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는 억울해
인간에겐 23쌍의 염색체가 있다.
그중 마지막 1쌍은 성염색체다.
이 성염색체가 태아의 성별을 결정한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할 때 X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난자와 만나면 여자 아이가 된다.
y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난자와 만나게 되면 남자아이로 결정된다.
정자의 절반은 X염색체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y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y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X염색체를 가진 정자보다 쉽게 난자와 결합한다.
그러므로 수정 시에는 남녀의 비율이 130: 100이다.
그렇지만 유전자의 결함이나 자연유산의 위험이 남아의 경우가 더 높다.
따라서 출생 시 남녀의 비율은 106: 100 정도가 된다.
그만큼 유전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약한 성이라 하겠다.
수정된 순간부터 여아는 남아보다 더 많이 살아남는다.
신체적이나 정신적 결함도 남아보다 여아가 적다.
남성의 취약성은 y염색체에 기인한다.
남성의 y염색체는 X염색체보다 길이가 훨씬 짧다.
그만큼 유전인자가 위치할 자리가 X염색체보다 적다.
남성의 경우 X염색체의 유전적 이상은 태아에게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할아버지 보다 할머니들이 더 오래 산다.
경로당을 가보거나 농촌에 가보면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들이 훨씬 많다.
이처럼 두 개의 X염색체는 여자들에게 있어 여분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남녀 염색체에 관한 얘기로 서두가 길어졌다.
염색체를 길게 언급한 것은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여자와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다른 길을 걸었다.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을 학술적 논증으로 풀어냈다.
이런 취약한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났어도 남자들은 기골은 장대하고 힘은 장사다.
넉넉한 근육과 굵은 뼈는 감히 여자들이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자랑한다.
마음도 심대하여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대범하다.
간혹 그렇지 않은 남자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아저씨는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이자 한 배의 선장이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간 허리를 차지하고 일생에서 제일 긴 시간을 점유하는 시기다.
수명연장으로 아저씨의 생은 더 길어졌다.
적어도 60대까지는 아저씨라 불러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이참에 아줌마도 연장)
그건 아줌마의 위치와 같다.
둘이 한 가정을 이루고 일구어 나간다는 점도 같다.
다만 대개 키가 아줌마보다 크거나 덩치가 크다는 점은 다르다.
아저씨는 `욱`의 주인공이다.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욱`부터 치솟는 걸 보면 역시 염색체 결함이 크다.
아내가 조금만 잔소리를 할라치면 속에서 불기둥이 치솟아 몇 마디를 다 불태워버린다.
문을 `쾅` 닫고 나가서 허공에 대고 애꿎은 담배연기만 날리다가 고개를 움츠리고 들어서는 사내.
그것도 아저씨의 단면이다.
어디까지나 단면이라고 했다.
다 그렇다는 게 아니다.
아저씨가 안 그렇다고 손사래 칠지 모르지만 그럴 확률이 높다.
그럼 오늘은 아저씨 해부학 실습 좀 해보자.
심리적 해부학이다.
심리만 건드릴 것이다.
아저씨는 X와 y라는 두 개의 다른 염색체를 가지고 있어선지 도무지 집중을 못한다.
XX염색체를 가진 아줌마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TV를 켜놓고 아저씨가 한참 그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말을 하면 홀라당 헛거다.
기껏 악센트를 넣어 말을 해줬건만 나중에 딴 소릴 한다.
뭐라고?
그랬다고?
그랬어?
그랬는데?
그래서?
그래서 뭐 어떻다고?
그런데?
그리고?
그럼?
신문을 보고 있을 때도 똑같다.
바짝 앉은 마누라가 뭐라고 뭐라고 두 쪽 귀에 대고 스피커를 틀었건만,
여전히 아저씨는 나는 모른다로 일관한다.
이럴 때 아줌마는 물 한 컵을 벌컥대고 나서 다시 반복해야 한다.
그러다가 딴소리를 하면 TV도 꺼야 되고 신문도 접어야 한다.
그리곤 정자세로 앉힌 뒤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또박또박했던 말을 또다시 재생한다.
"이젠 알아들었지?"
"응."
뭐가 이렇게 불편해.
아줌마는 신문도 보고 TV도 보고 수다도 떨고 음악도 들으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다 알아듣고 해석할 수 있다.
한 개의 비축된 X가 언제든지 다기능을 도와준다.
신문을 보는데 뜨거운 물을 갖다 주면 그날은 입천장 데는 날이다.
뜨거우니 천천히 마시라고 아무리 말해줘야 소용없다.
제대로 말해주려면 어깨를 탁, 탁, 탁 세 번 쳐준다.
그런 후 신문보기를 중단시키고 세 번 이상 뜨거운 물임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입천장이 너덜거리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이런 것은 다중기능을 못하는 남성의 취약한 구조라 치고 또 다른 고민이 있다.
자꾸만 동문서답을 하는 거다.
인지력 손상이다.
인지력뿐 아니라 기억력도 흐릿해서 맨날 언제 그랬냐고 따진다.
해마의 기능도 낡아가고 있다.
이럴 때는 하나 남은 X 염색체를 슬그머니 바꿔주고 싶다.
어딜 다녀온 것도 자꾸 혼동하니 말이다.
괴산을 다녀왔는데 영동이라 하고 천리포수목원을 다녀왔는데,
만리포수목원이라고 한다.
천리포 수목원 근처에 만리포 해수욕장이 있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해수욕장과 수목원은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옆에 있다고 해서 복합적으로 쓸어 담는 건 어법에도 어긋난다.
"무슨 만리포야 천리포지."
이러면 거기가 거기지 뭘 따지냐고 아줌마를 쫌생이로 취급한다.
이웃해 있다고 시루떡이 인절미가 되냐 말이다.
몇 종류의 떡이라도 사 오게 되면 그것조차 헷갈릴 것이다.
"이건 시루떡."
"이건 인절미."
"이건 쑥절편."
"이건 백설기."
일일이 떡 종류를 말해주면서 신문이나 TV를 접어야 한다.
그래야 시루떡, 인절미, 쑥절편, 백설기를 제대로 먹었는지 안다.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어떤 것에 집중하는 날엔,
뭘 먹긴 먹었는데 배가 부르네.
이렇게 되는 거다.
하여튼 아저씨는 다섯 살 배기 아들을 키우는 느낌이란 말이지.
늦게 들어오면 늦어서 걱정되고 이르면 일러서 성가시고.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복잡하고.
복잡한 아저씨의 전형은 또 있다.
어느 날 아는 지인이 부부동반으로 외출을 하고 돌아왔는데 밥이 하기 싫었단다.
그럴 땐 센스 있게 아저씨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 외식을 하자고 제안했어야 했다.
혹시나 해서 아저씨 눈치를 살피니 아저씨가 한 말.
"아, 밥 없으면 그냥 간단히 칼국수나 해 먹어."
오메, 오메 칼국수가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인가.
참나.
라면이면 몰라도 칼국수는 실습을 해봐야 알 것이다.
그 복잡성을.
뉘 집 아저씨나 내 집 아저씨나 부엌과 너무 먼 당신이다.
아이도 아니면서 어딘가 철부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저씨.
이 복잡하고 미묘한 아저씨의 알레고리는 오늘도 `아`로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왜 아줌마와 아저씨는 "아" 자로 시작됐는지.
"아!"
독자님들!
염려덕에 여행은 잘 다녀왔습니다.
1월 29일~2월 2일까지 태국 치앙마이를 다녀왔지요.
여행기는 나중에 시간 될 때 써보도록 할게요.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어요.
모두모두 행복한 명절 되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