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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Jan 10. 2024

아줌마 탐구하기(8)

아줌마가  파마하는  날

아줌마들은 동네 미용실을 단골로 정할 때가 많다. 

특별하지 않으면 먼 곳보다 가까운 곳을 선호한다.

집에서 입던 차림으로 나서도 되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도 되고.

편한 게 최고다.


아줌마들이 주로 머리에 공을 들이는 수단은 파마다.

파마는 대략 한 시간 안팎으로 완성이 되는데 그 시간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화학약품을 바르고 싸매고 앉아 있자니 머리는 무겁고 하품은 헤프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머리를 들볶아 대는지.

그 시간은 머리카락에겐 학대이고 머리의 주인에겐 기대감이다.


그럼 이 파마 또는 펌이라고 불리는 미용 수단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잠시 짚어보자.

파마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알칼리 성분의 진흙을 막대에 감아서 햇볕에 말려 웨이브를 만들었다고 한다.

좀 원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모발에 멋을 추구한 시발점이 된다.


1870년에는 프랑스 사람 마르셀 그라또 에 의해 파마용 인두가 개발되었다.

그 후 1905년 런던의 미용사 찰스 네슬러가 열을 이용한 알칼리 성분으로 

반영구적인 웨이브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것이 파마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파마는 permanent wave의  줄임말로 영구적인 물결모양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60~70년대에는 아까시나무 줄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머리카락에 그것을 감고 파마 흉내를 냈던 기억이 난다.

흙을 이용했던 것보다 훨씬 위생적이고 즉각적인 효과를 봤던 실험정신이었다. 

실험정신은 진화하여 아줌마들의 머리 위에 새로운 희망을 열어주었다.


젊을 때는 생머리를 치렁치렁 풀어놓고 다녀도  멋지고 포니테일로 묶어도 이쁘다.

이래도 청순하고 저래도 기름지다.

굳이 꼬불거릴 이유가 없다.

멋내기용이라면 몰라도.


나이를 먹을 대로 먹어버린 아줌마들은 그렇지 않다.

머리에 얹은 몽블랑은 그렇다 쳐도 건초는 또 뭐란 말인가.

마른 검불처럼 머리가 푸석거린다.

푸석거릴 뿐 아니라 가늘어진 모발로 숱이 상당히 가난해진다.

`이걸 어떻게 좀 해봐.`

그것이 파마라는 수단으로 나타났을 테다.


파마를 한다고 건초가 윤기가 좔좔 흐르는 머릿결로  돌아오진 않는다.

어쩌면 오히려 더 악순환을 초래한다.

독한 파마약을 도포한 머릿결은 맥을 못 춘다.

`그럼  왜 파마를 해?`


그것은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초가집은 부잣집 곳간이 부럽다.

머리숱을 부잣집 곳간처럼 꾸미기 위한 위장술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술이 만나 여자들의 심리를 파고든 것이다.


밋밋하고 빈약한 머리숱보다 뭔가 있어 보이는 풍성함. 

그리하여 물결무늬는 나이 든 여자들의 로망이 되었다.

그것은 위로의 수단이요, 채움의 발상이었다.


성긴 숲을  채우는 방법도 나이에 따라 다르다.

나이가 젊을수록 웨이브가 약하고 부드럽다.

나이를 보탤수록  꼬불거림은 심해진다.


40대   물 내림.

50대   꼬불이.

60대   중, 강한 꼬불이.

70대   강강 꼬불이.

80대   까치집. 


나이에 따라서 이렇게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단골 미용실은 이런 기준을 암묵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굳이 말하지 않으면 이것이 파마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한 시간 안팎을 싸매고 있다가 중화제를 바른 뒤 잠시 후에 머리를 감게 되는데...

타올로 물기를 마구마구 파헤친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폭격 맞은 초가집이다.

미용실 거울에서  극명하게 보여지는 저 형체는 도대체 사람인가 괴물인가.

머리카락은  미친 여자가 되기도 하고 귀부인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머리카락의 형태는 그 사람의 나이나 용모와도 연결된다.

우아함이냐 추함이냐.

젊음이냐 늙음이냐.

이것은 머리의 형태가 결정해 준다. 

같은 나이라도 모발의 농간에 따라서 등급이 정해진다.


이래서 파마를 하고 나와서 바라본 거울 속의 자신을 이렇게 평가하게 된다.

생각보다 덜 꼬불거리고 자연스러우면 感槪無量, 감개무량 (감동이 헤아릴 수 없이 큼)

10년 더 늙은 호박으로 보이면 望洋之歎, 망양지탄 (넓은 바다를 보고 탄식하듯 어떤 일에 자기의 힘이 미치지 못하여 탄식함을 일컫는 말)

60대를 강강 꼬불이로 승격시켜 주었을 때는 面從後言, 면종후언.

 (얼굴 앞에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뒤에서는 욕함)


60대의 면종후언은  앞뒤로 보여주는 미용사의 거울에선  "음 아주 파마가 잘 나왔네요."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아휴 이게 뭐야 누가 이렇게 꼬불거리게 하랬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미용사의 기술 부족을  침을 튀겨가며 비난한다.

"내가 다신 거길 가나 봐라."


그럴 만도 한 것이 파마란 한 번 잘못해 놓으면 커트하지 않는 이상 특별하게 변화하지 않는다.

분통이 터질 만도 하다.

분통은 파마가 다 풀릴 때까지 질기게도 아줌마를 따라다닌다.


여자들은 심기가 들쑥날쑥할 때 미용실을 간다.

왠지 심난스러울 때 미용실을 향한다. 

뭔가를 좀 풀어내고 싶을 때 향하는 곳이 미용실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이 어쩐지 초라하고 늙어 보일 때도 미용실엘 간다.


심기일전하고자 할 때 미용실에서 머리도 다독이고 마음도 다독인다. 

기분이 우중충 할 때 그곳에서 머리를 자르고, 말고, 감으면서 

그런 浮游(부유)하는 찌꺼기 들도 함께 털어낸다. 


그날은 머리에 얹힌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 올려진다. 

초가집에 새로 이엉을 얹는 날이기도 한 거다.

그리하여 파마하는 날은 아줌마들에게 있어 마음속 흔적들을 지우고 채우는 날이기도 하다.


파마하는 날은 그렇게 복합적인  날이다.

지지고 볶고 지지고 볶고.

부엌에서만 하던 그 행위가 머리 위에서도 행해지는 날이다. 

그날은 십 년을 되찾고 싶다는 허황된 꿈을 꾸는 날이기도 하다.


미용실을 나서자  골목길을 지나던 바람 한 줄기가 아줌마의 머리를 훅 할퀴고 지나간다.

라면을 엎질러 놓은 아줌마의 뒤태가 의심스럽다.

바람이 한 마디 거든다.

이젠 무청이 아니고 시래기구먼.


유화로 그린 연꽃 그림.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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