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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Apr 03. 2024

조선남자 엿보기(7화)

떨어져 봐야 안다

"여보 여보오."

저 남자가 왜 또 저렇게 불러대.

뭐가 또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구먼.


안방에 가보니 모자, 티셔츠, 바지가 방바닥으로 다 끌려 나왔다.

골라, 골라 손뼉을 치면서 골라를 외치는 시장분위기와 닮았다.

대략 골라서 캐리어에 담으면 되겠건만 그의 손목에 결정장애가 걸려있다. 


"아휴! 왜 다 꺼내놓고 난리야. 누가 보면 구제 보부상인줄 알겠네."

투정을 하면서도  내 손은 벌써 티셔츠와 바지를 짝짓고 있었다. 

날짜에 맞게 빨주노초파란보를 갖춰서 캐리어에 담고 헤매지 않도록 일목요연하게 

여행채비를 해놓았다. 


캐리어에 비닐봉지를 여섯 개 투입해 놓고 부탁을 곁들였다.

하루종일 땀 흘린 티셔츠와 입은 티셔츠를 구분해 놓을 것.

입었던 속옷과 안 입은 속옷을 따로 옮겨놓을 것.

싸구려 향수를 내뿜는 양말에 더 신경을 쓸 것.

어떤 것이든 비빔밥을 만들어 놓지 말 것.

신신당부를 그의 귀에 매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입었던 티셔츠를 다시 꺼내 입을 수도 있다.

어떤 거 하나도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게 없다.

지극히 마누라 의존적인 조선스러움은 아마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는 놓아줄 만도 한데 여전히 부려먹고 있다. 

맨날 "이담에 퇴직금 많이 챙겨줄게" 이러면서 살살 나를 골려먹고 있다.

이담이 언젠대?


엊그제 저녁에는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왔다.

비즈니스라는 명분과 대인관계라는 합리성으로 술과 아주 절친이다.

술에 취했든 말든 그는 저녁마다 먹는 약이 있다.

약이라기보다 건강보조식품이라고 해야 맞다.


그날도 코랄칼슘, 콘드로이친, 오메가 3, 루테인지아잔틴 네 가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먹으라고 일러줬다.

그리곤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또 내 이름을 계속  불러댄다.

나가지 않았더니 데리러 들어왔다.

팔짱을 낀 채 또 연행되었다.


그는 툭하면 그 우악진 팔로 나를 연행한다.

경찰이 범인을 끌고 가듯이 그렇게 끌려나갔다. 

버둥거려 봐야 아무 소용없다. 


이런 젠장.

이런 때는 우리 시어머니 삼종 세트였던 젠장, 넨장, 옌장이 튀어나와야 되는데, 

꾹 참고 쳐다보고 있으니 내 손에 약을 쥐어준다.

"아휴, 그냥 혼자 먹지 않고 이 무슨 행패?"

그의 입은 이미  천장을 향해 함지박이 된 상태다.


벌린 입에 쥐어준 약을 쏟아부었는데 다 붓기도 전에 입을 다물어 한 개가 

거실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황반변성을 예방한다는 알약이 바닥에서 뒹굴고 있다.

서리태보다 큰 까만 캡슐이 `나 그 동굴로 안 들어가련다.` 외치고 있다.


그것마저 집어달라고 알약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그건 집어먹어."

쌩 찬바람을 일으키며 컴퓨터 앞으로 직진했다.

그렇게나 그는 나를 시켜 먹는 재미로 산다. 


생각 같아서는 그를 확 낚아채서 물구나무를 세워놓고 싶다.

황소에게 덤비는 개구리 입장이다 보니, 몸으로 반격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 실천을 못하고 있다.

고작 한다는 게 입으로만 쫑알거릴 뿐.


이런 사람이 일요일(3월 31일) 새벽 다섯 시에  인천공항을 향해 떠나갔다.

태국에서 귀국한 지 일주일 만에 다시 말레이시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이번에는 열흘 동안 공을 치고 온단다.


아침잠을 설치고 일어나 그를 따라나섰다.

차에 타기 전에 나를 꼬옥 안아주면서 밥 잘 먹고 있으란다.

이수일과 심순애도 아니고 잠시 헤어지는 마당에 갈비뼈가 아프다.

새벽이라 누가 본 사람은 없지만 악극 리허설 장면인 줄 알겠다.

 

껴안았던 허리를 풀자 손바닥에 여운이 남았다.

강도 높은 하이파이브를 남기고 그는 가버렸다.

미끄러져 가는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고 서있자니 참 기분이 묘했다.


이제 아침마다  빠짐없이 해대던 하이파이브도 당분간 휴가다. 

열흘동안 손바닥이 벌게질 일이  없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밥을 해대던 고단함도  일시 중단이다.


어느 날은 늘어지게 잠을 자도 누가 뭐라지 않는 꿀맛 같은 열흘이다.

이 황금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자꾸만 미루던 그림도 이번에는 마음껏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고 흥분했다.

그 사람만 황금휴가가 아니고 내게도 골든타임이라고 좋아했다.


그랬었는데 집안에 들어서니 적막강산이다.

낮동안은 평소에도 집에 없다.

다만 저녁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에 적막이 얹힌다. 

보따리를 싸들고 며칠이고 나가있는 것과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것은 다르다.


귀찮게 하는 사람이 당분간 없으면 춤이라도 출 것 같았지만,

추려던 춤사위는 사그라들고 마음속엔 허전함이 찾아왔다.

멍석 깔아놓으면 하던 짓도 안 한다더니 딱 그 짝이다.


혼자 눈뜨는 아침.

주먹으로 일어나라고 쾅쾅 두들기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침을 먹다가 문자를 넣었다.


곧이어 보이스 톡이 달려왔다. 

"집에 별일 없지?"

"그럼. 며칠이나 됐다고."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있어."

"알았어요. 재밌게 놀다나 오셔."


부부도 가끔은 떨어져 살아봐야 좋다.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혼자 살아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서로를 힘들게 했던 문제도 그 사람 입장으로 서 보게 된다.


지겹도록 밀착하던 사람들이 연인 감정을 갖게 되는 순간은 그리움이 밀려올 때다.

떨어져 있을 때 그리움은 돋아난다.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

없어봐야 아쉽고 허전하고 고맙고 필요한 감정이 들어서게 된다.


부부란 참 요상하다.

생판 모르는 남남끼리 만나서 사니 못 사니 숱하게 다투며 살고 있다.

왜 저런 사람을 만나서 내가 이렇게 힘이 들어야 하느냐고 울던 시간들도 허다하다.

그야말로 지지고 볶으면서  살다 보니 그 새에  미운 정 고운 정이 양념처럼 스며들었다. 

휭 가버리고 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옆구리는 왜 시린 걸까.


전생의 웬수(원수)였다던 사람들.

부부라는 연은 어떻게 이리 세게 흔들리면서도 엿가락처럼 결속할 수 있는지,

그것도 과학으로 풀어낼 수 없을 만큼 신비스럽다.

금방 싸우고 금세 웃고 어딘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들이다.

허전함과 홀가분함이 공존하는 며칠을 잘 버무려봐야겠다.

공간은 새로움을 창조하고 충전한다.


                           

황홀한 봄날. 가로 40 세로 20 oil painting.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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