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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게 뭐라니?(31)

빗물로 세수 한 날

by 김 미 선

나는 지난 수요일(22일) 비가 오는 거리에서 생사를 오가는 일과 마주했었다.

한의원에서 나오다가 철판에 미끄러져 뇌진탕을 당했다.

찰나의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어찌해 볼 사이도 없이 머리를 세게 철판에 부딪혔다.

내가 넘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초고속이었다.


이게 뭔 상황인가를 알게 된 것은 머리가 철판에 부딪히며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이제 죽는구나.

사람은 이렇게 죽는 거구나.


그런 생각 후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대로 누워서 미동도 없이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비가 오는 거리는 인적이 드물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빗방울이 스륵스륵 얼굴에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아프긴 하지만 살았구나.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야구방망이로 된통 맞은 느낌, 바로 그거였다.

살아오면서 최초로 길바닥에 누워서 빗물로 세안을 한 날이기도 하다.

한의원의 이중문은 나의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고,

그래서 잠시지만 사투는 철저히 혼자였다.

다시 한의원으로 들어가 머리를 보여주니 직원들이 놀라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나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는 게 보였다.


넘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한의원을 나오려면 바로 철판이 경사지게 놓여있다.

휠체어 타는 사람들을 위해 그곳에 철판을 덧대어 놓은 것이다.

문을 밀면서 발을 살짝 올려놓았는데 빗물에 그대로 내 몸이 붕 뜨고 말았다.


그날 밤새도록 통증에 시달리며 인생이 뭔지 사는 게 뭔지.

철학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CT와 MRI를 찍어보라는 것도 다 마다하고 집으로 그냥 와버렸다.

울렁거리거나 머리가 어지러우면 뇌에 이상이 생긴 건데,

다행히 그렇진 않았지만 부풀어 오른 혹에서 끊임없이 통증 신호가 전달되었다.


지난 연말, 교통사고를 당한 후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 번.

그 후 5일에 한 번.

그다음에는 일주일~열흘에 한 번씩 한의원으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었다.

몇 달이 경과했지만 실제로 치료를 받은 횟수는 그리 많지 않다.

한의원을 가는 것도 고달픈 일이어서 아픈 것도 참고 여태껏 질질 끌다가

합의도 못한 상태다.


그날따라 비가 오니 어깨가 쑤시고 아팠다.

물리치료나 가야겠다.

그 길이 황천길이 될 뻔했다.

정말 사람 죽는 거 아무것도 아니란 걸 또 절감했다.

어디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바람에 간판이 머리에 떨어질지.

자동차가 신호등을 무시하고 쌩 달려들지.

갑자기 갈라지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지.

길을 나서면 예측불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그건 그날의 운일뿐이다.


머리에 혹부리가 되어 돌아오면서 처음 생각해 낸 것이 그래도 글은 쓸 수 있겠네.

댓글은 달 수 있겠네.

살아서 다행이다.

풋.


머리가 콕콕 바늘로 찌르듯이 아프다.

생전 없던 두통도 생겼다.

한의원에서 나쁜 피를 뽑아준다고 뭔가로 쿡쿡 쑤셔놓은 머릿속은 지금 연구 중이다.

피를 더 낼까 말까.

딱지를 붙일까 말까.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미끄러진 얘기를 털어놓았다.

자기도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머리를 시멘트 바닥에 부딪친 선배란다.

무조건 일주일은 글도 쓰지 말고.

그림도 그리지 말고.

운동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잠만 자라고 했다.


두통은 생각보다 오래가고 마땅한 약도 없는 골칫거리가 뇌진탕이란다.

까딱 잘못하면 사망선고를 받아야 하기도 하고.

한참 동안 선배노릇 하느라 말이 길어졌다.


그러면서 그녀의 말로는 인생은 엎어지고, 깨지고, 피나고, 붓고 그러면서 굴러간다나.

아프면서 고급 철학자의 반열에 올랐다고 스스로 너스레를 떨었다.

사고가 나거나 아프면서 덜 소중했던 모든 것들이 새롭고 가치롭게 보인다.

매사에 더 조심하게 되고 살펴보게 되었다.


모든 사건, 사고는 예고 없이 불쑥 다가온다.

대비할 사이도 없이.

그래도 죽지 않고 장애가 없다면 그걸로 감사하다.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무한 감사하다.

고통은 성숙을 잉태하는 것이기에.

모든 만사가 다 감사함으로 다가오는 4월의 끝자락이다.


그나저나 뒤통수에 매달린 혹은 언제까지 달고 다녀야 하나.

며칠 어딜 다녀와야 하건만 혹을 여전히 매달고 다녀야 할 입장이 되었다.

혹부리 영감은 들어봤어도 혹부리 할매는 아무래도 신조어가 될 것 같다.

혹부리 할매.

오늘도 힘내.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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