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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Jan 24. 2024

아줌마 탐구하기(10)

아줌마는 갈 데가 없다

저녁을 밖에서 먹고 온  남편.

저녁 먹고 온 걸 알면서도 섭섭하지 않게 밥은 먹었냐고 다시 물었다.

"밥은 먹었어. 귤이나 가져와 봐."


 귤 세 개가 그의 무릎 앞에 주저앉았다.

"까줘."

"못 까줘."

"에휴, 그러지 말고 까줘."

"거참 "


입은 구시렁거리고 흰자위는 넓어지고.

인간은 왜 맘에 들지 않을 때 검은자위 보다 흰자위가 넓어지는지 그것도 연구대상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흰자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더 감정의 깊이와 연관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죽으면 흰자위가 앞에 나타나게 된단다.

섬뜩하다.

골을 내는 건 이렇게 여러모로 좋지 않은 거다.

자신이나 남에게나.


맨 처음엔 노느니 염불 한다고 가만히 앉아있다가 귤을 까주기 시작했다. 

그것이 습관이, 당연히, 물론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떤 때는 그것조차 까주기 싫을 때가 있다. 

왠지 귀차니즘이 슬슬 내 옆구리를 찌를 때가 있다.


매일 하는 밥도 하기 싫을 때가 왜 없겠나.

매일 잘하던 짓도 은근히 반기를 들고 싶을 때가 왜 없을까.

사람인지라 변화와 변덕은 언제나 함께한다.

이건 골을 낸다기 보다 그냥 잠시의 감정일 거다.


요즘 들어 문득, 문득.

한쪽 구석에 처박힌 캐리어를 끌고 나가고 싶다. 

걔나 나나 맨날 방구석 신세는 마찬가지다.

똑같은 나날을 똑같지 않은 날로 만들어 보고 싶다.


`이참에 확 어디 가서 며칠을 묵다 와?`

나의 부재가 가져올 온갖 불편함을 인지시켜주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치솟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당장 어디로 나설 곳이 없다.

갈 데가 없다.


한 친구는 손주를 돌보느라 하루가 정신없다니 안돼.

또 한 친구는 여전히 돈 벌러 다니느라 바빠서 패스.

아들네는 근방이긴 하지만 거기도 안돼.

애들이 깬 지 아몬든지 한창 볶고 있는데 불청객이 쓰윽 들어서면 산통 깨는 거니까.


집 부근에 친한 언니가 혼자 살긴 하는데 거긴?

아니다.

거기도 며칠 전에 그 언니가 울면서 내게 하소연을 했었다.

큰 아들이 암에 걸려서 생사를 오간다고.

그렇게 심난한 상황에 내가 가면 안 되지.


딸?

딸도 객지에서 혼자 생존법을 열심히 터득하고 있으니 시간이 없다. 

옆 동에 말벗이 있긴 있는데 그 닌 남편이 은퇴를 하고선 집을 동굴로 만들었단다. 

아무리 리스트를 작성해 봐도 햇볕이 보이지 않는다.


오빠가  있긴 한데 올케가 걸린다.

핏줄도 아닌 시누이가 보따리까지 싸들고 쳐들어오면 좋아할 리가 없다.

이런 때는 언니들이라도 있어주면 좋으련만.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일찌감치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어째 숨 쉴 구멍도 없이 다 막혀버렸냐.


보은에서 농사짓는 오래된 지인이 한 명 있는데 거길 은신처로 삼으려고 했다.

며칠 전에 마음먹고 여부를 타진하러 가봤는데...

거긴 더 절망적이다. 

결혼도 안 한 아들이 아프단다. 그것도 많이.

오히려 우리 집으로 불러들여 위로해야 할 판이다.


이럴 땐 재산도 안 되는 나이만 케케 쌓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다.

융통성도 수완도 방전이다.

운전을 하고 어디론가 나서기는 세상이 너무 낯설다.

보따리를 들고 당장 나갈 데도 받아줄 곳도 없는 황야의 무법자가 아니라 

황야의 외톨이 신세다.


아줌마들은 다 그런 것인지.

나만 그런 것인지.

참 신세가 처량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데.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데  언덕이 반쪽도 없다.

소멸된 친정의 부재가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립다.

엄마도 아버지도 언니들도 다 사라진 들판엔 찬바람만 무성하다. 


아줌마들에게 있어 친정이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해질 때 숨어들고 싶은 안식처다.

그곳에선 폭풍우가 몰아치는 세상일지라도 춥지 않다. 

울고 싶을 때, 칭찬받고 싶을 때,  하소연하고 싶을 때 기어드는 산골짝 초막 같은 곳.

산등성이에 피어나던 아지랑이처럼 아련한 향수가 모락모락 김을 올려내는 곳.


생각만 해도 뭉클해지고 콧날이 시큰해지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유명 시어를 끌어내지 않아도, 

절로, 저절로 그곳으로  마음을 묻어버리고만 싶은 곳.

그곳.

그곳이 없다.

소멸되어 버려진 친정은 古都를 잃어버린 실향민처럼 쓸쓸하다.


그래서 狡兔三窟(교토삼굴)이 필요하다.

영리한 토끼는 아차 싶을 때 활용할 세 개의 굴을 파놓는다는데, 

세 개의 굴커녕 하나의 굴도 못 파놓고 여태 뭐 했는지.

집 나서면 고생이라는 말을 명언 삼아 그냥 이대로 살아?

맨날 귤이나 까면서?


"귤까."

"싫어, 나 여행 다녀올 거야 혼자 많이 까서 드셩."

이렇게 씩씩하게 나설 기발한 방도를 마련해 봐야겠다.

2024년에는 교토삼굴이 아니라 교토 1 굴 작전 개시. 





 `아줌마 탐구하기`를 10화로 마무리합니다.

아줌마 탐구하기는 필자의 모습이기도 하고 보편적인 아줌마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아줌마들.

그녀들의  처지와 애환, 해학이 버무려진 `아줌마 탐구하기`

어떠셨는지요?


아줌마 탐구하기를 끝내고 이어서 `아저씨 탐구하기`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아저씨는 어떤 모양새를 갖추고 독자님 옆을 지킬지 궁금하지요?

너무 웃다가 틀니 빠졌다고 들고 오면 곤란해요.

그거 쓴다고 쉰 머리가 수북수북 났거든요.


아저씨!  거기 꼼짝 말고 서 있어요. 

내가 아저씨를 알려줄게요.

아저씨 해부학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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