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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Feb 14. 2024

아저씨 탐구하기(3)

아재는 못 말려

아저씨는 아내와 외출을 하기 전부터  벌써 속에선 열불이 난다.

도대체 다 준비했다고 하고선 뭘 하는지 계속 밖으로 나올 기미가 없다.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짓밟는 걸로  화풀이를 한다. 


"아직도 멀었어?"

밖에서 지키고 섰다가 들어와 보니 아내는 아직도 꾸물거리고 있다.

목도리도 옷도 이것저것 뒤적거리고만 있다.

거울을 들었다 놨다  뒤로 옆으로 비춰보며 인천 공항 검색대 흉내를 낸다.


생각 같아선 저 꾸물 이를 내버려 두고 쌩~ 차를 몰고 나가버리고 싶다.

그게 안되니 속불을 끄느라 얼굴이 푸르죽죽하다.

여자들은 외출 한 번 하려면 챙길 것이 많다.

남자들이 이해 못 하는 꾸물거릴 이유가 많은 거다. 


남자들이 볼 땐 속 터지고 복장 터지고 오줌보 터지는 이 느림이 

여자에겐 당연한 수순이다.

화장을 해야 하고 옷을 골라야 하고 하다못해 창문이 열렸나 닫혔나  

점검해야 하니 느릴 수밖에 없다. 


핸드백 속엔 또 뭐가 그리도 많은지.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밖으로 나서게 되니 참말로 속이 터진다.

같은 여자라도 속 터지는 건 맞다.


아저씨는 세안도 쓱싹, 뚝딱 금방 끝난다.

물론 수염은 제초해야 하지만. 

옷을 걸쳐 입고 구두만 신으면 외출 준비 끝이다.

이것저것 주렁주렁 들고 갈 핸드백도 필요 없고  장독 뚜껑이 열렸는지,

고추장 독이 깨졌는지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 


약 200만 년 전 인류는 직립보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렵채취인으로 남자들은 사냥에 나서게 된다.

사냥감을 발견하면 그 목표물을 향해 끈질기게 쫓아가야만 한다.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거나 얼버무리면 토끼도 고라니도 멧돼지도 다 놓치게 된다. 


이렇게 목표지향적이 되다 보니 오로지 한 곳, 원하는 곳에만 

눈길, 맘길이 열리게 되었다.

어떻든지 목표를 놓치지 않으려고 돌진했던 남자의 생존력이다.

지금은 사냥을 향한 집념은 아닐지라도 목표지향성은 아직도 유효하다.


마켓을 가서도 남자는 사려던 물건을 향해 뜸을 들이지 않는다. 

샀다면 얼른 나가고 싶어 한다.

아내가 이것도 보고 저것도 만져보면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으면 화가 난다.

딱히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건만 굳이 거기서 꾸물댈 이유가 없는 거다.


남자가 주로 동물을 사냥감으로 짚었다면 여자는 식물성 먹거리들을 확보했다.

어느 곳에 어떤 열매나 견과류가 많은지 사방을 잘 살펴봐야 했으며 더듬기도 했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먹거리가 풍성한 장소를 기억해 두는 습성이 자연스럽게 몸에 뱄다.

이렇게 방향지향성이 되다 보니 주변을 더듬거리고 살피는 습관으로 발전한 거다.


또한 어떤 시기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여자들에게 탁월하다.

김장철에 소금을 미리 준비한다든지 젓갈이 나오는 철에 젓갈을 채워둔다는지.

채워두는 본능도 남자보다는 훨씬 앞서간다. 


한마디로 남자는 집중력, 추진력, 성취욕이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여자는 조심성, 준비성, 다양성이 장점이다.

서로 이런 점이 다르다 보니 외출이나 쇼핑에서도 각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언젠가 우리 집 아저씨와 길을 가다가  flea market을 만났다.

플리마켓 자판에는 이쁘고 앙증맞은 물건들이 그득하다.

눈이 뱅뱅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집 꾸미는 걸 좋아하다 보니 아기자기한 소품에 관심이 많다.


기어코 저것들을 꼭 사가리라.

하나하나 수제로 만들었다는 손수건, 반지, 팔찌, 머리띠, 장식품이나 인테리어 용품이 참 많았다.

만져보고 뒤집어보고 찔러보고.


이걸 들으면 저게 이쁘고 저걸 들면 다른 게 또 더 이쁘다.

내 떡 보다 남의 떡이 더 큼직해 보인다.

만지작 거리다가 겨우 손수건 한 장을 골랐다.

그런 후 앙증맞은 접시를 또 고르고 있는데 뒤에서 폭풍 같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머쓱하게 지켜보던 남자의 인내심이 바닥났다는 표시다.

