이 변할 때  아줌마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디서 저런 남자를 좋아할까 생각할 때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는 작달막한 키에 별 볼 일 없이 생겼다.

그래도 어떤 여자에겐 그 사람이 최고다.


왜 그럴까.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포커스를 제대로 맞췄기 때문이다.

매사 자상하고 공감해 주고 입장 바꿔 생각해 주는데 그깐 키든 인물이든 뭔 상관이랴.

몸에 맞는 옷.

내 눈에 맞춘 안경이 그녀로 하여금 그 남자를 최고의 남자로 대우하게 된다.


제아무리 멋지고 값진 안경이라도 내 눈에 맞아야 한다.

제눈의 안경.

이 말이 명언이다. 


그것은 어떤 날 예식장에서 들은 말과 일맥상통한다.

키가 작은 남자와 인물이 반반한 여자가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하객 중에 누군가가  소곤소곤 말했다. 

"에구,  신랑이 키가 작네."

그 말에 옆에 있던 아줌마가 "키 작은 게 무슨 상관이야. 30분만 참으면 돼."


결혼식을 올리는 시간이 30분이고, 그 시간만 참으면 만사 OK란다.

남에게 잘 보여봐야 아무짝에 소용없다는 얘기다.

실속의 중요성.

여기서 말하는 실속은  아저씨의 공감능력이다.


가시버시(남편과 아내)가 삐거덕 거리지 않고 살아가려면,

우선 소통이 잘 되어야 한다.

인물이 반반한 여자는 소통이 잘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작은 남자를 선택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저씨들이여!

여자들은 분위기에 살고 분위기에 끔뻑 죽는다.

언제 어디서나 분위기를 살려보려는 노력도 상당히 중요하다.

바스락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여자의 생리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아저씨의 말 한마디에도 아줌마는 태풍을 맞는다.


태풍 맞은 아줌마에게 어느 날 아저씨는 사과의 의미로 꽃다발을 사들고  온다.

그것은 서리 맞은 꽃처럼 의미가 없다.

아줌마의 마음속은 이미 냉동창고인데 창고부터 녹일 생각은 않고 뭔 

엉뚱하게 꽃을 사 온단 말인가. 


들지도 못할 꽃다발을 사들고 들어갔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아줌마는 이미 향기보다 냄새(음식냄새)에 익숙한 사람이다.

"아휴! 생전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왜."

그럴 돈 있으면 차라리 현금이 낫다는 아줌마의 허연 눈과 맞닥뜨릴 수 있다.


그날그날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아저씨가 변해야 된다.

자세도 고쳐보고 고개도 끄덕여보고.

부디 또 반복해 보고 또 해보고 그것을 생활화해 보자.


아저씨가 온전히 가정의 소통대장으로 등극하는 날,

그날까지 아저씨를 응원한다. 

세상 모든 아저씨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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