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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Jan 17. 2024

아줌마 탐구하기(9)

화장품이 뭐길래

여자와 화장품은 절친이다.

美를 추구하는 여자들이 있는 한 화장품은 존재한다.

화장품은 5만 년 전에 네안데르탈인이 만들었다고 하기도 하고,

7500년 전에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학계, 화장품업계,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낸 연구자료지만,

연대를 추정할 뿐 정확하게 누가 언제 만들었다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순 없다.

우리가 그때 살아보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다만 여자들이 미를 간구했기에 만들었다는 점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지금처럼 화장품이 좋은 품질로 자리 잡기까지 우리나라  화장품의 역사도 지난하다.

화장품이 화장품 다운 품질을 갖추지 못했던 시절에는  쌀, 기장, 조, 팥, 분꽃의 까만 씨앗이

화장품의 원료가 되었다.

가장 쉽게 채취할 수 있는 곡물이나 꽃씨 등이 화장품의 기초재료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화장품이 제조 공정을 거친 것은 조선 후기이다.

중금속인 납은 양이온계를 띠고 우리 피부는 음이온계다.

서로 잘 맞았다.

그렇지만 납성분으로 인해 얼굴이 괴사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 후 `박가분`이 탄생했다.

국내 화장품 제조허가 1호가 된 셈이다.

두산 그룹 창업자 박승직의 부인 (정정숙) 이 화장품 산업의 선봉장이다.

그녀는 1918년 8월부터 `박가분`을 정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포목점 단골들에게 덤으로 끼어 팔던 상품이었다.


이 `박가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 달에 만 개 이상씩 팔려나갔다. 

여자들에게 있어 `박가분`은  꼭 갖고 싶은 필수품이었다.

남편들이 아내에게 `박가분`을 사주지 못한다면 열등한 남편으로 점찍혔다.

화장품이 뭐길래 남편의 등급까지 좌지우지했는지.

 

대단한 인기는 그것에 걸맞는 성분을 갖췄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납 성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럴 때는 오히려 안 사준 것이 다행이다.

결국 1937년 `박가분`은 폐업선고를 하기에 이른다.


역사는 새로 쓰고 반복되는 것.

광복전에 여자들 앞에 또다시 `동동구리무`가 나타났다.

`동동구리무`는 크림 장수가 아이스크림 퍼주듯 한 주걱씩 떠서 팔았다.

판매방식으로 북을 둥둥 쳤다는 데서 `동동구리무` 가 되었다.


이렇게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오면서 화장품은 날로 진화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화장품은 향기도 성분도 훌륭하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과학과 접목하여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화장품 업계의 선두 격인 태평양 화학은 1930년대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했다.

역시 구리무(일본식 발음)를 주로 생산했다. 

일제 강점기에 한글이나 영어로 화장품 품목을 정할 수 없는 처지를 이해하게 되는  대목이다.

여자들의 미에 관한 정보는 누구보다 발 빨랐고 이 구리무 또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것이 지금까지 굳건한 화장품 업계의 발판이 되었다.


우리네 여자들에게 있어 기초화장품은 없어서는 안 될 품목이다.

여행을 갈 때도 가방 안에 제일 먼저 챙겨 넣는 것이 화장품이다.

어딜 가든 가볍든 무겁든 화장품은 끼고 사는 것이 여자들의 습성이다.


싱싱한 무청 시절이야 화장품이 뭔 필요하랴.

그 자체만으로도 화장품 모델인데 말이다. 

그런데 시간은  양철 지붕 삭이듯 우리들을 삭혀갔다.

화장품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온 거다.


그러잖아도 푸석거리는 피부가 야속하던 참이다.

화장품 업계는 요리조리 아줌마들의 최대 고민인 노화에 관한 문제를 건드렸다.

이른바 안티에이징.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래 그거야 안티에이징.`

안티에이징 화장품을 바른다고 해서 모여든 주름들이 하루아침에

파산선고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새로 출시한 아이크림은 화장품 시장의 전망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생산수단을 갖춘 부르주아는 이처럼 치밀하고 밀도 있게 아줌마들을 공략했다.


그것이 호응이 좋자 이번에는 눈가를 쓸어버리자.

그건  아이섀도우다.

이건 또 뭐냐 너도나도 눈가에 금강석 가루를 뿌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의 키 포인트는 입술이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입술에 붉은 점만 찍힌다면  그날은 클레오파트라가 된다. 

별을 박은 듯한 펄감의 립스틱은 여자들의 호주머니를 또 노려댔다.

자꾸만 자꾸만 호시탐탐 아줌마들의 가벼운 주머니를 흔들었다. 

동전이라도 훑어갈 듯이.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피부는 여자들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피부가 곱고 잡티가 없어야 미인이라고 또 팔을 흔들어댔다.


그래서 파운데이션도 용도별로 출시했다.

송년회 갈 때 바르는 파운데이션은 곰표 밀가루.

상갓집 갈 때 바르는 파운데이션은 누런 보릿가루. 

친구들과 놀러 갈 때 발라야 하는 색조는 분홍 진달래. 

리필세트까지 갖춘 `오래 가 표`화장품은 아줌마들을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아줌마들은  식당에서도  밥을 먹은 후 콤팩트를 팡팡팡 두들겨 얼굴의 분화구를 지운다.

그리곤 콤팩트 좁은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을 구겨 넣고 입술 도색작업에 들어간다.

공사를 마치고 아랫입술과 윗입술의  단합을 도모한다.

뺨뺨뺨.

세 번의 입술 박수를 친 다음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콤팩트 뚜껑을 쾅 닫아건다.


그런 후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도도한 얼굴로 `나 이쁘지?`

`이 아줌마야 이뻐서 쳐다보는 게 아냐.`

`어디서 분장한 연극배우가 뛰쳐나왔나 쳐다보는 거야.`(남자들이 바라본 시점)

착각은 자유지만 착각이 지나치면 민망이란 단어를 몰고 온단 말이지. 

 

지구상엔 웬 화장품 종류가 그렇게나 많은지 아줌마들이 착각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화장품의 종류만 250만 개가 넘는다니 참말로 많아도 너무 많다.

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화장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시들어버린다.

그것은 마치 모든 여자들에게 마술봉처럼 다가와 협상을 요구한다. 

콤플렉스를 해결해 줄 마법사처럼.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화장품도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성형외과 의술도 시간을 지체하지 못한다. 

시간을 지체하는 건  우리들 마음뿐이다.


오늘도 호화찬란한 조명아래 터를 잡은 화장품들은 아줌마를 손짓해 부른다.

"아줌마 여기 좀 와봐요. 신제품 나왔어요."

"그거 산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그걸 바르면 5년은 나이를 깍아준다나.

에라이,  가뜩이나 시래기 머리에 부화가 치미는데 너까지 나를 희롱할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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