덩치 남자가 소품이 늘어진  좌판 뒤에서 맥없이 서있자니 이건 아니다 싶은 거다.

아낸지 마누란지 꾸물 인지 정말 속 터지게 한다.

한마디로 쪽팔린다는 표현이 맞다.


접시만 사고  얼른 가야지 하면서 접시 밑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남자의 우악진 손이 내 팔을 낚아챘다.

"그만 가. 이제 그만."

순식간에 경찰에게 연행되듯 반 강제로 팔을 휘감긴 채 나는 끌려갔다.


"이거 놔 계산은 하고 가야지. 계산은."

스르르 팔을 풀고 그는 냅다  넓은 보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겨우 계산을 치르고 그 뒤를 따라 뛰면서 "같이 가, 같이 가."를 연발했다.


"같이 가."는 허공에 날리고 증기기관차처럼 그의 등짝만 씩씩거렸다.

지금은 수렵시대가 아님에도.

`조금 기다려주면 무좀이라도 걸린대?`

덩치와 남자체면은 역시 찰떡궁합이다.


요번 설에는 결혼 후 처음으로 선로에서 이탈했다.

설이나 추석에는 으레 가야 하는 시댁엘 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2박 3일 가족여행을 실행했다.


목적지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대천해수욕장이다.

그 바다 바로 앞에 자리한 호텔에 짐을 풀고 바다를 향해 "야호"를 외쳤다.

생은 끝없이 도전해야 하고 체험해야 한다는 진리가 "야호" 속에 넉넉히 채워졌다.


이튿날 바닷가에 설치된 레일 바이크를 탈 수 있었다. 

바이크를 타고 돌아오다가  짚라인을 발견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저것도 타보고 가자."

전혀 생각지도 않던 엄마의 뚝심에 놀라던 딸도 찬성표를 던졌다. 


안전 장비를 주렁주렁 몸에 걸치고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무섭기는 했다.

높은 단 위에 올라서니 단두대를 딛는 기분이 이럴까 싶다. 

내 뒤에 섰던  50대로 보이는 부부가 우리 옆에 자리 잡았다. 


출발 전에  아줌마는 단두대 앞에서 갑자기  변심했다.

줄행랑을 치면서 "나 무서워 안 할래."

그 모습을 본 아저씨.

"아휴, 뭐가 무섭다고 그래. 얼른 와." 손짓을 하면서 저 멀리 떨어진 아내를 불러댔다.

"못 가 그냥 혼자 가."


"어휴, 바보야 뭐가 무서워 빨리 와."

"그냥 혼자 가. 나 안 탈래."

그 아저씨의 아내는  못 타겠다고 한쪽 구석에서 몸을 사렸다.

그때 아저씨는 화가 잔뜩 났다.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빨리 와. 당신 때문에 지금 다 기다리고 있잖아."

"안 탄다니까."

"이 휴, 저 여자가 오늘따라 왜 그래. 빨리 와 얼른."

옆에 있던 우리 모녀도 그 옆에 있던 대기자도 장비를 채워주는 직원도 모두 

한 눈으로 아줌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 무서워 하나도. 빨리 와."

여전히 아줌마는 주춤거리고 있었다.

시간은 지체되고  아줌마는  미적거리고.


결국 아저씨는  소리를 확 질러대고 말았다.

"이런 빙신. 그럴래면 애초부터 안 탄다고 하지 뭐 하러 여기까지 와서 안 탄대."

씩, 씩, 씩.

아줌마는 결국 아저씨의 무서운 일갈에  살금살금 단두대에 올랐다.


아줌마는 비명을 지르며 줄을 타고 흘러갔다.

다 타고 종착점에 서서 아저씨는 또 한마디 했다.

"오래는 살고 싶어서. 무섭다고 발버둥이네."


미적거리던 아내도 속 터지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아저씨는 그때 이랬어야 했다.

"안 타면 나 혼자 갈게."

그냥 쿨하게 혼자 가는 것이 더 신사답지 않았을까?


굳이 무섭다는 사람을 태워서 데려가야만 아저씨의 위신이 서는 것인지.

아저씨의 다른 면을 또 하나 발견한 셈이다.

아저씨들의 공통점은  늘 아내보다 우위를 차지하려는 심리다.

그건 아마도 아저씨의 열성인자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짚라인 앞에서 아저씨가 그랬듯이 아저씬 아내가 못마땅할 때 `바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건 진짜 친한 사이에도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다.

친근함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지만  너무 남용하면 정말 아내가 `바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다 진짜 바보가 되면 그래도 같이 살려나?




 


               대천해수욕장에서 무슨 뚝심인지 짚라인을 타보다. (딸은 얼굴 비공개)

               짚라인 종착역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한 장당 6.000원씩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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